이다지도 낭만적인 한국의 정취, 현대의 달빛 아래 환하게 일렁이는 전통 민화의 숨결
이다지도 낭만적인 한국의 정취, 현대의 달빛 아래 환하게 일렁이는 전통 민화의 숨결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06.17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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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토록 한국의 미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힘써 국내 명산지의 새로운 일면 발굴하다”
박윤성 화백
박윤성 화백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프랑스 망명 시기, 두고 온 고향과 금강산을 사랑하여 멈추지 않고 그려 온 화풍을 인정받아 프랑스 국전 금상을 수상한 ‘한국의 피카소’ 하반영 화백의 말처럼, 무릇 화가는 우리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가치와 사상을 그림에 담았을 때 비로소 작품의 용솟음치는 생명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조선시대 옻칠가구를 평생 만들어 온 목수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손기술로 미술과 판화에 재능을 보여, 우리 고유의 미감을 현대화하는 작업으로 한국의 정서를 기억하도록 만든 대표적인 화가가 된 박윤성 화백도 전통문화의 해석력에 있어 상당한 일가견을 보인다. 이번 호에서는 박 화백이 50년 미술인생의 모토로 삼은 한국 미학의 현대화에 대한 관점과, 오는 10월 개최하게 될 개인초대전을 준비하고 있는 작품 근황을 전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한국의 풍경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민화의 기호적 요소를 더하여 재해석하다

서양화이면서도 막걸리 한 잔과 잘 어울리는 그림, 하늘과 땅, 산과 사람을 상형문자처럼 단순하게 도식화해 민화처럼 푸근한 그림으로 유명한 박윤성 화백은 풍경의 단순화와 전통산수화의 품격을 보여주는 예술가다. 사실주의나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색과 선으로 읽어내는’ 풍경화를 추구하며 지상의 만물을 조형해 낸 <하늘>시리즈처럼, 풍경에서 얻는 감흥을 온화한 색조의 광채로 해석해 내는 박 화백은 1970년대 민화와 황토빛 공예를 연상케 하는 느낌에서 시작해, 따뜻한 노란빛과 주홍빛을 가미하고 1990년대부터는 산과 나무, 바위와 같은 순박한 자연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화풍을 갖고 있다. 진주에서 옻칠 가구장인이었던 아버지의 나무 조각을 두드리며 그림과 판화에 재능을 보였다가, 친지의 도움으로 부산교대에 진학하고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박 화백은 조선가구를 익히며 자라난 덕분에 우리 민족의 미감에 대해서는 뼛속까지 이해한다고 전한다. 기호로 단순화되고 민화의 요소를 현재의 풍경에 대입한 해석법은 붉고 노란 색을 즐기는 박 화백의 대표적인 화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박 화백은 그 중에서도 자연풍경과 민화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서울에 와서 겸재 정선에 푹 빠져드는가 하면, 우리의 명승지를 다니며 풍경을 민화 식으로 해석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우리 기후를 노란 톤으로 해석하는 표현력이 남다른 그는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금강산, 그리고 깎아지른 자태에 곡선이 공존하는 북한산 인수봉과 기암괴봉이 아름다운 전남의 월출산을 비롯해 우리 산지와 나무, 부산의 달빛 아래 바닷바람 내음이 나는 풍경을 자주 그렸다. 또한 박 화백의 눈에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 불리는 금강산은 2000년 12월 탐방을 계기로 선의 웅장함을 더하는 것으로 조금씩 화풍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시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우리 얼의 신묘함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장소로 재해석되어 있다.

오는 10월 부산미술협회 송해수미술상 선정기념 초대전 준비, 우리미술 발전 보여줄 것

민화와 산수화의 결합이자 겸재 정선과 같은 실험정신을 현대의 단순화된 양식으로 보여주는 박 화백은 강력한 필획으로 사생보다는 사의(寫意), 즉 형태보다 정신에 치중하며 민족의 미의식과 현대화의 단순화된 양식을 혼재시키며 민화의 강력한 후계를 자처하고 있다. 추상풍경화에서는 페인팅에서 드로잉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점묘와 원묘, 선묘의 직선적인 느낌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박 화백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원하는 바를 마음껏 표현해 왔다고 한다.

교직 생활 중에서도 그림을 가까이하며, 1972년 시작한 그림을 3년 후 부산공간화랑에서의 1회 개인전으로 선보이기 시작해 다수의 초대전과 개인전을 개최한 박 화백은 그 중에서도 겸재정선기념관에서 연 산수예찬전, 겸.재.화.혼.전 등을 인상적인 전시로 꼽는다. 그의 컬러 톤을 사랑하는 중국, 일본은 물론 민화의 재해석을 갈망하는 화단의 찬사는 15회 송해수미술상에 선정되며 절정에 달했다. 겸재를 비롯해 김종석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는 박 화백은 젊은 시절 많은 존경을 보낸 송해수 선생의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된 것을 영광이라 표현하며, 오는 10월 부산미술협회의 이름으로 수상기념 초대전을 갖는다고 한다.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한 후배 작가들에게, 실험에는 파격도 있지만 옛것을 가다듬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는 조언을 남기는 박 화백에게 그림이란 소박하지만 당당한 우리 고유의 유산이다. 그래서 중국의 화풍을 따라가기보다는 고향 진주의 촉석루와 남강의 유등, 그리고 경주남산 부처바위와 독도와 같은 장소에 작가의 영혼과 성장기의 추억을 담아 왔던 것이다. 우리 미술이 삶과 일상에서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박 화백은 이제 그림에서 자유로운 호흡을 넘어, 마음 속 풍경의 감상을 원하는 대로 표현한다고 한다. 세상을 밝게 물들이는 태양과 항구 조명이 합일되어 바다 위 강렬한 일렁거림으로 나타낸 <부산항의 밤>은 특별한 서양화 기법 없이도 한국에도 풍경의 인상주의가 독자적으로 뿌리를 내렸음을 보여준다. 고흐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압생트 한 잔에 바친 순정처럼, 이태백이 풍류 한 가닥을 비추는 달빛을 찬양하며 극락정토의 평화로움을 담았듯, 박 화백은 탁주 한 잔에 단순한 선에도 건강한 해학을 담는 풍류를 잘 안다. 예컨대, 원숙에 이르니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무리가 없었다는 선현들의 이야기처럼, 박 화백도 이제는 원하는 일필에 바라는 감정을 담는 경지에 올라 춤을 추면 그 장단에 흥겨워진 이들이 찾아와 함께 노니는 경지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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