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이 기술을 증명한다

유비스 신준호 대표, ‘3D 제작의 글로벌 표준’을 향한 실험

2026-10-13     정재헌 기자

생성형 AI가 이미지와 영상의 제작 방식을 바꾼 데 이어 이제 변화의 파고는 3D 콘텐츠 산업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3D 모델을 생성하는 것’과 ‘실제 게임에 투입할 수 있는 3D 에셋을 만드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유비스(UBIS)는 바로 이 틈을 파고든 기업이다. 2D 원화 한 장에서 출발해 3D 모델링과 리깅, 애니메이션, 최적화, 게임 엔진 적용까지 이어지는 제작 파이프라인을 AI로 자동화하는 ‘UBIS AI AGENT’를 개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을 실험실 안에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체 게임을 직접 만들고 시장에 출시해 기술의 효율성과 사업성을 검증한 뒤, 그 데이터를 다시 AI에 환류시킨다. 20년 개발자의 내공과 1인 게임 개발자로서 글로벌 이용자 150만 명을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신준호 대표는 이제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넘어 ‘게임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회사’를 그리고 있다.

게임을 만들다 발견한 ‘보이지 않는 비용’

신준호 대표는 약 20년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현장을 지켜왔다. 2019년에는 혼자 개발한 게임 ‘제네시스’로 글로벌 이용자 약 150만 명을 확보하며 작은 개발팀도 기술과 콘텐츠만 있다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게임을 거듭 만들수록 또 하나의 현실이 선명해졌다. 좋은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어도 그것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2D 원화를 게임 속 3D 캐릭터로 구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모델링 이후에도 리깅과 애니메이션, 최적화, 엔진 적용 등 수많은 후속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빠르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컸지만, 실제 제작 현장은 달랐다.

신 대표는 “AI가 3D 모델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과 실제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셋을 만들어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고 말했다. 생성 결과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개발자가 다시 손을 대야 한다면 제작 공정 전체의 혁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UBIS AI AGENT다. 유비스는 단순한 ‘3D 생성 AI’가 아니라 2D 이미지에서 시작해 3D 캐릭터 생성, 리깅과 애니메이션을 거쳐 Unity와 Unreal Engine 등 실제 게임 엔진에서 활용 가능한 단계까지 연결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지향한다.

신 대표가 말하는 진짜 자동화의 기준도 명료하다. “AI가 얼마나 멋진 결과물을 만들었느냐보다 개발자가 그 결과물에 다시 얼마나 손을 대야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유비스가 겨냥하는 기술적 해자 역시 여기에 있다. 생성형 AI 모델의 성능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평준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특정 모델의 성능만으로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신 대표의 판단이다. 대신 유비스가 축적하려는 것은 실제 게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와 워크플로우에 대한 이해다.

AI가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실제 게임에 적용한 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수정 데이터를 다시 AI에 반영한다. ‘생성→적용→검증→학습’으로 이어지는 데이터 플라이휠이다.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게임을 직접 만드는 회사라는 유비스의 다소 독특한 구조가 경쟁력이 되는 이유다.

자체 게임은 기술을 검증하는 ‘살아 있는 실험실’

유비스는 ‘루나: 월영의 전쟁’, ‘루나 크래프트’ 등 자체 게임 IP도 직접 개발하고 있다. 일반적인 AI 스타트업이라면 기술 솔루션 개발에 집중할 법하지만 유비스는 콘텐츠 사업을 병행한다. 신 대표는 자체 게임을 “AI 기술을 가장 혹독하고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라고 표현한다.

기술은 데모 환경에서가 아니라 실제 이용자가 접하는 서비스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캐릭터가 게임 안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지, 모바일 환경에서 성능을 유지하는지, 제작 기간과 비용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루나: 월영의 전쟁’이다. 유비스의 AI 기술을 제작 과정에 적용한 이 게임은 출시 41일 만에 매출 8억 원, 누적 매출 17억 원을 기록했다. 유비스 입장에서 이 숫자는 단순한 게임 흥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AI 기술이 연구단계를 넘어 실제 콘텐츠 제작과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장에서 증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용화 과정에서 새로운 숙제도 발견했다. 3D 모델의 외형적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곧바로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리깅과 애니메이션, 플랫폼별 최적화, 엔진 호환성까지 만족해야 비로소 하나의 ‘사용 가능한 에셋’이 된다.

신 대표는 “저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3D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된 캐릭터를 실제 게임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다시 UBIS AI AGENT의 고도화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자체 IP는 별도의 사업이면서 동시에 AI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거대한 실험실인 셈이다.

POC에서 SaaS로, 세계의 제작 현장을 겨냥하다

유비스의 다음 단계는 명확하다. UBIS AI AGENT를 구독형 SaaS 플랫폼으로 확장해 국내외 게임사와 개발 스튜디오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초기 핵심 고객은 지속적으로 3D 캐릭터와 에셋을 제작해야 하는 게임사다. 특히 대규모 아트팀을 운영하기 어려운 중소형 개발사에는 제작 비용과 시간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수익모델은 SaaS 구독을 중심으로 사용량과 생성 규모에 따른 크레딧 방식 등을 결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게임을 넘어 버추얼 휴먼, V튜버, 애니메이션, 엔터테인먼트 등 3D 캐릭터가 필요한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다만 가장 먼저 게임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3D 콘텐츠 산업 가운데서도 게임은 품질과 최적화, 실시간 구동 등 가장 까다로운 기술적 요구를 가진 시장이다. 신 대표는 “게임에서 검증된 기술이라면 다른 디지털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비스는 최근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DIPS) 우수기업 선정, 대한민국 리딩기업대상 기술혁신대상 수상, MARU 입주 등을 통해 기술과 성장 가능성도 외부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이러한 평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제 글로벌 고객을 확보하고 기술의 효율성을 숫자로 증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해외 시장에서는 북미를 우선적인 타깃으로 두고 있으며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도 주요 후보로 보고 있다. 전략은 화려한 구호보다 현실적이다. 해외 게임사와 POC를 진행하고, 기존 제작 방식 대비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는지 데이터를 확보한 뒤 이를 유료 프로젝트와 SaaS 구독으로 연결한다.

POC에서 실제 게임 적용으로, 다시 성과 데이터와 유료 고객 확보를 거쳐 SaaS로 확장하는 구조다.

신준호 대표가 그리고 있는 최종적인 목적지는 단순히 성공한 AI 기업이 아니다. 한국에서 시작한 기술이 세계 콘텐츠 제작 현장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이미 두 가지 강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콘텐츠 제작 역량과 빠르게 성장하는 AI·IT 기술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 경쟁력을 하나의 산업적 가치로 결합하는 일이다.

“한국의 콘텐츠와 기술이 결합했을 때 세계 시장에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유비스라는 사례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종종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유비스가 주목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더 적은 반복과 더 짧은 제작시간, 그리고 창작자가 본질적인 고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AI가 캐릭터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 제작의 문법 자체를 다시 쓰기 시작하는 순간, 유비스가 말하는 ‘3D 제작의 글로벌 표준’도 더 이상 먼 미래의 구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