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의 시간을 빚어 100년을 준비하다
금산양조장 정원조 대표
4대에 걸쳐 이어온 양조의 시간, 금산의 이야기를 한 병에 담다
한 지역에서 80여 년 동안 술을 빚어왔다는 것은 단순한 업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계절과 온도를 살피고 발효의 속도를 기다리며, 한 세대의 경험을 다음 세대가 다시 이어받는 시간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금산양조장은 1930~40년대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랜 양조장으로, 현재 사용 중인 양조장 건물은 1964년 사용 승인을 받았다. 1971년 금산·완일·신명양조장이 합동해 금산탁주합동공사로 운영된 이후 단독 운영을 이어왔으며, 2009년 3대 주조인 정영진 공장장이 양조장을 인수하면서 현재까지 4대째 술 빚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금산양조장 정원조 대표가 오랜 세월 지켜온 원칙은 분명하다. 좋은 원료를 아끼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제대로 발효시키는 것이다. 설비와 유통 방식, 소비자의 취향은 달라졌지만 술의 본질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전통적인 항아리 발효·숙성 방식을 이어가며 계절과 온도, 습도, 발효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술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핀다.
이러한 경험과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제품이 금산인삼막걸리다. 금산의 대표 농산물인 5년근 인삼을 통째로 사용해 단순히 ‘인삼이 들어간 막걸리’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과 양조장의 시간을 한 병에 담아내고 있다.
금산 5년근 인삼과 96시간의 기다림, 부드러운 균형을 완성하다
금산양조장 정 대표가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료와 발효, 그리고 정직한 과정이다. 국내산 쌀을 사용하고 금산인삼막걸리에는 금산에서 생산된 5년근 인삼을 통째로 넣는다. 인삼의 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쌀에서 나오는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과 인삼 고유의 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균형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약 96시간 동안 발효와 숙성을 진행하며 술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핀다. 같은 원료와 배합이라도 계절과 온도, 습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인삼 특유의 향이나 쓴맛이 지나치게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막걸리 본연의 부드러움과 구수함이 살아날 수 있도록 조율한다.
금산인삼막걸리의 첫맛에서는 부드러운 막걸리의 풍미가 느껴지고, 뒤이어 은은한 인삼 향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과실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질감도 특징이다. 인삼주가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도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원료를 현대적인 취향으로 풀어낸 것이다.
금산양조장 정 대표가 바라보는 전통 역시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항아리 발효처럼 술맛의 본질을 결정하는 요소와 선대의 경험은 지키되, 위생관리와 생산환경, 품질의 일관성은 현재의 기준에 맞춰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정 대표가 생각하는 전통과 혁신의 균형이다.
금산을 대표하는 술에서 100년 양조장을 향해
최근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전통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맛과 가격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술을 빚었는지까지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정 대표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역의 농산물과 양조장의 역사 자체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삼의 고장이다. 정 대표가 금산인삼막걸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 역시 ‘왜 이 술이 금산에서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금산의 5년근 인삼과 4대째 이어진 양조의 경험, 전통적인 발효·숙성 방식이 하나로 연결될 때 비로소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만들 수 없는 금산만의 술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 대표는 금산인삼막걸리의 품질을 더욱 높이는 동시에 음식점과 관광, 선물시장, 온라인 등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확대하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전통주의 가능성도 살펴볼 계획이다. 젊은 소비자와 외국인들이 전통주를 보다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시음과 음식 페어링 등 다양한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삼이라는 한국의 대표 농산물과 전통 양조문화를 함께 알릴 수 있는 제품으로 해외시장까지 넓혀가는 것이 목표다.
정 대표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단순히 규모가 큰 양조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금산을 방문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양조장, 소비자가 믿고 다시 찾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 되는 것이다. 80년의 역사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 김영진 총무와 정영진 공장장을 비롯한 금산양조장이 준비하는 다음 시간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모인다. “80년의 전통을 넘어, 이제 100년을 준비하는 양조장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