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마지막 선택이 아니다” 상담의 문턱을 낮추다
상담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선택지다.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혹은 더는 버티기 어려울 때 찾는 마지막 단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8년째 채움미술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허민희 센터장은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상담은 특별한 사람이 받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다시 찾을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으면 합니다.”
심리상담을 중심에 둔 미술심리센터
그림 해석을 넘어선 상담, 교육이 만든 전문성
채움미술심리상담센터는 심리상담을 중심으로 미술치료를 병행하는 전문 상담기관이다. 성인부터 아동·청소년까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며, 특히 불안·우울·ADHD·학교 부적응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청소년 상담 비중이 높다. 개인 상담뿐 아니라 학교 및 교육청 연계 상담,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 그림책을 활용한 미술치료 등 다양한 방식의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채움미술심리상담센터의 가장 큰 강점은 ‘교육의 깊이’다. 허 센터장은 국내 상담 교육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사 양성 과정 전반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지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민간 자격증이 난립하는 구조 속에서 전문성의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최근에는 대학원 중심의 교육으로 흐름이 정리되고 있지만, 현장 경험과 이론을 함께 다루는 체계적인 교육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허 센터장은 상담과 미술치료 모두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훈련을 받았으며, 특히 해외 수련 경험을 통해 미술치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고 말한다. 미술치료는 그림을 단순히 해석해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허 센터장은 언어로만 다루기 어려운 감정과 무의식의 영역을 미술매체를 통해 안전하게 표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통찰과 정서적 해소를 돕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허 센터장은 자신의 상담 방식을 “언어를 한 가지 더 활용할 수 있는 상담”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아트’라는 또 하나의 언어를 통해 내담자와 소통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다층적인 접근은 감정 표현에 서툰 아동·청소년은 물론, 언어 중심 상담에 한계를 느끼는 성인 내담자에게도 효과적인 도구로 작용한다. 허 센터장은 “미술 매체를 활용한 상담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상담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채움미술심리상담센터는 1인 상담실 형태로 운영되며, 모든 상담을 허 센터장이 직접 진행한다. 프로그램 구성과 상담 방식 역시 자율적으로 설계해 상담의 밀도와 일관성을 유지한다.
상담을 넘어 공공으로
최근 허 센터장은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며 공공 지원 사업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담 접근성이 낮은 아동·청소년에게 보다 안정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허 센터장은 앞으로 학교 및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정서 안정, 사회성 교육, 인성 교육 분야에서 역할을 넓혀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특히 주목하는 대상은 아동·청소년이다. 코로나19 이후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교육 현장 역시 인성 교육과 정서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센터장은 이러한 문제를 단순한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인 사회성 교육과 정서 인지 교육의 공백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본다. 공감 능력과 타인을 고려하는 힘은 자연스럽게 생기기보다, 반복적인 경험과 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허 센터장은 공공 지원 사업과 연계해 아동·청소년의 사회성 및 정서 발달을 돕는 상담과 프로그램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제주에서의 시작, 상담의 문턱을 낮추며 상담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허 센터장은 원래 상담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공에서 출발했다. 대학 시절 전공은 사이코바이올로지, 이른바 정신생물학으로 뇌과학과 과학적 접근에 초점이 맞춰진 학문이었다. 그러나 심리학과 안에서 다양한 수업을 접하며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영역에 점차 관심이 깊어졌다. 여기에 평소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즐겨왔던 개인적인 성향이 더해지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미술치료라는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됐다.
미술치료를 전공하며 본격적인 길을 선택한 허 센터장은 “사람이 성장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한마디를 들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고 말한다. 상담이라는 일은 그렇게 그의 관심에서 사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허 센터장은 미국에서 가족치료와 미술상담을 전공하고 현지 자격을 취득한 뒤 국내 상담 현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상담실을 처음 열었을 당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지역 연고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데다, 상담에 대한 거리감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서 상담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초기에는 애월 유수암 일대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사회성 그룹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와 직접 접점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이어진 사회성 그룹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관계를 배우고, 보호자들이 상담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사회성 그룹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상담을 ‘치료’ 이전에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은 아이들뿐 아니라 보호자들에게도 상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제주 사회는 여전히 관계망이 좁고, 상담에 조심스러운 시선이 남아 있지만, 그는 지역 안에서 상담의 필요성을 꾸준히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채움미술심리상담센터가 지향하는 방향 역시 개인의 치유를 넘어, 상담이 일상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는 데 있다.
허 센터장은 상담을 마무리할 때마다 내담자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곳을 하나의 선택지로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상담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가 다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채움미술심리상담센터가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상담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안전한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