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축적된 시간, 편안함으로 귀결되는 공간
인테리어 현장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구조가 드러나고 치수가 바뀌며,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설계 단계에서 정리된 방향과 달리 현장은 언제나 다른 선택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간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기술보다 판단이다. 무엇을 유지할 것인지, 어디까지 조율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멈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분명할수록 공간은 흔들리지 않는다. 슈퍼스프레이 홍영준 대표는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축적해 왔다. 수많은 변수와 결정의 순간을 거치며 쌓아온 이 기준은 그의 모든 작업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가 공간을 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현장에서 시작되고, 그 판단은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현장에서 시작된 선택의 기준
취업을 앞두고 있던 대학 시절, 홍영준 대표는 선배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게 됐다. 반복되는 일상과 정해진 출근 시간 속에서 힘들어하던 모습들은 그에게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던 미래의 모습이 과연 이들과 다를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공간 디자인이라는 선택에 닿게 된다. 이 선택은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었고 참고할 만한 선례도 없던 그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처음 마주한 인테리어 현장은 상업 공간이었다. 빠른 회전과 반복되는 프랜차이즈 구조 속에서 그는 실무를 익혀갔지만, 결과를 우선하는 작업 환경은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 선택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주거 인테리어 현장을 다니며 전혀 다른 방식의 작업을 경험한다. 결과 이미지보다 도면이 먼저였고, 공간은 3D가 아닌 평면도 위에서 상상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면을 보면 공간이 영상처럼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경험은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와 마감 뒤에 숨은 디테일,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 도면 단계에서부터 고려하게 됐다. 그는 특히 주거 공간에서 이러한 과정이 완성도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현장에 대한 태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하나의 작업이 끝났다고 해서 안심하기보다 다음 단계에서 이어질 공정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도면을 반복해 확인하며 공간을 미리 그려보는 이유도, 현장에서의 판단이 이후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면’으로 읽는 주거, ‘선’으로 설계하는 상업
홍영준 대표는 주거와 상업 공간을 서로 다른 기준으로 바라본다. 그는 주거 공간을 ‘면’으로 읽고, 상업 공간을 ‘선’으로 설계한다고 설명한다. 주거는 머무는 공간이기에 면이 만들어내는 안정감과 여백이 중요하고, 상업은 이동과 경험의 공간이기에 동선과 선의 흐름이 핵심이 된다. 이 같은 구분은 디자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이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주거 공간에서는 시선이 오래 머무는 면의 비율과 연결이 중요하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벽면, 주방과 이어지는 면, 현관에서 처음 마주하는 평면까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읽혀야 한다. 반면 상업 공간에서는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경험이 된다. 입구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선, 동선이 꺾이는 지점, 자연스럽게 멈추는 포인트까지 모두 설계의 대상이 된다. 그는 “주거 공간에서는 면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이 중요하고, 상업 공간에서는 선과 동선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흐름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각은 상담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미팅 자리에서 자재나 예산보다 생활 방식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발 사이즈와 옷 스타일, 수납 습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밀도까지 이어지는 질문들은 공간을 실제로 사용하는 장면을 미리 그려보기 위한 과정이다. 도면을 먼저 제시하고 수정 요청을 기다리기보다, 생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제안이 먼저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같은 태도는 설계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레퍼런스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취향의 방향을 읽고 이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해석한다. 명확한 기준점이 있어야 디자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기준 덕분에 현장에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대응은 빠르고, 철거 이후 치수가 달라지는 상황에서도 공간의 비율과 흐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편안함으로 완성되는 공간의 기준
홍영준 대표가 말하는 좋은 공간의 기준은 분명하다. 눈에 띄는 디자인이나 화려한 마감보다, 사용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머무를 수 있는 상태에 가까운 공간이다. 그는 공간이 완성되는 순간보다 그 안에서 시간이 쌓이며 드러나는 편안함을 더 중요하게 본다. 의식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 그 지점이 공간의 완성이라는 판단이다.
그가 말하는 편안함은 감각적인 요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구조와 마감, 동선의 여유,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도 불편이 누적되지 않는 상태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그는 단열이나 방수, 구조 보강처럼 사진으로 남지 않는 공정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의 상태를 좌우하는 요소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예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평당 비용이나 자재의 등급이 곧 만족도로 이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가 분명할수록 공간은 오래 사용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잘 꾸며진 공간’보다 ‘잘 쓰이는 공간’이 더 오래 남는 이유다. 이러한 이유로 홍영준 대표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에 쏟는 시간과 밀도가 줄어드는 순간, 자신이 지켜온 기준 역시 흐려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업은 주로 도심의 현장에서 이뤄져 왔지만, 언젠가는 도심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스테이와 같은 형태의 공간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축적해 온 기준을 보다 느린 시간의 공간에서도 그대로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슈퍼스프레이의 공간은 화려함보다는 태도로 기억된다. 눈에 띄지 않는 선택들이 쌓여 공간의 밀도를 만들고, 그 축적은 사용자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조용하지만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공간. 그 배경에는 홍영준 대표가 현장에서 축적해 온 판단과 끝까지 지켜온 기준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그려갈 다음 공간 역시, 빠른 변화보다 축적된 기준 위에서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