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의 희망, ‘평화의 소녀상’ 입상 제작하며 현실이념 지향하는 조각예술
‘나눔의 집’의 희망, ‘평화의 소녀상’ 입상 제작하며 현실이념 지향하는 조각예술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09.16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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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사랑을 다룬 작품세계와 시대정신 작품 공존, 이탈리아 유학으로 터닝 포인트 준비”
조각가 이행균 작가
조각가 이행균 작가

현실을 기록하는 구상 조각가, 사회의 이면에 귀를 기울이되 조각의 최고봉을 추구하고자 조각 외에는 돌아보지 않았던 뿌리 깊은 조각가, 이행균 작가는 삶이 곧 구상이며 다른 장르보다 인물의 구상으로 현실을 담겠다는 대학 초년생의 신념을 지금까지 지키면서 조각가들이 바라는 많은 이상을 실현해 온 예술가다. ‘나눔의 집’의 희망의 메시지이자, 할머니들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10대 시절을 상징하는 고 배춘희 할머니 흉상 등 수많은 역사와 시대정신을 조각에 담은 이 작가는 의외로 따뜻한 가정의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인물상으로 자신의 삶을 반영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자녀들을 키우고 다양한 조각회 소속으로 이루지 못한 다른 이상인 역사기록 작품과 종교적 감동을 담은 작품을 추구하고자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는 이 작가의 근황을 소개한다.

희망의 꽃을 피운 소녀상 작가, 작은 친분에서도 역사를 직시하는 작가정신 담다

“대중들이 이행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역사를 기록하는 조각가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과의 인연으로 고 배춘희 할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할머니들을 흉상으로 제작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조각가 이행균 작가는, 이제는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 반전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게 된 ‘평화의 소녀상’ 제작자이기도 하다. 1996년부터 적적함을 달래드리고자 교류했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2009년경부터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차례로 돌아가시는 상황이 안타까운 나머지 그분들의 삶을 조각으로 기념한 이래, 이 작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기록하는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가는 저명인사의 의뢰로 미 의회 위안부결의안을 채택한 레인 에반스 상원의원의 동상을 제작하는 한편, 강동구 소녀상을 설치하고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에서 유래한 소녀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강동구와 국민성금으로 이뤄진 프로젝트로 소녀상 중 처음으로 입상으로 제작된 희망의 소녀상은 항일을 상징하는 꽃봉오리를 쥐고, 작품제작비를 일정 이상 모아준 1천 6백 명의 이름이 새겨져 한 사람의 100보보다 100인의 한 보가 더 의미 있다는 극일정신을 동시에 담고 있다.

울릉군에서의 프로젝트가 아쉽게 결렬된 이래, 이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정부청사중 하나인 구청에 설치하게 된 점이 의미 있다는 이 작가는 평화의 소녀상을 개관하며 “125년 전 동학군들이 일본군과 합작한 관군 손에 학살당했지만 이제는 반대로 2019년 강동구청이 시민들이 모아준 8천만 원의 성금으로 극일을 이뤘다”는 소감을 남겼다. 

동학혁명에서 촛불혁명에 이르는 한국현대사와 진실한 종교적 조각에 매진하고자 유학

이 작가는 중3에 5.18민주화운동을 겪고, 보이는 것만이 참인 것은 아니며 한 때 저항의식을 갖고 대학 시절 고심한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소임을 다하면 사회의 정의가 선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조각가를 결정하고 상경해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아르바이트조차 조각에 관련된 것만을 고를 만큼 55세인 지금까지 조각만 바라보며 초연하게 살아왔다. 주물에 대한 논문을 쓰고, 석재 공장에 취업하고 은사들을 만나 실력을 키운 이 작가는 가정을 이루고 개인적 경험 속에서 행복은 가정을 통해 전염되고 그러한 즐거움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2004년경부터는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조각을 시작했는데, 이 작품들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3.1운동과 관련된 조각품을 여러차례 제작한 이 작가의 종교는 천주교다. 그래서 오석으로 만든 절두산 성지의 성 바오로 상을 애착 갖는 작품으로 꼽는다. 오로지 조각만으로 작가의 인생과 관념을 담기에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인물조각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작가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문인, 역사가들과 상의해 객관적인 사료(史料)를 담아 우리역사와 민족의식을 담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조각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작업을 하는 동안 그렇게 원하는 것을 충분히 추구하지 못하였기에, 조만간 이탈리아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이 작가는 앞으로 시도할 가장 중요한 테마를 두 가지로 정했다고 한다. 하나는 동학혁명, 3.1운동, 4.19의거,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후손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한국적인 구상조각으로 표현하고, 그 다음에는 유럽 작가들의 종교를 주제로 한 조각들처럼 사실적인 묘사로 감동을 주는 작품도 만들도록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돌과 돌을 붙여 표현하는 상감기법과 수예 퀼트에서 응용한 방식, 또 오브제에 전기를 연결하거나 움직이게 하는 형태 기법으로 변화를 주었다면, 유학은 평생을 염원한 조각예술 작가로 거듭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 작가는 설명한다. 조각으로 생업을 이루면서 시대정신과 작가정신, 예술을 향한 신념을 실천해 온 이 작가는 2년 여 유학생활 동안 자신을 단련할 것이며, 이번 기회가 30년 간 돌을 쪼는 인생에서 가장 도전적인 일이기에 사뭇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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