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역동적인 힘을 도심의 정교한 금속들로 재현한 공존의 메시지, ‘자연의 소리’
자연의 역동적인 힘을 도심의 정교한 금속들로 재현한 공존의 메시지, ‘자연의 소리’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09.11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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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컨셉을 전시공간과 목적에 맞게 조율해 생명체의 희망차고 경이로운 나래를 펴다”
조각가 이성옥 작가
조각가 이성옥 작가

지난 하버아트페어에서 홍콩 하버시티몰 게이트웨이에 설치된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힌 조각가 이성옥 작가가 10여 년 간 해온 테마, ‘자연의 소리(Sound of Nature)’ 중 하나인 <연못 시리즈>의 초대형 설치미술 작품은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직설적인 은유(메타포)가 담겨 많은 담론을 제시한 작품이다. 기하학 조형에서 키네틱으로, 자연을 향한 향수에서 더욱 본격적인 현실구현으로 극사실적 가상현실을 보여준 이번 담대한 설치미술을 통해, 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자연과의 공존과 어우러짐이다. 이 작가에 따르면 가냘픈 꿀벌과 잠자리가 자연에 기여하는 공로는 생태계 구성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막연한 추억을 사람들이 오가는 도심 속 공간에서 재현하는 은유성에 있다. 금속이라는 문명의 피조물로 자연의 창조물을 재현하는 아티스트, 이 작가를 만나 멀어져 가는 자연과 생명들을 도시 한 복판에서 부활시킨 비결과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독창적인 기질에 대해 들어 보았다.

환경과 생명을 향한 성찰을 담아 예술작품으로 은유된 잠자리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

스토리가 있는 설치미술을 추구하는 조각가 이성옥 작가의 작품세계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은유이자, 멀어져 가는 자연을 도심의 사람들 앞에 부활시키는 ‘자연의 소리’ 가 담겨 있다. 하버씨티몰 내의 360도 개방된 에스컬레이터 홀 공간에 생명의 날개이자 잠자리 형상으로 은유된 금속 날개를 달고, 생명이 꽃피며 금속으로 주변을 맑게 비추는 거울 같은 연못을 재현한 이 작가의 <연못 시리즈>는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투영되어 자연과 물아일체에 이르게 만드는 신비롭고 거대한 작품의 ‘테마파크’ 다. 아이들 고사리 손에서도 해지는 여린 날개이지만, 단 4장의 날개로 대양을 건널 줄 아는 잠자리는 유년기의 추억이자 도시에서 자연을 소환하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한때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추상조각을 추구하던 이 작가의 40여 년 조각인생에서 1995년 용인의 산 속에 작업실을 만든 일은 마당의 꽃과 제비나비, 개구리들의 합창과 밤과 낮이 다른 곤충들의 소리에 한결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과 곤충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데 이어, 2000년 중반부터 사라져가는 환경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든 이 작가는 사라져 가는 참꿀벌의 노란 빛과, 어린 시절 투명하게 반짝이는 고추잠자리 날개의 광택을 작품에 나타내곤 했다. 곤충의 날개에 매달린 반짝이는 스팽글은 바람이 불면 수평 회전하며 신비로운 날개 짓을 한다.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들은 자연의 숨결과 생기를 담아 도시인들이 잊고 살았던 노스탤지어적 감성을 자극한다. 이 작가는 이전에 설치했던 작품을 하버시티몰에서 3배 이상의 규모로 제안 받고, 자신의 역량을 다해 도전적으로 접근해 성공을 거두었다. 아름다운 둥근 돔에 어울리는 날개 배치와 원형 파빌리온을 구성하고, 아래에 스테인리스스틸 연못을 만들어 찬란한 경관이 수면에 비치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 몰의 한정된 공간 속에서 몰의 문이 닫는 시간에 이뤄진 작업은 1년에 걸친 철저한 넘버링, 3D도면작업으로 21개 zone의 격자공간으로 나누어 방향과 지점을 정확하게 기획해서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기하학적 추상조각에서 10년 간 곤충의 형상과 자연의 빛깔을 키네틱하게 재현하다

공간에 종속되는 평면 피조물과 달리, 이 작가의 작품들은 공간에 맞게 기획된 인스톨레이션으로서 환경의 특수성과 조건에 따라 모든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높이와 거리에 따라 유니크한 감성을 자극한다. 홍콩에서 확인된 관객들의 반응과 작품의 우수성은 한국까지 전해져 조만간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도 선보일 예정인 잠자리의 키네틱하고 우아한 비상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기하학적인 조각에서 도심의 금속을 이용해 자연의 생명체로 조형하기까지, 이 작가에게 생태학적 깨달음은 작품의 접근성은 물론 더욱 지구환경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작게는 일회용품을 자제하는 노력에서부터, 크게는 자연의 매혹적인 자태를 보여주고 힐링시켜 관객들에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교감과 소중한 그리움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이 작가는 소형 작품도 능숙하지만 대형 설치미술에서 더욱 역량을 나타낸다. `90년대 중반, 10년 무사고/무쟁의를 기념하고자 ‘대우조선i 희망90i상징조형물’은 제작 공모를 했을 때, 당시 모두의 예상을 깨고 30대 초반의 이 작가가 공모에 선정되어 35 x 35m 규모의 더 넓은 공간에 스테인리스스틸과 석재가 결합한 까다로운 작업의 시도로 상징성을 표현한 거대한 기념조형물을 탄생시켰다. 노조의 투쟁과 화합, 불꽃같은 이념으로 밝은 희망을 기원하는 기록물에 직원 개개인을 상징하는 이름 새긴 돌들의 모음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예술가의 뚝심으로 관철해 성과를 얻어낸 만큼, 이 작가는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화합과 투영, 공간 활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잠자리를 계기로 깨어난 ‘자연의 소리’ 계속 채집하는 단계, 모빌 시리즈로 보여 주겠다

작품을 만드는 땅은 내 것이 아니지만, 예술을 할 때만큼은 그 구획이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이 작가는 작품을 대하는 담대함으로 2019국제조각페스타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이는 개인전 150명, 해외작가 및 원로작가 등 초대전까지 총 200여 아티스트들이 참가하는 명실공히 국내 최대 조각전으로, 전시기간 동안  수 만 명의  관객들을 소화해 내 예술의전당 최대행사 중 하나이자 최고관람객상에 선정되어 세계 각지의 관객들이 방문하는 행사로 성장해 올해 9회를 맞는다. 이 작가는 제작비용과 노고가 큰 조각가들을 알리는 한국조각 최대 규모 축제이기에, 참여작가는 운영위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으며 전통과 현대 모두 잘 안배하는 객관적인 잣대로 통과된 우수 조각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이런 일정 중에서도 이 작가는 차기작의 작업 방향을 생각하며, 잠자리를 계기로 깨어난 ‘자연의 소리’는 비상 이후에도 새로운 소리로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곤충 메타포 외에도 스테인리스스틸을 얇은 접시처럼 다듬어, 그라인더로 그림을 그리고 곤충과 물, 바람, 풀이 스치는 다양한 소리들을 작품으로 보여줄 준비를 하는 이 작가는 과거의 작품 외에도 다양한 ‘자연의 소리’ 테마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10년 전 발표한 작품이 최근 부각되어 재설치 의뢰를 받을 만큼 시대를 앞서가는 이 작가는 높이 10m가 넘는 청주공예비엔날레 현장에 모빌 작품 ‘자연의 소리’ 설치미술전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9월 코엑스 키아프(KIAF), 그리고 10월 전시가 연이어 기다리고 있다. 설치미술은 구상에서 제작, 설치 과정까지 엄청난 공과 물리적·정신적 노력,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 작가는 테마가 있는 작품을 할 공간이 있고 작품의 뉘앙스를 충분히 펼쳐 보일 수만 있다면 어디든 신비로운 정원과 생명체들이 상생하는 환상세계로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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