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명품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수트, 35년 테일러의 인생을 걸다
고객을 명품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수트, 35년 테일러의 인생을 걸다
  • 임세정 기자
  • 승인 2019.05.16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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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정장 맞춤전문점 ‘다빈치 테일러’ 이정수 명장 

[월간인터뷰] 임세정 기자 = 옷은 그 사람을 드러내는 얼굴이자 명함이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가 나를 대하는 자세, 나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35년간 맞춤정장의 대중화에 힘써온 다빈치테일러 이정수 명장은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한다. 바로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이것이야말로 옷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 그가 지금껏 한국형 맞춤정장의 외길을 걸어온 이유다.

직접 경험한 ‘좋은 정장’의 기준, 고객마다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다
35년 맞춤정장 경력의 전문가, 해외 유명브랜드와도 견줄 수 있는 국내 최고의 명장이라 손꼽히는 이정수 명장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해남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후 학창시절 농구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던 와중 심각한 부상으로 좋아하던 농구를 그만둬야 했던 그는 평소 관심 있던 패션 분야에 진출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1984년 맞춤정장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며 동대문 원단시장을 오가고 정장의 원단과 부자재 심부름을 도맡았다. 그러면서 제품의 특성과 장점, 신상의 입고와 재고, 가격대비 성능 등을 누구보다 빠르게 익히는 한편, 어깨 너머로 틈틈이 체촌을 연습했다. 현장에서 끼니와 숙박을 모두 해결할 정도로 매장의 신임을 얻고자 혼신을 다했던 이정수 명장은 평소 깔끔한 이미지와 성실한 품행으로 인근 매장은 물론 고객들에게도 호감을 이끌어내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 속에서도 이 명장은 묵묵히 디자인 연습에 힘쓰며, 고객응대와 매장운영, 디스플레이는 물론 셔츠와 팬츠, 재킷과 코트 등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수트가 하나의 ‘옷’으로서 완성되기 위해선 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본 당시 한국 맞춤복 계통의 거목 故 민홍기 사장을 만난 뒤, 프로가 갖춰야 할 정신과 자세를 키워온 이정수 명장은 1990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압구정, 강남, 부천, 소공동, 검단 등을 오가며 자신만의 맞춤양복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현재 인천 청라지구엑슬루타워 B동 ‘다빈치 테일러’에서 수제 맞춤정장의 긍지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명장은 “제가 정장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창작하겠다거나 예술을 하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가 바라본, 내가 입어왔던 ‘좋은 정장’의 느낌을 내 스타일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양복점을 해서 먹고사는 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출발했던 것, 그래서 수트 제작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작자의 취향이 아닌, 입는 이의 취향, 기질, 체형에 맞춘 것이 저희 다빈치 테일러의 색깔이자 철학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 명장은 결혼과 환갑, 칠순 예복을 비롯해 졸업과 입학, 입사와 면접, 연미복과 연주공연복 등 모든 종류의 남성맞춤정장 제작이 가능한 한국판 마스터테일러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적인 스타일이 세계적인 스타일, 맞춤정장의 정도를 지킬 터”
국내 맞춤양복 시장은 한때 큰 위기를 겪었다. 중국에서 유입된 저렴한 기성복의 출현으로 소비자들이 고가의 맞춤양복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국내 수많은 의상실, 양복점들이 수십 년의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폐업을 결정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정수 명장은 시대적 흐름이 다시금 맞춤복으로 변화하리란 믿음과 꾸준히 자신을 찾아주는 수많은 고객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자 이러한 고비를 견뎌내고 극복해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의 가장 큰 보물이 된 것은 바로 ‘손님장부’다. 이 노트 안에는 고객의 취향과 직업, 이미지, 매치하는 액세서리와 헤어, 라이프스타일을 비롯, 원단 선정이나 체촌 단계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고객마다 다른 성향, 다른 직업, 주로 입게 되는 환경 등을 고려해 이에 딱 맞는 옷을 제작하는 그의 이러한 방식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든 기성복에 길들여져 있던 고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이 명장은 “누구에게나 좋은 정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황과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좋은 정장’의 기준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라고 말했다. 소지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주머니에 휴대전화와 지갑, 필기구를 넣어도 핏이 처지지 않도록 제작하고, 외근이나 해외출장이 잦은 사람에게는 내구성과 착용감이 좋은 원단을 추천한다. 반대로 특별한 날의 예복이나 공연용 정장의 경우엔 사진 조명을 잘 받을 수 있는 원단과 디자인을 선택해 고객에게 ‘최고의 날’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가난이나 신분고하를 넘어 특별한 날 만큼은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자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의 경사에 예복을 무료로 디자인해주고 있으며, 매달 복지원에 정기적인 기부활동도 지속하며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창업 이래 체인점 문의를 꾸준히 받고 있다는 이 명장은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정도를 걷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뤘기에, 이를 굳건히 지키고 다른 이와도 그 가치를 나누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그는 베트남에서 자국 정장을 발전시키겠다고 찾아온 이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이와 함께 한국 정장의 이미지를 드높이는 데에도 일조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 정장에 열광하고 있지만, 오히려 최근에는 국내파 테일러에게 매료된 외국인들이 정장을 맞추러 한국에 오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스타일이 세계적인 스타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제 맡은 바 소명을 다하겠으며, 나의 삶에 간섭하여주시고 동행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명품정장이란 ‘자신에게 잘 맞게 정성들여 만든 정장’이라 말하는 이정수 명장. 자신의 멘토들이 그러했듯 최고 기술의 정석을 지켜나감으로써 제자들에게 평생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는 그에게서 진정한 대한민국 명장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취재_임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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