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회화라는 상상력이 만든 옷을 입고 더 큰 조형미를 갖추다
조각, 회화라는 상상력이 만든 옷을 입고 더 큰 조형미를 갖추다
  • 오상헌 기자
  • 승인 2019.05.1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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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으로 호흡하려는 작가의 바람과 공공 조형물에 필요한 산뜻함이 교차된 즐거움을 연출”
조각가 김대성 작가
조각가 김대성 작가

[월간인터뷰] 오상헌 기자 = 성남 신청사, 경부고속철도 대전 역사 조형물, 송파구 올림픽 조형물, 노원구 문화의 거리 상징 조형물, 국립수목원 ‘숲의 전당’ 부조에는 공통점이 있다. 입체조형물이자 회화이기도 한 신기한 형상의 작품을 제작해 건축 조형물 작가로 각광받는 조각가 김대성 작가의 작품들에는 환희, 아기자기함, 한여름의 햇살 같은 싱그러움이 있다. 한때 사후세계와 자연, 인생관에 대한 심도 있는 작품을 추구했던 김 작가가 조각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그의 조각 세상은 보편적 정서에도 눈을 뜨기 시작해 꿈의 세계인 앨리스와 모자 장수 토끼, 추억의 고전 영화의 장면들을 차례차례 그려 내기 시작했다. 정교한 표현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회화 조각’의 대명사, 대중성이라는 한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김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혼합재료와 물감 사이를 유영하는 회화의 희로애락, 부조를 살리는 생생한 패턴이 되다
예고를 졸업 후 조각을 전공한 작가 중에서도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조각가 김대성 작가는 1990년대 사후세계 탐구와 자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무채색으로 그린 예술 전반부를 거쳐, 과도기인 스크래치 컬러링 조형물을 지나 현재는 원색 패턴 채색 기법으로 독보적인 조각과 조형물을 선보이고 있다. 동양의 오방색과 단청문양에서 온 조형성과 회화성이 짙은 회화 조각을 시작하여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색 조각에 몰입한 김 작가는 <보랏빛 화병>, <설원의 노을>처럼 디오라마 구조와 스크래칭 기법을 보이며 한결 화려한 스타일로 변모했다. 2005년 작이자 작가가 아끼는 작품 <푸른 고양이>는 “고양이가 있는 집은 장식품이 필요 없다”는 웨슬리 베이츠의 말처럼 화려한 색과 곡선, 세심한 털 표현으로 ‘인면묘’적인 고양이의 매력을 살린 작품으로, 이후 전통 민화를 4차원 초현실 세계에서 조우한 것 같다는 평가 속에 동서양의 패턴과 입체화면분할 도색으로 꽃과 여인, 동물과 인간의 군상을 폭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과도기인 <예술가의 손>으로 금기인 육손과 칠손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김 작가는 예술가인 자신을 돌아보고, 질책하는 두 개의 손가락을 더한 것을 마지막으로 에폭시와 레진을 활용한 ‘테마파크’ 적 상상력의 밝은 세계로 도입한다. 2010년을 전후해 광대와 꽃을 주제로 다수의 작품을 만든 김 작가는, 혼합재료를 쓸 때부터 작품에 즐겨 등장시키던 토끼로 본격적인 스토리를 보여 준다. 토끼는 예쁘지만 연약하고, 광대는 웃는 화장 속 고뇌를 숨긴 존재이기에 김 작가의 페르소나로서 충분한 배역을 얻었다고 한다. 선을 그어 퀼팅처럼 채색하는 이유는 감정의 희로애락처럼 회화의 다양한 면을 퍼즐처럼 펼쳐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이며, 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일컬어 ‘색으로 표현한 수필과 일기 모음’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또한 작품에서 여성이나 일부 동물을 제외하면 눈이 없는데, 시선이 눈으로 가는 대신 전체적인 맥락을 보도록 하는 연출이라고 한다. <5월의 향기>, <80년 여름>처럼 꽃 속의 점과 무늬가 전부 다른 원색의 클래식한 패턴이나, <5월의 햇살>, <여우비의 향기>처럼 탱화나 실제 도자기에 새긴 그림처럼 묘사된 물고기의 비늘은 그 생생한 정교함으로 탄성을 자아낸다. 

한정된 재료보다는 회화 같은 부조에 추억의 단면들을 넣는 참신한 시도 계속할 것
김 작가의 상징이 된 토끼는 현재 발랄하고 산뜻한 모습의 캐릭터를 이어받아, 수년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테마에서 활약 중이다. 지난해 동탄 앨리스빌을 위해 제작한 체셔 고양이, 화려한 패턴의 티컵 흰토끼와 거대한 도트무늬 꽃 기둥 조형물들은 한국의 공동거주 공간을 위트 있는 트럼프 카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크햇과 회중시계를 든 흰토끼를 주축으로 체스판을 닮은 바닥의 체크 패턴 위에 조형물들을 체스 말처럼 연출한 조형물 또한 이색적이다. 또 김 작가가 부조와 조각에서 선호하던 여인은 앨리스가 되었고, 토끼는 모자 장수가 되어 <앨리스 이상한 나라에 가다>에서 랑데부를 이룬다. 대중적인 설치물들을 제작할 때는 도색 후 안정성과 부식 방지를 위해 스테인리스스틸과 알루미늄 소재를 선호하며, 김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에 공공성과 대중성을 고려한 요소들 사이의 접점을 찾은 덕분에 반응도 좋다. 모든 예술과 종교, 철학이 죽음에 대한 관점에서 기복 신앙, 절대자를 향해 기원하는 춤과 노래를 파생시켰듯이 삶과 죽음에 대한 내면의 성찰에 초기 창작 포인트를 잡았었다는 김 작가는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현재의 작품과 색감에 대해, 스스로 보았을 때도 기분 좋고 행복한 작품을 추구하고자 변화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삶의 영역을 다룰 때에는 유년기의 기억이나 취향, 추억으로부터 모티브를 얻는다. 오방색에서 시작해 갈수록 조각에 회화적인 느낌을 더 많이 넣게 되었다는 김 작가는, 감정의 여러 단면들을 보여주고자 영역 분할이 잘 되고 모든 패턴이 각기 다른 부조 회화 작품을 자주 제작하고 있다. 한편 패러디에도 일가견이 있는 김 작가는 <한여름의 산책>, <나른한 오후>처럼 좋아하는 마티스, 고흐 등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의 색감과 구도를 활용한 부조를 만들거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과 같은 명작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현하기도 한다. 또한 김 작가는 뭉크의 작품을 밝고 따뜻하게 변형한 <뭉크의 정물>을 비롯해, 페르소나인 토끼를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의 명장면 주인공으로 만드는가 하면, <카사블랑카>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인 <토끼 뉴욕 가다>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형화된 색에서 점차 영화 같은 색감을 사용하며 매년 채색법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는 김 작가는, 앞으로도 창작에 있어서 관객의 감상할 몫을 건드리지 않고 시기별로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라는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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