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솟아난 천지인의 기운을 퍼포먼스의 선으로 과감하게 연주한 현대서예
검게 솟아난 천지인의 기운을 퍼포먼스의 선으로 과감하게 연주한 현대서예
  • 오상헌 기자
  • 승인 2019.03.18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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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영속성에 하늘의 이치와 땅의 도리, 사람의 덕목에 대한 근본을 담아 재해석하다”
현대서예가 초람(艸嵐) 박세호(朴世鎬) 작가
현대서예가 초람(艸嵐) 박세호(朴世鎬) 작가

[월간인터뷰] 오상헌 기자 = 서예연구가이자 지도자로서 서예 기술과 문화를 복원하고 계승하는 현대서예가 초람 박세호 작가는 조형성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가로서, 현대적 회화성의 가치로 엄숙한 서예 계의 필묵에 새로운 숨통을 트이게 하며 품격 있는 신고전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경북 영천을 본거지로 한 초람서예연구원과 초람서예학회를 이끌며 2008년 ‘올해의 청년작가’에 선정되기도 한 초람 작가는 특별한 필법 시도로 해외에 진출해, 25kg에 달하는 붓으로 수십 미터의 한지와 광목천 위를 누비는 열정적 퍼포먼스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아왔다. ‘하늘을 연주하다’라는 테마로 검을 ‘현(玄)’의 파자(破字)와 명징(明澄)하고 절도 있는 글자의 흐름 속 아름다움을 살린 초람 작가는, 일찍이 서예와 회화의 결합으로 유럽에 진출한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며 이에 못지않은 잠재력과 가치를 지닌 한국 서예의 기운이 세상의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호랑이의 포효처럼, 주작의 깃털처럼, 현무의 무자맥질처럼 절도 있고 호쾌하게
중국, 포르투갈, 프랑스를 비롯한 국내·외에서 18회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한중일 서예전인 ‘동아시아 필묵의 힘’, ‘한중문화명인초청전시’, ‘한글 문자도 특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현대서예가 초람 박세호 작가는 2017년 대구경북서예상을, 이듬해 서예 거장 서병오 선생을 기리는 석재청년작가상을 수상하며 현대서예의 대표 작가로 거듭났다. 한국서예의 미래로서 해외 전시회 작품집의 표지작가로 선정되기도 한 초람 작가는, 50m 대형 화선지 위에 거대한 붓 퍼포먼스의 예술혼을 펼쳐 서예 퍼포먼스의 종주국인 중국 광저우 육조사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0세 때 서예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여, 계명대 서예과와 동 대학원, 경주대 문화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30여 연간 서예를 해온 초람 작가는 동아시아권 서예의 변화의 바람을 포착하여, 일찍이 유럽에 진출해 인체를 붓으로 삼아 서예와 회화의 결합을 꾀한 중·일과는 다른 글자의 심미성을 표출하고 있다.

1회 개인전부터 서예과 1세대로서 회화의 서예를 추구한 초람 작가는 보수적인 고전서예 외에도 서각(書刻), 전각(篆刻), 문인화, 한글서예에 능하여 중국에서 자리 잡은 현대서예를 중심으로, 서예의 ‘천지인’ 3요소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초람 작가는 인터넷의 발달로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관객들을 위해, 가로획은 땅, 세로는 나무의 기운과 사람의 형상, 점은 하늘의 둥근 형상이며 음·양은 왼쪽과 오른쪽, 물의 기운은 아래로, 불은 위로 향한다는 오행과 자연의 형상을 인간의 도리에 대한 해석으로 어우러지게 하여 더욱 과감하게 표현한다. 전서, 예서, 초서, 해서, 행서의 둥글고 각진 글씨는 호랑이의 포효처럼, 주작의 깃털처럼, 현무의 무자맥질처럼 절도 있게 흐르는 호쾌한 필법으로 완성되며, 글씨와 전각, 문인화의 나름체로 서예도 동양화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파자 되어 긴 소리로 울려 퍼져 연주되는 검을 현, 새로운 유형의 서예문화 만들다
<絃玄(현현), 현을 연주하다>라는 작품은 악기줄과 흑을 의미하는 현의 글자들을 ‘하늘을 연주한다’는 심오한 뜻으로 파자했으며, 작품은 현재 제주도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玄 1>도 같은 재료와 주제로 파필의 다양한 필압과 먹의 심도 있는 농담을 보여주며, <꽃이 핀다>처럼 서예를 겸한 아름다운 한글 문인화도 있고, 전·예·행·초서 등 고전 필법으로 흑·백·금, 흑·백·적의 강렬한 수묵담채 탁본이나 타이포그래피적 시도를 하기도 한다. ‘현음(玄音, 현의 소리)’, ‘현향(玄響, 현의 울림)’, ‘현도(玄刀 - 칼은 또 다른 붓이다)’ 등 현이라는 글자로 표현한 초람 작가의 예술품들은 크고 통쾌한 굴곡에 선이 활달하지만, 한용운 선생의 시를 읽은 느낌을 선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고 관객이 눈물을 흘릴 만큼 섬세한 면도 있다. 1미터가 넘고 25kg에 달하는 큰 붓의 퍼포먼스는 초람 작가가 대학 때부터 숙련한 것이며, 먹물이 퍼지기 전에 글씨의 형상을 만드는 의지와 체력의 싸움을 20년간 해오다 보니 소위 운필이라는 붓과의 일체감에 도달했다고 한다. 초람 작가는 현의 소리(音)와 울림은 사람의 소리이자 하늘에서 땅으로 흐르는 기운의 표현이기에, 땅 위에 올린 긴 화선지 위에서 온 세상 각 지역의 기운을 받는 운필이 작품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나름체와 민체 정도로 문인화의 보조 역할을 하거나 실용적인 토 달기에 쓰이는 현대서예는 초람 작가에 의해 실험성과 작품성으로 현대미술과 대등하게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분야로 성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서예로 천지인을 그리고 감상하는 법과 인간의 근본, 베푸는 도리를 알리다
초람 작가는 영천의 서예문화를 계승하는 한편, 문화재를 복원하고 대한민국서예대전과 대구시와 경상북도서예대전, 서예문화대전 초대작가 활동과 대구경북서예가협회 국제부이사장 및 육군3사관학교, 서라벌대학교 외래교수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초람 작가는 글씨의 기운을 통해 마음이 바뀌고 기운이 승화되기에, 사람들이 우리의 것에서 감동을 느끼고 사회에 베풀 기회를 주고자 끊임없이 글씨를 연마한다. 그는 후학들에게 시류를 타지 않으면서 철학을 보여주는 서예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ppt로 작품의 획마다 표현된 사상을 보여준다. 또 천지인의 의미를 어떻게 읽는지, 기운이 있는 글씨와 죽은 글씨를 구분하는 법과 글의 외향보다는 내면으로 들어가 감상하는 도리를 알려주고 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하듯, 글씨는 쓰는 사람을 닮는다. 생각과 인품이 획의 기교에 드러나는 글씨가 사람의 격을 품위 있게 올려주기에, 예쁜 글씨보다는 마음이 가거나 더 보고 싶어지는 글씨를 쓸 것을 강조하는 초람 작가는 ‘천지인’과 현, 하늘의 주제도 결국 사람들이 하늘의 이치, 땅의 도리, 사람의 덕목에 대한 근본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작가 자신의 삶 또한 무(無)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는 삶이며,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돌아가는 예술 또한 천지인에 대한 자연의 도리와 이치를 깨우치는 것이라 한다. 무릇 창작은 예술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사회와 미래를 위해 베푸는 것이라 하였다. 묵직한 붓을 품고 혹한의 추운 겨울 온몸을 땀으로 적시는 초람 작가의 운필에는 서예의 영속성과 회화의 창의성, 동양 철학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기에, 혼을 담은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현대서예의 가치 재발견과 한국 전통의 미, 조형감각의 승화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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