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건축 디자이너의 눈으로 바라본 펭귄 가족의 아기자기하고 즐거운 일상
미니멀 건축 디자이너의 눈으로 바라본 펭귄 가족의 아기자기하고 즐거운 일상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03.15 15: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년기의 기억과 건축을 모티브로 한, 꾸밈없는 일상이자 휴식이 있는 추억여행을 그리다”
화가 정혜영 작가
화가 정혜영 작가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디자인과 건축을 전공한 화가 정혜영 작가는 지난 30년 간 건축디자이너로 활약하면서, 도면을 그리는 프로의 삶 속에서 잊고 지낸 유년기의 추억을 들여다보면서 화가라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맑은 강과 푸른 하늘, 눈송이로 가득한 겨울의 풍경 속에서 즐겁고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던 기억 속의  소소한 삶의 흔적들을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하며 더욱 행복함을 느낀다. 캔버스 앞에 앉아  아기 펭귄의 뒤뚱거리는 날갯짓과 청설모의 잰걸음을 따라 정 작가는 휴식과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PENGUINE FAMILY  600mm x 725mm x 3EA  ARCRYLIC PAINTING  2018

미니멀한 풍경에 담긴 수 천 가지 생각과 풍경 속에서 작은 휴식으로 돌아온 일상

서양화가 정혜영 작가의 그림에는 연하장처럼 따뜻하고, 달력처럼 편안한 일상이 있다. 밀라노의 코리안 분더캄머 아트페스티벌, 베이징과 상하이 그룹전, 코엑스와 벡스코, 갤러리 신공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한 화가인 정 작가는 한국 건축가들의 축제인 2012 KOSID 골든스케일 어워드, 서울광장 디자인 어워드 경력이 있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건축을 디자인하는 화가’로서 정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미니멀 한 배경과 디자인이다. 지난 30년 간 건축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일상에 쉼표를 찍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그림이라는 정 작가는 자연스럽게 붓을 잡으면서 바쁜 일정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수 천 가지 잡념이 사라지면서 하얀 도화지처럼 맑고 깨끗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많은 여백들은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이미지로 채워졌고, 정 작가가 작업을 할수록 삶의 활력을 느끼며 유년기의 행복한 시절로 돌아갔다. 영화 <내 사랑>의 실존인물 모드 루이스처럼 그림을 그리면서 유년기의 추억, 가족을 향한 애틋함, 자연과 주변의 생명체들에 사랑을 느끼는 점은 같았지만, 건축 디자이너로 인생을 살아 온 정 작가는 더욱 미니멀 한 그림을 추구한다. 또한 프랑스 낭시에서 전시한 <붉은 한강>, <푸른 한강>에서처럼 건축적인 모티브로 구도를 잡아 ‘여백의 미’ 속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차이가 있다. 작가 자신의 꾸밈없는 모습, 그리고 일상의 단편을 작품에 투영시키기에 정 작가의 그림에는 숲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설모, 크림색 바탕의 잔디 위를 노니는 까치가 있는 <그린 위의 두 까치들>처럼 동물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외에도 그림 속에는 장수하늘소와 코뿔소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출현하여, 정 작가는 소소한 상상 속에서 자신의 일상이 동물들의 모습으로 투영된 것이라며 감상자들에게 작가로서 상상하고 바라보는 삶의 이야기를 한 토막의 만담처럼, 한 점의 휴식처럼 건네고 있다. 

관찰자의 시각에서 펭귄 가족의 행복한 일상에 많은 생각과 편안한 여백을 담다 

정 작가는 건축의 입장에서 집안을 정리하고 비우는 방법론에 대해 조심스레 운을 뗀다. 정 작가의 그림의 주제는 ‘휴식과 추억여행’이다. 집이란 휴식 공간이어야 하는데, 작은 공간에서 집안의 물건에 시달리다 보니 여유롭게 벽의 그림을 감상할 시간이 없는 것이 한국인들의 현실이다. 최근,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추세가 정 작가의 그림에도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그러다 보니 정 작가의 그림에서 <푸른 한강>처럼 강렬하면서도 세심하게 묘사된 검푸른 한강의 위용과 반대로 산지가 단출하게 표현된 것은 여백으로부터 평온함을 주기 위해서다. 정 작가는 복잡한 배경에서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에, 미니멀 한 공간에 맞게 비움의 미학을 보여주는 그림을 많이 그려 왔다. 비우거나 절제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하는 정 작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생각의 여지를 주는 여백을 그린다.

그런 정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펭귄 가족>이다. 아델리 펭귄 가족이 한적한 설원에 놀러 나와 어린 펭귄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나무를 꺾어 집으로 가는데, 엄마 펭귄은 낚시를 하여 고기를 낚는다. 얼른 오라고 아기 펭귄들을 부른다. 트리를 내팽개치고 밥 먹으러 가는데, 뒤를 돌아보면서 버리고 오는 트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핑구와 핑가’처럼, 이 평화로운 펭귄가족의 일상은 귀엽고 당찬 펭귄의 이미지와 어울리면서 신년 카드의 일러스트처럼 섬세한 힐링이 된다. 그림에서 영감을 받는 계기는 어떤 일상을 겪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정 작가는 최근 어린 시절 추억을 가장 잘 상징하는 눈에 대한 애착을 <크리스마스>라는 작품을 그리며 해소하고 있다. 수십 년 간 많은 이들이 크리스마스마다 <나홀로 집에>의 눈과 트리, 반짝이는 거리를 보고 추억에 잠기며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송을 즐겨 찾듯, 정 작가에게도 눈과 성탄은 호기심과 편안함,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자라난 정서를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잔잔한 미소가 흘러나오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상징하는 소재다. 모두에게 그림으로 망중한이자 새로운 여행을 보내 주기 위해, 정 작가는 다시 그림 속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정 작가는 지난 해 6월 자신의 버킷리스트인 갤러리를 완공했으며 자신과 동료 작가들의 그림을 위해 오픈했다. 아직 시작 단계인 갤러리에서는 운영 중인 공간을 디자인하는 회사에 부합하는 그림들과 미니멀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좋은 그림들을 발굴해 힐링의 공간으로써 더욱 안락하게 해 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