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메틸화 분석, 용의자의 나이와 습성, 행위까지 알아낸다
DNA 메틸화 분석, 용의자의 나이와 습성, 행위까지 알아낸다
  • 임승민 기자
  • 승인 2019.02.15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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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유전학연구실 이환영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유전학연구실 이환영 교수

[월간인터뷰] 임승민 기자 =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범죄를 밝혀내는 증거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범인이나 증거물에서 나온 유전자형을 분류하고 취합한 ‘DNA 데이터베이스’를 2010년에 처음으로 만들었고, 이는 사건을 해결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 현장의 증거물로부터 얻은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유전자형이 DNA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되어있지 않고, 이를 새로이 대조할 용의자 시료가 없으면 그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게 된다. 이에 바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고 개선하고자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번호 <월간 인터뷰>에서는 법과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DNA 마커와 분석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유전학연구실의 이환영 교수를 만나봤다.

DNA 메틸화 기반 유전자분석법, 신속한 사건해결에 실마리 제공

최근 과학수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법 중 하나는 바로 ‘DNA 메틸화 분석’이다. DNA에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메틸기’라는 스위치가 있는데, 이 스위치의 형태를 분석하는 것으로 담배를 피우는지, 운동을 많이 하는지, 젊은 사람인지 등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유전학연구실에서는 바로 이러한 ‘DNA 메틸화 정보’를 이용하여 범죄 현장의 증거물로부터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나이, 습성, 그곳에서 했던 행위들을 추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즉, 용의자나 혹은 수사범위를 특정하고 DNA 정보를 비교·분석해 보아야 하는 기존의 DNA 수사 기법에서 나아가, DNA 메틸화 분석을 통해 증거물을 남긴 사람의 나이, 생활양식, 현장에서 이뤄진 행위 등을 추정함으로써 수사 대상자의 범위를 줄여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 교수는 DNA 메틸화 분석을 통해 약 5세 정도의 오차 범위로 나이를 추정하는 모델을 정액, 타액, 혈액에서 구축했다. 이를 이용하여 범죄 현장에 증거물을 남긴 사람의 연령대를 추정하고 수사 범위를 축소하여 신속한 사건 해결을 도울 수 있다. 또한, 범죄 현장의 증거물이 혈액, 타액, 정액, 질액, 생리혈 중 어떤 체액으로부터 유래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체액 식별용 다중분석법(Multiplex)’을 개발했다. 즉,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의 판별을 통해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 성적인 접촉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보다 분명하게 판가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범죄 여부를 확정짓거나, 단순 타액이나 생리혈일 경우 무죄의 시나리오 증거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DNA 분석이 가장 빈번하게 의뢰되는 사건은 성추행 또해자 여성의 질 내용물에서 정액 양성 반응이 나타나고, 용의자 남성의 DNA 프로필이 관찰될 경우 사건의 핵심적인 증거물로 채택할 수 있으나, 직접적인 성관계가 관여되지 않은 성추행 사건의 경우엔 그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개발한 체액 식별 DNA 메틸화 분석법을 적용하면 남성의 신체에 여성의 질액이 존재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성추행 여부에 대한 판단이 보다 쉬워지는 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효성 평가 연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DNA 메틸화 기반 체액 식별법의 현장 적용은 국제적으로도 그 가능성과 효용성을 입증 받았으며, 이환영 교수는 2017년부터 국제법유전학회(ISGF) 국제학술대회 워크샵을 통해 전 세계 법유전학 종사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법과학 연구에 매진할 터

한편, 이환영 교수가 개발한 ‘체액식별과 연령 추정을 위한 다중분석법’은 법유전학 분야 최고권위 학술지인 「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 Genetics」에 게재되었으며,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최근에는 이 다중분석법을 증거물 분석을 위한 ‘표준작업절차서’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절차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연구개발의 성과가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선 단순히 학술지에 출판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저는 해당 기술의 수요기관인 대검찰청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다기관 검증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혼합물 분석 등과 같이 법과학 분야의 오래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DNA 메틸화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그는 “우리나라의 법과학 기술 수준은 가히 세계 최고라 자부할 만합니다.

저는 DNA 메틸화를 포함한 DNA 상의 다양한 유전정보를 활용하여 증거물로부터 사건 및 현장에 관련된 수사 정보를 최대한 많이 획득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보다 박차를 가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과학수사 분야에서의 국제적인 기술경쟁력을 더욱 돈독히 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사회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 ‘법과학’은 이미 일어난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동시에 앞으로의 범죄 발생을 억제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오류·오판이 발생해선 자칫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미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법과학 연구를 위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연구비 지원이 부족할뿐더러, 국가적인 관심도 매우 적은 상황입니다. 제가 수행한 ‘체액 식별과 연령 추정을 위한 DNA 메틸화 분석법’ 또한 2009년부터 약 10년 동안 다양한 연구사업의 지원을 수차례 받은 끝에 어렵게 이룬 성과입니다. 법과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선 우리나라도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이 실제 인간들의 삶에 적용되기 위해선, 이를 연결시키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개발자와 연구자들의 땀방울이 필요하다.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려는 이들의 열정이 멀지 않은 미래에 값진 성과로 돌아오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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