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도 인정받은 한국 주문양복 업계를 되살리는 마스터 테일러의 남다른 각오
미국 시장에서도 인정받은 한국 주문양복 업계를 되살리는 마스터 테일러의 남다른 각오
  • 오상헌 기자
  • 승인 2019.01.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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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수트 400년 역사의 이탈리아 국립양복학교와의 MOU 및 실전에 강한 전문가 양성”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명품양복제작반 문병지 교수

[월간인터뷰] 오상헌 기자 = 흔히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 예술 기능직의 3대장으로 헤어 메이크업, 네일아트 타투, 그리고 주문양복(마스터 테일러) 분야를 꼽는다. 특히 제1차 석유파동을 맞이한 1970년대 초, 양복 분야 인재들도 경제개발계획의 호황 분야인 건설업계로 빠질 정도의 불황을 극복하고자, 맨파워 사의 한국지부와 연계된 수백 명의 국내 양복 기술 장인들이 미국행을 택하면서 이들은 현지인들보다 2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실력을 인정받으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설의 막을 열었다. 당시 대한복장협회 회장이었던 문병지 교수는 이들을 진출시킨 장본인으로서, 한국에 귀국한 이래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명품양복제작반을 이끌며 스파 의류와 반대되는 주문양복의 가치를 아는 인재들을 두루 양성하고 국내 주문양복 분야에서 제2의 전성기 도약을 준비 중이다. 

 

기간은 7개월 속성, 실력은 전공자 이상, 최고의 교육여건 갖춘 주문양복 실력자들의 산실
맞춤양복 혹은 주문양복으로 불리는 마스터 테일러 분야는 100% 수제 바느질 맞춤 제작인 비스포크가 각광받으면서 기성 의류와 대조되는 분야로서 성장해 가고 있다. 한국 맞춤 주문양복 분야의 1세대 개척자,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명품양복제작반 문병지 교수는 `92년 양복 부문으로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되고, 국제기능올림픽한국위원회 위원장상, 아시아 주문양복업자연맹총회 회장상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정읍 고창에서 양복장인 김재덕 선생에게 양복을 배우고 서울로 올라와 대한복장학원을 수석 졸업한 문 교수는 `71년 명동에서 양복점을 개업해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와 손을 잡고 `97년까지 전국 순회 연수 강의를 맡아 한국 양복 제작기술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했다. 국내 양복장인들의 미국 진출 성공을 돕기도 한 문 교수는 한국의 기성복 활성화로 인해 침체되는 주문양복 업계를 되살리고자, `99년부터 미국 비벌리힐스 잭 테일러의 초청을 받아 LA와 뉴욕, 워싱턴 DC 등에서 제작과 교육활동으로 얻은 명성을 뒤로하고 2011년 6월 한국에 돌아온다. 문 교수는 이천시와 인력 관리공단의 도움을 받아 2012년 ‘코리아 테일러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재를 100% 외국에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나, 이내 국내·외 취업 보장 방식으로 바꾸고 2014년부터는 주문양복 분야에 관심이 많은 국제대학과 손을 잡아 타 학교에서는 불가능한 100% 취업을 보장하는 전문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명 정원이자 전액 무료인 노동부 프로그램 7개월 과정, 그리고 심화과정 혹은 상시 입학이 가능한 월 50만 원 선의 일반과정으로서, 문 교수가 과거 집필한 저서와 수많은 발표 자료, 실습을 토대로 단 7개월 만에 치수 재단, 디자인에서 가봉 후 완성까지 할 수 있다. 이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졸업 때 양복 3벌을 만들어 패션쇼 무대에 설 만큼 성장한다. 단기간이지만 대학 4년 과정을 거쳐도 블라우스조차 만들지 못하는 일부 의상학과 출신들이 오히려 졸업 후 실전에 강한 문 교수를 찾아와 실습과 이론을 배우고 실력을 향상해 나갈 정도다.   

이탈리아 국립양복학교와의 MOU로 실력 쌓아 동종 의류 계보다 창업과 취업 성공 보장
2013년 <맨스 모드의 길잡이-테일러 기술의 실제>라는 저서를 출간하며 실전 양복 제작 비법을 알림과 동시에 맞춤양복 50년 인생의 저력을 보여준 문 교수는, 국제대학 졸업 후의 장래를 위해 400년 전통의 디자인 분야에서 강하기로 이름난 이탈리아 국립양복학교(테일러 아카데미)와 MOU를 맺어 세계적 디자이너의 등용문이 되는 마스터 테일러의 강좌 유학을 주선하고 있다. 이렇듯 초보로 시작해도 비스포크 명장의 노하우까지 익힐 수 있어, 현재 강남, 소공동, 명동의 양복 관련 종사자 출신과 창업 희망자를 비롯한 18명의 학생들이 문 교수와 숙련 중이다. 문 교수의 이수자 중에서 창업에 성공한 사례를 듣고 평생직장을 찾아 입학한 김형근 씨의 경우, 10여 년의 사무직을 정리하고 문 교수의 제자로 들어왔다고 한다. 일반과정에서는 7개월이 끝나도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실력을 더 쌓을 기회가 있으며, 양복을 지을 줄 알면서 양복점을 여는 것과 그렇지 못한 채 여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김 씨는 테일러가 되지 않더라도 옷을 만들 줄 알면 현업 종사자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고객 응대도 편할 뿐 아니라 공장에 맡기더라도 더욱 디테일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재단이 능숙한 전문 테일러가 되기 위해서는 3-4년 정도 숙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명장 문 교수와 강태기 교수 등 쟁쟁한 실력으로 평생 양복을 만든 전문가들이 영리목적이 아닌 순수한 목적으로 양복 제작의 전 과정을 깊이 있게 가르치는 커리큘럼이기에 입학하였다는 박진훈 씨의 경우, 한때 영업을 하면서 판매하는 상품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영업맨으로서 고민한 적이 많아 본품을 직접 만드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의식주 분야는 평생직장으로 경쟁력이 있으며, 이미 레드오션인 일반 의류보다는 고급 수제양복의 사업화 쪽이 더 승산 있다고 판단했다는 박 씨는 자신 외에도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는 학생들이 오전부터 밤 12시까지 양복에 매달려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할 당시 조선산업이 더 호황이고 일본, 미국 기업들이 비웃었지만, 지금 삼성반도체가 이들을 압도할 반도체 산업 1인자로 성장한 만큼, 주문양복 분야 역시 실전에서 단련된다면 충분히 의류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각광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열정으로 수강생 100%가 창업 및 취업을 보장하는 것으로도 이름난 문 교수의 명품양복제작반은 앞으로도 진정한 K-수트 테일러를 양성하는 산실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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