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색 점의 발자취 따라 마블링 장단을 얹어 신명난 춤사위 몸짓
오방색 점의 발자취 따라 마블링 장단을 얹어 신명난 춤사위 몸짓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2.10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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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포함한 한국적인 곡선의 형태에 고운 색조를 입힌 예술의 신나는 콜라보레이션”
조각가 류경원 작가/충북대 미술대학교 교수
조각가 류경원 작가/충북대 미술대학교 교수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작은 머리와 잘록한 허리, 손과 발이 강조된 즐거운 한국무용 춤사위. 선과 서로 다른 크기의 숱한 오방색 점묘로 화려하게 도색된 색감. 2010년 광화문아트포럼 ‘올해의 작가상’ 조각부문에 선정되기도 한 조각가 류경원 작가는 사람과 사람의 움직임을 선과 양감으로 표현하며 비구상적 한국무용 조각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예술가다. 크게 춤을 테마로 하여 가족, 한국의 선과 색, 계절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류 작가는 동 세대의 작가로서도 드문 선과 점묘 기법, 마블링 채색을 활용해 조각품 역시 역동적인 캔버스의 일종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시선을 끈다. 류 작가의 작품들은 실체를 닮은 색을 입히고자 고군분투하던 선사시대 예술가들부터 입상에 소박한 비스크 페인팅을 하던 기원전 시대 예술가들이 바랐을 법한, 형상에 가하는 자유로운 채색의 상상력이 한국의 색과 선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며 완성됐다.

창작의 시작, 순수조형물에 대한 컬러링의 금기를 깨고 한국적 선을 도색하다

1991년 첫 개인전 ‘자연과의 대화’전을 시작으로 ‘일탈의 몸짓’, ‘의식의 화원’을 비롯한 개인전과 서울국제조각페스타를 비롯한 국내외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한 조각가 류경원 작가는 한국의 춤사위, 한국의 색과 선에 중점을 두고 기품과 절제, 즐겁고 신명난 정서를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느 조각과 달리 도색(컬러링)이 돋보이는 류 작가의 조각들은 고교 때까지 서양화를 전공하다 홍익대 미대 조소과에 진학하며 발레와 춤을 조각에 접목한 시절부터 독창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무용에 흥미를 갖고 한복의 흐름과 선을 따라가는 한국무용의 깊이 있는 형태성과 표현의 무궁무진함을 작품에 옮기기 시작한 류 작가는 기와지붕과 처마선, 대들보선을 비롯해 한복의 저고리와 소매선, 새초롬한 버선코와 투박한 항아리의 둥근 선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춤을 감상하거나 녹화를 떠서 드로잉을 하고 형태를 잡은 뒤, 춤이라는 소재에 인생사를 담아 한풀이와 넋두리를 하는 무용가들처럼 예술가 고유의 목소리를 입히는 데는 서양화로 다져진 감각도 한 몫을 했다.

발레에서 한국무용으로 넘어오기 전 시도한 <가족> 시리즈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돌들의 물성과 빛깔에 매료되어, 한동안 화강암이 아닌 수입대리석을 깎아 완성한 작품들이다. 조각에 도색하기 때문에, 색칠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이기도 한 류 작가는 입체 조형물에 도색을 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던 시대를 지나 “조각으로 돌을 쪼는 작업이 바로 나만의 캔버스를 만드는 선결과정”이라고 할 정도의 손재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입체 형태에 실제 그대로의 색을 입히거나, 왜곡과 착시, 변형과 재창조를 자유로이 표현했으며 궁극에는 세필로 하나하나 점을 찍는 점묘 컬러링에 이르렀다. 또한 하나의 주제에서 파생되는 시리즈로도 유명한 류 작가는, 지난 2월 28일-3월 10일까지 독일 뮌헨 개인전에서 한국의 선을 주종으로 삼아 다양한 오방색의 마블링된 컬러링을 선보인 참신함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돋아난 관절의 발돋움으로 자유로운 인체조형처럼, 고정관념 벗어난 예술가로 기억되길

류 작가에 따르면, 우아함과 우직함, 토속성과 순수함, 함축과 팽창 그 모든 요소를 조형한 형태성에는 여느 예술가들이 느끼는 창작의 고통처럼 모티브 단계에서보다는 조각이라는 물리적인 특징과 표현의 고통이 따랐다고 한다. 아이디어는 샘솟는데 흙으로 원형을 만들어 석고를 뜨고 폴리, 샌딩 과정을 거치다 보면 조각 1점 완성에 2달이 훌쩍 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류 작가는 같은 주물에서 나온 형태에 다른 도색을 하여 차별성을 주거나, 둥글고 투박한 한국의 선을 가진 오브제들의 전신 관절을 분리하여 모체는 같으나 완성품은 전부 다른 ‘로봇’처럼 완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알차게 늘어간 류 작가의 컬렉션들은 학창시절부터 자유로운 영혼으로 창작을 했고, 지금의 제자들에게 정통 인체비례를 가르칠 때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봉인하지 않기를 독려하는 것처럼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형상들이 되어갔다.

순수작품을 컬러링하면서 과거의 금기를 깬 만큼, 류 작가는 ‘우리는’ 테마전에서 관객들이 만지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색 부분은 뜯어낼 수 있게, 신체 부위는 관객의 위치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신체 부위를 접합하여 작은 신체 조각들을 하나의 큰 신체로 조립하기도 했다. 또한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움직임을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4계절의 상징적인 색채를 나타낸 <살풀이춤> 시리즈나, <강강수월래>에서는 한국무용의 역동적이고 신명나는 군상들을 볼 수 있다.

한 때 생각했던 아이디어나 누군가 시도하지 않았다고 믿어 온 모티브를 누군가는 이미 작품으로 옮긴 것을 나중에 발견하는, 예술가들의 일명 ‘도플갱어’ 현상에 대해서도 류 작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비슷한 형태성을 보일 수 있다는 관용과 여유로움을 보인다. 이는 조각이란 그저 형태를 깎고 만드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오래도록 변화무쌍하게 고정관념을 일탈하며 태동된 창조성을 창작의 열망으로 벼려 내 접점을 찾은 예술가만 도달하는 경지의 가치관이며, 보편적 예술성을 경험해 본 적이 있던 예술가로서 후학들에게 전하는 유익한 충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류 작가는 지난 해 한국적 미학을 십분 발휘한 작품들에 이어, 앞으로는 실제 인체보다 150% 확대된 인체조각에 컬러링을 하여 야외에 전시해 사람들이 움직이며 놀 수 있거나,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직접 도색할 수 있는 생활 속 작품들도 차차 시도해 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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