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패션디자인 원조 인플루언서가 전하는 21세기 예술의 세 가지 조건
20세기 패션디자인 원조 인플루언서가 전하는 21세기 예술의 세 가지 조건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1.15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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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패션디자인과 예술 시대정신의 추억 담긴 노랑다리미술관을 이야기하다”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예술가와 사상가, 패션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이 모인 산실로 영국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렛잇록’, 프랑스 샤넬의 ‘앙젤리나 살롱’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그의 개인부티크 ‘A.G의상실’이 있었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 남성복 디자이너 1세대, `70년대를 대표하는 트렌드 인플루언서이자 아방가르드 예술가, 공학도에서 패션 아티스트로 변신하여 한국 최초의 가두패션쇼를 기획하고 `68년에는 대한민국 제1회 무역박람회 의상콘테스트의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당대의 인기 연예인들의 의상을 비롯해, `88올림픽 기념 로봇의상을 디자인한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지난 2016년 평생의 예술혼을 모은 미술관을 오픈한 노랑다리미술관의 손일광 관장이다. 전위적인 아방가르드예술, 과학자 같은 기발한 발상으로 다양한 설치미술을 선보이기도 한 손 관장은 시대를 앞서간 예술 공간을 공개하며 여전히 생기 넘기는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천재의 DNA를 이해하는 방법, 아름다운 휴양지의 미술박물관으로부터 배우다

2016년 5월 15일 개관한 경기 가평군의 노랑다리미술관은 대한민국 남성패션 디자이너 1세대인 손일광 관장의 평생의 꿈이 담긴 곳이다. 입구에서 정원, 건물, 장식품 하나까지 모두 설치미술의 연장선에 있는 이 장소는 라디오, 타자기, 미싱과 같은 20세기 추억의 물건과 현대 생활가전에 채색해 만든 작품, 10여 년 전의 구형 휴대전화와 음료캔, 정원과 산책로에 이어지는 테마작품 100여 점이 모인 박물관 겸 미술관 카페이다. 손 관장은 국제복장학원의 최경자 선생을 사사한 전위적인 행위예술가로, 최고연봉으로 기업에 스카우트 된 디자이너 시절부터 천재적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수집해 온 물건들과 창조한 예술품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고 한다. 손 관장은 개인부티크 ‘A.G의상실’에서 낮에는 고객들의 의상디자인을 하고, 밤에는 예술가 정찬승, 연출자 방태수, 디자이너 김구림, 화가 정강자 등 자유로운 아티스트들이 친목을 이룬 ‘제4집단’을 창단한 인물이다. `70년대 당시 안기부의 감시 속에서도 젊은 표현의 자유를 행위예술화 했으며, 재판부에서도 당당히 의견을 피력했던 손 관장은 훗날 많은 예술가들이 전위/진보계로 해외에서는 백남준, 국내에서는 ‘제4집단’을 꼽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기도 하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타국의 무명생활을 <애정만리>로 표현했던 백남준의 아포리즘인 “내 감정은 오선지 안에 구겨 넣을 수 없다”는 바로 ‘제4집단’ 멤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간 아웃사이더, 손 관장은 천재들의 분위기를 호흡하며 최복호를 비롯한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을 발굴하는 한편, ‘이목회’를 창립하며 스포츠캐주얼의 대중화, 패션 산업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 파격적인 시스루룩 도입 등 예술시대정신에도 기여했다. 남성 최초의 패션그룹 MD를 거쳐, 여름 내의의 대명사인 풍기인견을 아우터, 하이패션으로 승격시키기도 한 손 관장은 “붓 이전에 예술이다. 붓 없이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렸다”고 말하며,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의 성과가 훗날 탄산음료의 제조기술이 된 사례를 예로 들어 선대의 발상이 후대에 완성되는 것이 곧 트렌드의 순리라고 한다.

그런 그가 직접 정원과 실내장식에 참여하며 지은 노랑다리미술관에는 차 한 잔을 하러 들른 관객들이 아끼는 <첨성대>를 비롯해 비오는 날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콜라주인 ‘수조’ 테마 등이 있다. 손 관장은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의 원리를 통해 작은 원인에서 비롯돼 큰 형상으로 변해간 이치를 먼저 주목한 천재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미술관 관람에 참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사의 모순 3가지 중 첫째는 다수가 공통적인 기준에 순응하는 것, 그리고 하나의 지식이 시간 경과에 따라 더 견고해진다는 맹신, 마지막으로 자신보다 나은 지식인의 의견은 늘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3가지 인간사의 모순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공통분모 속에서 숨겨진 새로움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천재들의 DNA이며, 이러한 천재들의 삶과 꾸준한 교집합의 삶을 살았던 손 관장의 접근법을 참고한다면 20세기의 아방가르드함은 21세기의 사람들에게도 창의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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