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보다 더 많은 색을 말하는 꽃, 그 꽃을 보는 설렘으로 행복해지는 그림
풍경보다 더 많은 색을 말하는 꽃, 그 꽃을 보는 설렘으로 행복해지는 그림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1.15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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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듯, 배경 안의 사소한 것조차도 꽃과 어울리는 요소로 만들다”
서양화가 김명숙 작가
서양화가 김명숙 작가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때때로 화가의 원초적인 호흡 속에서 정밀한 묘사가 의미를 잃는 대신, 둔탁해진 윤곽 안의 색채만이 기억의 잔상을 전하면서 명작이 태동하는 경우가 있다. 떠들썩한 유명세로 가득한 삶보다 타히티의 이국적인 들판에 핀 꽃의 빛깔에 매혹된 고갱이 타히티 여인의 머리에 꽃을 꽂아 주며 그 순간을 훗날까지 회자될 색채 속에 영원히 기록한 것처럼. 이렇게 화가에게 색이란 피아니스트의 건반처럼 창작의 방아쇠를 당기는 소재인데, 오로지 ‘색’의 표현에 빠져 그 깊은 아름다움을 건져내고자 기존의 방식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서양화가 김명숙 작가는 토속적인 풍경 속 꽃을 현실로 가져와 행복이라는 주제 속에서 아름답게 피워낸 예술가다. 그가 말하는 캔버스 밖의 인생을 행복하게 물들이는 꽃들의 인상(印象)주의를 감상해 보자.

감성으로 재해석돼 조화와 행복을 피운 마음, 행복한 전이(轉移)로 피어난 꽃

김 작가는 지난 9월 14일부터 10월 31일까지 청도군 소재의 ‘갤러리 더 휴’에서 개최한 5번째 개인전에서 <인상(印象)>의 연작 13점을 소개해 꽃을 소재로 정물의 새로운 의미를 정립했다. 계명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정통 서양화의 진수를 보여준 김 작가의 작품들은 사실적인 묘사보다 재구성과 재해석을 통해 공간을 추억하며 깊이 박제된 감수성을 끌어내는 힘을 가졌다. 그의 회화적 감수성으로 보는 이를 설득하는 색감의 조화는 독보적이다. 책을 그릴 때 일반적으로 책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표지보다는 책 더미가 쌓인 단면의 모서리에 시선을 두고, 각 책마다 손때가 묻어 있는 페이지들의 흔적을 섬세히 채색해 그림이 지닌 서사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 김 작가는, 한국적인 풍경을 그리다가 풍경에는 색이 한정되어 있고, 그림이란 색으로 말하는 예술이기에 모든 색을 활용할 수 있는 꽃들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에 작가로서 갖는 설렘과 꽃들의 조화가 주는 기쁨에 순수한 마음으로 임한 결과, 김 작가의 꽃들은 송이마다 행복으로 전이된 마음을 담아 꽃망울을 터뜨리는 아름다운 감성의 산물이 되었다. 

꽃은 주인이되 모든 요소들이 어울리는 근원, ‘인상’은 감상자의 마음속에 있다

김 작가는 꽃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꽃이 있음으로 인해 더 조화를 이루는 배경의 요소들까지 세심하게 그린다. 사람을 사진으로 보기보다 대화와 만남으로 숨겨진 매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듯, 김 작가의 붓은 꽃이라는 탐미적인 형상에 담긴 감정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실적인 기법보다 생략과 단순화를 거쳐 포근하고 여유로운 조화를 이룬다. 지난해 대구 여류작가초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계기가 되어 진행된 5번째 개인전의 <인상> 연작들은 100호 2점과 50호, 30호 작품들을 비롯해 평소 작품보다는 비교적 대작 위주로 김 작가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유일무이한 주제, ‘행복’을 다루면서 풍부한 색상과 편안한 구도로 그림을 감상하며 느끼는 행복한 마음으로 인도하는 작품들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행복한 장면들과 분위기를 꽃들의 자태로 환원하는 김 작가는 사진과 영상으로 접하는 꽃들의 정경에서 모티브는 유지하되 화면 속의 구성은 변형시키거나 만들어 넣고, 빼기도 한다. 꽃이라는 주제에서 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의 소중한 삶, 그렇기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비중에 대한 것이다. 사람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듯, 배경이나 소품들도 그림의 소중한 요소들이기에 꽃들 주위의 배경요소들을 자투리가 아닌 오브제로 다룬 김 작가의 작품들은 아늑하고 편안한 행복의 인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김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명암과 구도를 꼼꼼히 체크하며 전략적으로 그리는 화풍과 거리를 둔 성향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이번의 <인상> 작품들이다. 꽃을 둥글려 그리고 경계를 흐릿하게 한 후 선을 뭉그러뜨리는 수정으로 아웃포커스한 기법과, 명암을 넣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한 그림들은 감상자의 마음에도 안정을 준다. 김 작가가 나타낸 모든 꽃들은 기쁜 날 꽃집을 찾아갔을 때 무슨 꽃을 고를지 설렘으로 가득한 순간처럼, 꽃잎마다 지닌 자연의 색채로 기운을 북돋을 만큼 애정 어린 미소를 보인다. 김 작가는 이렇듯 소중한 행복의 빛깔들을 모아, 내년 6월 ‘봄갤러리’로 결정된 전시회에서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소품전으로 다시 한 번 표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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