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MP 방호 산업,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국 EMP 방호 산업,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해야
  • 이정원 기자
  • 승인 2018.11.13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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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시스템즈(주) 기업부설 예스이엠피연구소 정수진 기술연구소장
대한시스템즈(주) 기업부설 예스이엠피연구소 정수진 기술연구소장
대한시스템즈(주) 기업부설 예스이엠피연구소 정수진 기술연구소장

[월간인터뷰] 이정원 기자 =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펄스)는 통신장비, 컴퓨터, 군사시설 등, 전력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고에너지 전자의 충격파이다. EMP는 모든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현대전의 치명적인 무기로 개발되어 왔다. 
수십 년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EMP 방호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그동안 많은 예산을 투입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EMP 방호 사업을 시작한지 10년차를 맞이하는 올해까지 그 성과는 처참했다. 우리나라의 EMP 방호 성능은 미 국방의 기준 규격인 100dB에 한참 못 미치는 80dB수준이다. 국내 최고의 EMP 방호 전문가로 그 경력이 30여 년에 이르는 예스이엠피연구소 정수진 소장을 만나 그 원인을 들어봤다.

국내에는 제대로 검증된 EMP 전문 업체가 없다
정 소장은 1985년부터 4년간 주한미군 시설에 대한 EMP방호 전문가로 활동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미군에서 EMP 방호 전문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2~3건의 관련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 기술자라는 자격이 필요한 만큼, 그가 업무를 시작하던 80년대 당시에도 이미 미 국방으로부터 국내에서 EMP에 대해 가장 인정받는 기술자였다. 이렇듯 EMP라는 한 분야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권위자로 인정받는 정 소장이지만, 국내 EMP산업과 관련 업체들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국내에는 EMP 전문 업체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 소장에 따르면, 2009년 국방부는 200억 규모의 EMP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 소장에게 기술 제공과 설계를 요청했었다. 그가 국방부의 요청대로 기술과 설계를 제공했으나 실제로 사업의 발주, 시행은 대기업인 현대건설이 맡게 되었다. 정 소장이 사업을 맡지 못한 원인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 하나였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EMP에 대한 기술과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자사 하도급 건설업체들에게 사업을 위탁했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돼 현재 국내에서 EMP 사업을 한다는 회사들 중 진정한 EMP 전문 업체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정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건설사 하도급 협력업체는 EMP 사업을 하면 안 된다. EMP를 제대로 하려면 EMP 대책 엔지니어링 설계는 물론 그 설계에 의해 사용되는 자재도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조된 자재로 설치, 시공까지 마쳐 품질 성능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 업체가 바로 EMP 전문 업체인 것”이라며, 국내 EMP 사업의 실태를 한탄했다.
이렇게 부실한 업체들이 EMP 사업을 도맡아 하게 되자, 국내 EMP 방호 설비의 성능은 미 국방의 30년 전 기준 규격인 100dB에 못 미치는, 80dB밖에 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해 정 소장은 “EMP 공격 기술은 해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는 30년 전의 기술도 못 따라가고 있으니 수백, 수천 억 규모의 국민 혈세가 지금도 낭비되고 있는 꼴”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5G, IoT 시대, EMP 방호는 더 중요해질 것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방부나 발주처가 EMP에 대해 보다 전문성을 갖추고, 지금이라도 EMP 전문 업체를 조사해 기술력, 경험이 가장 풍부한, 제대로 검증된 업체에 사업을 맡겨야 한다고 정 소장은 설명한다. 특히 “5G, IoT 시대를 맞아 통신, 전자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EMP 방호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는 별도로 사이버 테러 공격에 의한 EMP 방호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기에 정 소장은 국내 EMP 산업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장기적으로 EMP 전문가 육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 소장은 “현재 EMP 전문가라는 한국 전자파학계, 대학 교수들도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지만 실무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어느덧 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은퇴 후에는 교육에 진력하는 것이 현재의 꿈”이라며, 국내 EMP 권위자로서 후학 양성의 의지를 표명했다. 단, 그러기 위해 그는 정부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국내 EMP 산업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끝으로 EMP 관련 공직자들에게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촉구했다. 1, 2년 후 담당자가 이동하는 기존 체제가 아닌, 10년, 20년 식으로 장기적인 전문 관리자를 배치하고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국가에서 EMP 분야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과거와 같은 국가적 손실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수진 소장은 “평화시대일수록 EMP는 더욱 필요하다. EMP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당하면 결국 패배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며, 항상 철저한 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EMP 분야에서 30년 이상 연구한 전문가로서의 조언이기에 우리가 분명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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