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역사에 그가 있다
노동조합의 역사에 그가 있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0.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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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의 체제개편과 노사화합, 안정화에 힘써
인천항운노동조합 이해우 위원장
인천항운노동조합 이해우 위원장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인천항은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전까지 대북교역의 중심이었다. 10년 전 뱃길이 끊긴 남포와 인천항 라인은 최근 남북화해분위기 조성으로 운행이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대북교역은 침체 국면에 접어든 인천항이 활성화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인천항운노동조합도 항만 관계자들에게 대북교역이 재개될 경우 인천항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다. 더욱이 인천항은 지난 7월 1일 10개 운영사를 인천내항부두운영(주)로 통합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항운노조도 500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이 인천내항부두운영(주)로 소속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조합에서도 인천내항부두운영(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인천항운노동조합 이해우 위원장을 만나 여러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천항 체제개편  

인천항의 체제개편이 2007년 10월 1일 전격 시행됐다. 체제개편이라 함은 항운노조원이 특정 업체의 종업원 즉 직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항운노조원은 법률적으로 비정규직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하역노동의 기계화·현대화로 노무공급체제를 개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일별․월별은 물론 계절적으로 물동량이 급격하게 변하는 항만의 파동성으로 인해 이러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또한 항만하역업체 역시 작업이 있을 때만 조합원을 사용하고 그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시스템을 굳이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이후 1993년부터 시작된 항만 구조조정은 3년에 걸친 노․사․정 협의로 1996년 11월 부두임대운영회사제 도입을 위한 8개 항에 합의·조인했다. 2000년대 들어 노무공급방식에 대한 개편 논의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12월 항만인력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로 부산, 평택, 인천 순으로 상용화 체제로 전환됐다. 

2007년 5월 인천항운노동조합 대의원, 이해우 위원장 선출

체제개편은 전직을 희망하는 자에게는 근속년수에 따라 생계지원금을 지급하고 상용화를 수용하는 조합원은 하역업체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했다. 그 결과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조합원이 전직을 신청했다. 이처럼 전직자가 많았던 것은 체제개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해우 위원장은 당시 조합의 부위원장으로서 인천항의 체제개편 협상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간에 반목과 갈등이 심화됐고 일부는 상용화 반대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체제개편을 앞둔 2007년 5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해우 위원장이 선출됐다. 위원장으로 당선됐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그의 앞에는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었다. 
상용화로 전환된 이후 이해우 위원장은 우선 조합원의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워크숍은 물론이고 직․간접적으로 조합원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또한 투명한 조합 운영과 공정한 인사를 통해 내부적으로 조합원 간의 단결을 꾀했고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조합원 간의 갈등은 사라졌고 조합 역시 다시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적인 갈등을 봉합한 이 위원장은 상용화의 안정적인 정착에 주력했다. 하역업체를 대신해 정부와 화주 그리고 정치권을 상대로 인천항의 발전을 저해하는 여러 법적․제도적 규제를 타파해 줄 것을 읍소했다. 특히 대형 화주의 덤핑 요구를 인천항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산업평화를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 결과 인천항 주요 취급 품목 화물들은 정부고시요율에 근접한 수준의 요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위원장은 덤핑과 관련 “조합에서는 요금인하는 물론 기존 작업장을 벗어나 다른 부두로 옮기는 행위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덤핑”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인천내항통합운영사 출범식
인천내항통합운영사 출범식

동반자적 노사관계 구축 및 인천내항부두운영(주) 안정화 노력 

이해우 위원장은 지난 2007년 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지금까지 노사상생의 정신에 입각해 모든 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코자 했다. 아울러 인천항이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33%에 달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만이 주요 시설인 것처럼 추켜세우는 정부 정책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편, 지난 7월 1일 인천내항부두운영(주)가 출범했다. 인천내항부두운영(주)는 그간 내항에서 사업을 영위하던 10개 운영사가 단일부두로 통합된 회사다. 일부 주민들의 재개발 요구로 인천항에 입항하던 수많은 화물선은 평택·당진항 등 경쟁항만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로 인해 인천항은 수년째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물량감소에 따른 일부 대형화주의 정부고시요율인하 요구, 즉 덤핑압력이 가중되면서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에 인천항 노사정은 경영여건 개선과 조합원의 지속적인 고용안정을 위해 TOC통합을 실시했다. 약 3년간의 협상 끝에 지난 7월 1일 인천내항부두운영(주)가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지난 2007년 상용화 이후 약 10년이 경과한 뒤 인천항은 제2의 체제개편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 상용화 때처럼 일선 현장의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통합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계속된 물량 감소에 따른 고용불안가중에 기인한다. 인천내항부두운영(주) 출범 이후 이해우 위원장은 회사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을 촉구했다. 500여 명의 조합원이 단일 회사에 소속됨에 따라 운영사의 성패가 곧 조합의 운명이 됐기 때문이다.  

인천항 노사정 상생협약서 체결
인천항 노사정 상생협약서 체결

지역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노동조합으로 거듭 

인천항운노동조합 이해우 위원장은 “올해 인천시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노동조합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 이라고 밝혔다. 그간 인천항운노동조합은 노조의 이익추구를 위해 지역주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배척해 왔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07년 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지금까지 개인이나 조합의 이익보다는 인천항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간 이해우 위원장은 명절 및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주민행사 지원, 인천항 견학 등 노동조합의 건전한 사회참여 활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위원장 당선 이후 10년 간 매년 5월 개최되는 조합정기대의원대회를 축하하는 화환 대신 사랑의 쌀을 기증 받아,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모두 전달해 오고 있다. 

정년 조합원 해외 산업시찰
정년 조합원 해외 산업시찰

마지막 순간까지 인천항 발전에 헌신 예정

이해우 위원장의 고향은 경북 포항이다. 20대에 인천으로 무작정 상경해 부두노동자로 살아온 것이 벌써 40년이다. 때문에 인천항에서는 이해우 위원장을 노조 대표가 아닌 항만의 웃어른으로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 임기에 접어든 이해우 위원장은 내년 5월까지 항운노조를 이끌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이해우 위원장은 “지금까지 위원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늘 나보다는 조합, 그리고 조합보다는 인천항 전체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남은 임기 역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하게 인천항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장중심으로 조합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면서, “지역사회와 인천항을 위한 활동을 힘차게 펼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인천항운노조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조합원의 단결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합원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등 조합원의 단결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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