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를 소재로 풍경을 만드는, 길 없는 길을 닦는 조각가
인체를 소재로 풍경을 만드는, 길 없는 길을 닦는 조각가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0.11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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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의 세계로 만든 공간에서 부조와 환조 사이에 꿈틀대는 생명의 에너지”
조각가 김영원 작가
조각가 김영원 작가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지난 9월 10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국빈방한 행사로 신남방정책 및 비티엠보고르 몰 방문의 답례차원에서 양국 정상이 함께 방문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2018남북정상회담-평양’의 프레스센터이자 2017년 DDP 조각전 <나-미래로>를 개최한 조각가 김영원 작가가 만든 8m 높이의 청동조각, <그림자와 그림자-길>이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 그의 제자이자 DDP를 디자인한 유명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에 이어 DDP디자이너컬렉션의 3번째 기증 작가가 된 김 작가는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세종대왕상을 제작했으며 한국 조각의 국제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추상과 민중예술의 유행 속에서 선(禪)이라는 정신과 청동 주물 간의 조화를 찾아 평면과 입체, 절단과 증식으로 실험 정신을 표현한 김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인체를 은유하며 기존에 없는 길을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상해 본다.

 

도시의 랜드마크 전문 조각가,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방향을 보다
예술가가 ‘제 3의 눈’으로 본 선조각(禪彫刻)은 무엇인가. 청동에 기공수련과 선(禪)의 결과물을 새겨 넣으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조각가 김영원 작가는 2009년 제작한 광화문 세종대왕상 하나로도 지난 40여 년 간 국내에서의 명성과 내공을 짐작할 수 있는 작가다. 그 외에도 `90년대 말 제 3대 국새를 조각하였고 2002년 김세중 조각상, 2008년 문신미술 조각상을 수상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으며 조각가협회이사장을 역임하는 중견작가인 김 작가는 신진 조각가들을 양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한국조각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된 이순신장군상을 비롯해,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상은 학술적인 고증과 다양한 어진을 참조하였으며 조선시대의 복식에서 비율을 재현한 그의 전통적인 대작이다. 임금의 권위보다는 한글창제를 한 성군 이미지를 나타냈으며 애민정신을 보여주고자 집현전 학사도, 6진개척, 대마도 정벌을 비롯한 업적을 묘사하는 6개의 열주를 만들어 자칫 지나치기 쉬운 조각의 메시지 전달에도 심혈을 기울인 김 작가는 서울시의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저작권수익을 무상 기증하여 작품의 존재의미를 빛내기도 했다. 김 작가는 이러한 도시 랜드마크 창조자로서 이탈리아의 저명한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의 제안으로 2013년 파도바 시의 시립미술관과 시청광장 등 5개 장소에서 열린 2인전을 비롯해, 김 작가가 직접 기공춤 퍼포먼스로 2.5m원기둥에 흔적을 남겨 현지 예술가들과 교민, 언론들이 어우러지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한 19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도 한국예술의 매력을 알렸다. 그리고 2010년 한중조각교류전을 계기로 북경 칭화대학교에서 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일화, 2015년 밀라노엑스포에서 라 페르마넨터 주립미술관의 양국 대표작가전에서의 활약 또한 김 작가의 예술인생에 큰 획을 그은 일들이다.

건축예술의 일부이자 주인공이 된 ‘자기성찰의 은유’, 그리고 은유가 모인 풍경
김 작가의 300회가 넘는 초대전 참여, 그리고 개인전 작품들은 이러한 대작 외에도 해부학적인 지식, 평면적인 부조를 환조로 확장시켜가며 인체를 대하는 색다른 방향으로 늘 화제를 모으곤 한다. 숱한 한식 프로젝트와 투자에도 반응이 미미했던 한국 요리가 ‘먹방(MUKBBANG)’이 등장하면서 유튜브 한류의 주인공이 되었듯, 오래 전 상파울루에서 남미의 정서와 낯선 한국의 선과 기공을 인상 깊게 소개한 김 작가는 글로벌 건축아티스트의 현장인 서울 DDP에서도 조각과 조형의 연계성을 찾아 영적인 면을 표현하면서 조형예술을 한결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광대한 공작품에서 작은 피규어가 존재 자체로 눈길을 끌듯이, 2017년 1만 9천 5백 평의 공간인 DDP 조각전 <나-미래로>에서 건축물의 조형을 보완하는 접점 같은 모습으로 조각 군상들을 배치하였다. 마치 물처럼 경계가 모호한 동선으로 흐르는 자하 하디드의 DDP ‘환유의 풍경’에서 착안한 인체의 은유와, 그 은유의 풍경이라는 화룡점정은 서울의 빌딩숲 동대문의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의도로 기증된 <그림자의 그림자-길>에서 볼 수 있다. 야외에서 빛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허상의 존재감에 여운을 담은 이 시리즈는 웅장함 속에서 인간의 자기성찰을 말한다. 그 외에도 수직 절단되어 앞에서 보면 꽃, 옆에서 보면 무한복제 중인 인간을 닮은 <그림자의 그림자-꽃이 피다>처럼 재미있는 작품도 많다. 

동양의 선(禪)이 공간에 들어와 무한한 공명, 성찰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조각의 물성과 인체의 한계에 순응하면서도, 이 사실적인 소재들을 평면으로 수직절단하고 증식·배열시켜 부조와 입상의 경계를 허물고 조화시킨 스타일은 2014년 <Shadow Of Shadow>전의 주된 주제이자 거대화의 예고였다. 그리고 인체묘사와 함께 ‘유무상생’, ‘색즉시공’, ‘태극음양’ 등의 세계관에 따라 하나 혹은 두 군상의 조합과 다양한 포지션이 어울려 작용과 반작용, 무의 대척점에서 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점을 박진감 있게 표현한 <중력 무중력>시리즈 또한 고독한 인체의 자화상이자 물질과 정신이 뒤섞인 존재성찰에 대한 것이다. 대학 2년 차에 국전에 입상한 이래 조각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김 작가는, 표현이 억압받던 `80년대의 갈등과 고민을 거쳐 인간의 본질을 간결하게 묘사하며 동양적인 담론과 조형언어를 해결해 왔다. 그리고 `90년대 초부터 인간의 의식변화를 탐구하고 기공수련과 ‘선’을 공부하면서 예술적 인식을 전환해 <조각-선, 드로잉-선>이라는 대표작을 발표하며 선적인 명상수행과 내면을 밖으로 끌어내는 몸짓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대화와 공명이 반복적인 조화를 이루며, 내면세계가 외면을 맞닥뜨리는 개념을 주변과의 교감과 상호소통으로 연결해 작가의 심신수련까지 예술행위로 이끌어 온 김 작가는 <제3의 예술을 위하여>로 원형기둥과 인간입상의 대칭적 조화를 통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영적 교감의 완성도를 거대화시켜 공간 속으로 불러온 김 작가는 점토를 다루는 육체적 한계에 창작욕구가 방해받지 않도록 몇 년 전부터 3D조각을 탐구하고 있다. 분야가 달라도, 이 작업은 유무상생처럼 평면과 입체가 뒤엉켜 서로 공존하며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보는 사람들의 감성에 큰 울림을 주어, 교감을 넘어 공명할 수 있도록 하는 작가의 진심어린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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