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고래등 위 상상과 희망 싣고 자맥질하는 종합예술가들의 초상
드넓은 고래등 위 상상과 희망 싣고 자맥질하는 종합예술가들의 초상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01.17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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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숨통 트인 요즘, 버스킹과 전시 그리고 작품창작에 물올라”
원상호 작가/카페 8번가 대표
원상호 작가/카페 8번가 대표

무릉도원을 업은 고래 조형물의 안내를 받으면 펼쳐지는 공간, 커피 잔 너머 마스크를 내린 사람들이 담소를 나눈다. 경희대 인근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하는 카페 ‘8번가’의 1층과 지하는 손님들과 관객들로 붐빈다. 지난해부터 모든 카페들이 원래대로 돌아갔듯, 8번가의 주인이자 <네모놀다> 테마아티스트인 원상호 작가는 카페 운영과 창작, 버스킹 공연과 2주 간격의 카페전시라는 일상을 되찾았다. 생두로스터기와 그라인더에서 갓 볶은 커피향이 감돌며 카공족, 펫팸족들이 들러 그림과 조각, 공연을 둘러볼 수 있는 8번가갤러리도 지난 해 아트페어에 2회 참가하며 올해도 참신한 예술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세 사람 몫을 하느라 바쁜 원 작가는 고래뱃속만큼 거대한 꿈을 키우는 예술가의 일원으로, 그들의 더 큰 새해소망을 전해 왔다.

요나와 피노키오가 본 것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고래뱃속

카페는 라이프치히의 카페바움처럼 커피애호가뿐 아니라 시인과 연주자, 평론가, 예술후원자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사교문화공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대형 공연장과 극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옮겨지며 이후 전시장과 박물관 역할을 하다가, 도서관과 공부방을 겸한 사교 장소 역할을 하던 카페는 뉴욕을 중심으로 미술과 음악이 혼재된 종합예술공간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저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적 향취를 풍기는 카페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것, 이 참신한 움직임을 선도하는 장소를 서울에서 찾고자 할 때, 많은 이들이 경희대 인근의 문화카페 8번가를 떠올린다. 

지하 공간을 8번가갤러리 겸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아티스트들과 갤러리의 이름으로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2주-1개월 간격으로 정기전시회가 열리는 8번가를 만든 원상호 작가도 어엿한 <네모놀다> 세계관을 갖고 있는 창작자다. 집과 책상, 선반, 방까지 삶의 다수를 상징하는 네모 프레임 안에서 목재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원 작가는 사각-스퀘어의 개념을 ‘갇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고래는 실존하고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포유류의 체온을 지닌 동물이다. 한편으로는 실물을 한 번이라도 보기가 어려워 존재가 신비로운 동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실존하지만 꿈처럼 멀게 느껴지는 존재의 상징인 고래의 조형을 입구 인테리어의 기반으로 삼았다. 요나는 살아 돌아왔고 피노키오는 생명을 느낀 장소. 그런 고래의 뱃속에 들어오면 여러분도 신기하고 즐거운 체험을 하자는 의미로 고래뱃속이자 사각형태의 지하에 전시공연장을 꾸몄다”

카페주인과 아티스트가 힘 합쳐 만드는, 행복한 2주간의 전시여행

원 작가는 로열티를 지불하고 프로모션 일정을 따르는 프랜차이즈카페보다 운영수익을 공연과 전시에 투자하는 개념으로 8번가를 열었다. 코로나가 풀리자마자 원 작가가 서두른 것도 버스킹과 공연일정이라고 한다. 또 원 작가가 무료로 대관하고 홍보해 주는 전시 예술가들은 공모로 뽑거나, 재능 있는 예술가들끼리 소개나 추천을 하여 입성하게 된다. “전시준비와 철수에 시간이 걸려서 1주로는 모자라 2주 이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팸플릿과 엽서도 무료제작이라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는 작품판매부스를 겸하는 아트페어를 포함해 10회 정도 작업했고, 신인/중견작가들과 두루 작업해 원 작가도 인맥이 제법 느는 편이다. 전업작가가 힘들어 점점 유튜브와 SNS로 향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은 상황이지만, 순수든 추상이든 작품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를 선호하는 애호가도 많기에 원 작가는 카페의 모든 코너를 카페관련MD와 서적, 그림과 조각으로 채웠다. 

이 공간의 인테리어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나무작업 부분은 직접 디자인하고 시공했기에, 사실은 8번가 전체가 원 작가의 작품인 셈이다. (사)21세기청년작가협회의 멤버들이 결성한 ‘작가의 창작 숲’ 멤버이기도 한 원 작가는, 깨어있는 예술가로서 종합문화예술의 대중화 및 더 많은 애호가들을 모으기 위해 “신인 작가들은 기성 작가들에게 참신함을, 기성 작가들은 신인 작가들에게 홍보방식 노하우와 작품 판매방식을 조언하며 함께 나아가자”고 권유한다. 여전히 예술은 전시장에 있을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아, 그 역시 유럽 본토 스타일의 커피와 베이커리를 선보이며 맛집탐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림과 조각, 일러스트, 음악을 접하도록 유도해 예술 인구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꿈 많은 ‘네모놀다’, 사각프레임 너머 문화공간 편히 즐길 수 있게

올해도 8번가의 목재공예와 가구, 액세서리를 만들고 수선하는 일은 목공전문가 원 작가의 몫이다. 그리고 의인화 한 동물과 사람을 네모 속 캐릭터로 구성한 <네모놀다> 연작으로 틀에 갇힌 인간의 행복찾기를 노래하는 원 작가는, 가장 효율적이되 지루하고 피로할 수도 있는 네모의 이미지를 위트 있게 재해석하고자 한다. “파랑새 동화의 교훈처럼, 진정한 꿈과 행복은 내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사각은 단순한 만큼 조립하고 구성하기도 쉽기에, 나도 사각프레임 안에서 놀게 된 것이다. 8번가의 공간도 사각인데, 만드는 작가 입장에서도 즐겁지만 방문한 관객들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네모놀다>는 평면 위에 부조와 콜라주, 조각요소로 입체성을 가미했으며, 그는 목재의 성질을 최대한 활용해 얼굴의 표정을 살려 보는 이들이 삶의 행복감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소재 면에서도 종이와 금속의 중간자인 목재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서 그가 8번가에 바라는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원 작가는 “이 사각형태의 지하 고래뱃속이 채울 예술 형식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지난 해 회기소상공인을 위한 홍릉문화센터와의 모바일연동 공동기획사업도 기억에 남는다. 창작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풍성하고 즐거운 결과물로 보람을 느끼고 만족하기만 하면 된다. 좋은 아이디어로 기획된 예술이자 이 공간에 들일 수 있다면 작품이든 공연이든, 혹은 그 어떤 상상력의 산물이라도 우리는 환영한다”고 덧붙인다. 원 작가는 자신의 사각 테마 여흥도 지금처럼 계속할 것이며, “지금보다 더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느끼고, 그렇게 타자의 예술을 열린 마음으로 즐겨 가며 하나씩 채워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와 행복 사이에서, 원 작가의 고래는 그렇게 창의적인 여행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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