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호랑이의 기운은 안광 밖의 줄무늬와 표정, 발걸음에도 있다
진정한 호랑이의 기운은 안광 밖의 줄무늬와 표정, 발걸음에도 있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01.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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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호랑이화 향한 성원에 감사하며 올해도 진정성 갖춰 정진하겠다”
호랑이전문 화가 포산 김태형 작가
호랑이전문 화가 포산 김태형 작가

지난해 검은 호랑이해에 더욱 각별한 대우를 받은 호랑이전문 화가, 포산 김태형 작가는 지난 12월 5년 가까이 달려온 일정에 잠시 여유를 갖고 가장 가까운 이들을 위한 소개전을 열었다. 섬세히 구현하는 털 결과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응시하는 그의 호랑이에는 영적인 특별함이 있다. 그는 탄성을 자아내도록 수준 높은 흑백 호랑이의 정밀묘사 비결이 피사체를 향한 ‘진정성’과 ‘관찰력’이라고 말한다. 스페인 레티로와 도쿄 동경도, 프랑스 루브르 카루젤관에서 미국 LA법무성 전시장까지 온 세계를 누빈 그의 호랑이는 대부분 소장용으로 주인의 손을 떠났지만, 김 작가는 바지런한 토끼의 해를 맞아 여전히 자신의 삶의 8할은 ‘호랑이’라 말하며 벌써부터 11년 후 도래할 새로운 호랑이의 해를 기다린다. 

자연 속 신성한 존재 호랑이, 작가적 경의 표하며 본연의 성정 담아

갤러리케이의 창립 멤버이자 전속 화가인 포산 김태형 작가는 요즘 6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완판하고, 휴일과 명절까지 반납하며 밤새 붓을 잡은 생애 가장 바빴던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호랑이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 호랑이화로 유명한 김 작가에게 지난해는 호랑이해답게 6월과 12월까지 2차례에 걸친 갤러리케이 일정은 물론, 호랑이의 기운을 얻어가려는 이들의 소장작품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고 않다. 호랑이로 유명한 화가는 많지만, 호랑이화에서 가장 리얼리즘에 입각한 표현력으로 알려진 김 작가는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대한민국 전역의 시베리아호랑이를 독대하며 관찰한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호랑이를 사진과 똑같이 묘사하는 극사실주의보다는, 호랑이의 일상과 본질에 천착하는 작가다. “흔히 생각하듯 위협하는 포식자나 코믹한 민화의 이미지 대신, 자신의 구역에서 살아가는 호랑이의 모습에서 식물로 치면 사군자 같은 예의와 도리, 깊은 성찰을 느낀다”는 그는 호랑이의 이빨보다 눈빛과 표정, 산들바람을 맞은 털 결을 구현하며 건강한 줄무늬를 그린다. 빛과 어둠의 명도를 치우침 없이 고르게, 그리고 조화롭게 풀어나가는 그의 붓터치는 호랑이의 전 생애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다큐멘터리의 장면을 연상케 하며, 생태학자와도 같은 따뜻함으로 호랑이 개체들을 지켜본다. 백수의 왕, 백두의 신수인 호랑이가 상대적으로 좁은 동물원을 거니는 심정이 궁금해, 눈빛으로 말을 걸고 교감하며 “반드시 자연의 모습으로 표현하겠다”는 약속을 진정성 있게 실천한 결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그의 캔버스 위는 어느 덧 호랑이들의 서식지로 변모했다.

호랑이에 생명 불어넣겠다는, 미약하되 큰 뜻으로 리얼리즘 도달해

러시아 정부가 혈통을 관리하는 세계적인 희귀종이자, 호랑이 혈족 중 가장 용맹한 시베리아 혈통은 행여 박제와 고급 양탄자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한국에서도 개인 소유·번식이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한반도를 누비던 맹수들의 왕은 오늘날 국가 간 교류와 사육사들 품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반려동물화를 그리는 작가와 달리 호랑이작가가 호랑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더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맹수로서 멸절해간 호랑이의 침울한 나날들을 보며, 소박하다 못해 검박한 목탄 그림을 그리는 김 작가는 흔하고 미약한 소재와 도구로도 담대한 호랑이의 본질을 부활시키고 제대로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또 한국의 기상을 상징하는 귀한 호랑이로 나타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그는 흑백의 색과 선에 최적화된 기법을 연구했고, 흑백 필름카메라로 현상한 듯 오묘한 호랑이의 색감과 인상을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김 작가의 작품세계와 그의 호랑이 표현력에 주목한 갤러리케이와 김철호 관장의 실험정신이 만나, “입을 굳게 다문 호랑이”, “호랑이의 측면초상”처럼 전에 없던 호랑이의 심도 높고 정적인 면도 부각되었고, 은근과 끈기, 인내와 긍지의 표상인 시베리아호랑이의 자존심도 예술이라는 무대 위에서 갤러리의 관심을 모았다. 덕분에 당시 40명대였던 갤러리케이의 소속작가도 현재 170명대로 늘었다고 한다. 이 같은 성공가도에 불을 지핀 것이 12년마다 돌아오는 호랑이의 해였으며, 그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했다는 호랑이의 축복을 받았다. 김 작가는 “아직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보인다”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그럼에도 다사다난한 삶 속에서 호랑이의 형상은 화구를 매개로 공존하고 종종 꿈에 나타날 만큼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변치 않는 호랑이작가로 살아가자는 소명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올해는 작품세계를 다시 정비하는 시간, 중순 이후 개인전 개최예정

김 작가의 섬세한 세필이 깃든 호랑이의 정밀묘사에는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지난해 그의 호랑이화가 풍족해졌다. 한 호흡으로 그려야 하는 호랑이화 작업 중 다른 주문의뢰에 따라 흐름이 끊겨 최종작업만 남기고 보류해 둔 케이스가 많아, 이 그림들이 모두 검은 호랑이해에 완성되어 빛을 본 것이다. “이러한 우연도 모두 호랑이와의 특별한 교감과 인연 덕분”이라는 김 작가는 여전히 호랑이의 기운과 생명력을 그리고자 30호 이상 100호 내외의 캔버스를 고른다. 최대 150호로 전신을 담기도 하며, 호랑이의 안광과 측면 외에도 얼굴 없는 몸의 무늬만으로 신수의 명쾌한 기운을 표현하기도 한다. 김 작가는 앞으로 호랑이의 사실적인 요소를 모아 새로운 기법과 구도를 선보일 것이며, 언젠가는 객체였던 자신을 그림 속에 의인화하거나 평생의 ‘호위무사’이자 영원한 ‘피사체’인 호랑이를 향한 성찰을 새롭게 표현할 것이라고 전한다. 
한편, 그는 지난 5년 간 완성되자마자 떠나보내 늘 그리웠던 호랑이화들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호랑이시리즈 작업과 함께 지난 작품들을 복원할 것이며 그 작품들은 완성 후 직접 소장하겠다고 전한다. 또한 그는 이 그림들로 이루고픈 장대한 꿈이 있어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체력이 허락하는 한 붓으로 호랑이를 한 올 한 올 살리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며 우선 올해 중순 이후 잠시 미뤄둔 신작 개인전을 열고자 김포 지역의 전시장을 물색하는 중이다. 김 작가는 “가수가 노래하다 무대 위에서 소천하듯, 나도 마지막까지 호랑이를 그리다 가는 예술가이고 싶다. ‘태어날 때는 따로 였지만, 갈 때는 호랑이와 함께’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작가로서 보답도 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다. 올해도 나의 작품 속 호랑이와 대화를 나누며 더욱 깊이 성찰하는 작가가 될 것이다”라며 하늘이 준 호랑이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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