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圓)을 에워싸는 원색, 그리고 마음표현의 율동으로 드러난 ‘희(希)’
원(圓)을 에워싸는 원색, 그리고 마음표현의 율동으로 드러난 ‘희(希)’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11.1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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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실을 나타낸 인간 내면 본성, ‘희’는 기쁨이자 희망의 다른 이름”
서양화가 성순희 작가
서양화가 성순희 작가

융합과 함축은 글자를 문학이라는 예술로 만들듯, 미술로 오면 표현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세포들이 된다. 그리고 오랜 인류의 논제인 어둠과 낮, 불과 얼음, 원과 선처럼 대비되며 융합하는 요소들은, 과학과 문학, 미술이 때로 동등한 언어를 지향함을 보여준다. 이 모든 요소들의 융화형 표현주의를 추구하는 서양화가 성순희 작가는 에너지의 원천을 음양오행에서 찾고, 그 상징을 원과 구의 형태로 그려왔다. 일월오봉도와 음양오행, 병풍과 풍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을 타면서 음양의 요소인 태양과 달 같은 자연물의 이야기로 신비로운 연작을 선보인 성 작가는, 이제 작가의 즐겁고도 행복한 행위 자체에서 희망적인 언어를 조합해 인간 내면 본성의 음률 희(喜)를 그리며 관객에게 밝고 유쾌한 희(希)라는 음원을 남겨 주고자 한다.

‘색을 쓰는 철학자’의, 긍정적 에너지 넘치는 ‘희’의 융합형상 

올해 4월 <The Golden Circle> 테마를 소개한 서양화가 성순희 작가. 그는 회전과 순환을 사계에 빗대고 자수와 직조물처럼 표현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군집요소의 역동성에 기쁨(희)을 공유하는 즐거움(희)을 더하러 왔다. ‘색을 쓰는 철학자’라는 별칭에 맞게, 동서양의 문화예술과 과학, 미술의 접점을 직조해 온 그는 캔버스 밖의 이야기를 그러모아 펼치는 화풍을 좋아한다. 서양채색과 동양오방색 요소의 조화가 거듭되며, ‘원’을 일월오봉도의 남다른 기운으로 나타내 정적인 1차원 배경에서도 활기찬 색배합을 보여준 성 작가가 그림에 담는 주제는 명료하고도 다양하다. 원을 ‘운(運)’으로 분석하여 원 안의 원을 순환하는 고리와 삼라만상의 이치, 확산과 팽창/수축의 흔적, 시작과 끝이 같은 원이라는 도형의 정의를 마친 그의 작품에서 병풍의 확장, 풍물놀이의 역동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 해 계절의 변화와 음양오행 철학의 시각화로 원과 선을 택해, 색과 현상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 그는, 음양오행의 에너지에 대해서도 오방색으로 정의한 사계절 연작 4점을 병풍처럼 이어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이 반복과 회전에서 온다는 이치로 은유하였다. 더 나아가 음악과의 융합으로, 곡면 위에 피아노 건반을 실험적으로 배치한 작법을 선보인 성 작가는 지난해 6월 예술융합세미나 <예술융합의 접근과 방향>에서는 동서양 미술융합에 소리까지 입힌 농악단 콜라보 아트퍼포먼스로 종합예술에 한 단계 더 다가섰다. 이처럼 움직이는 소리와 팽창·회전하는 색의 구도에 능숙해진 성 작가는, 이제 마음속 이야기와 직접 체험한 현실을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체험하는 희로애락을 화폭에 담으며, 자신을 찾아 끝없는 감정표출로 인간 그 자체의 내면적 삶의 표현을 여러 갈래로 하다 보니, 이번에는 작가의 ‘즐겁고 행복한 행위’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다. 음악의 감성에서도 직선적인 선의 음률이 있듯, 카타르시스 이론을 접목하여 다중적인 무의식의 존재사실을 다각도로 교차해 보여주려 한다” 그러니 원경으로 보여주는 원색의 선들이 사물놀이처럼 흥겹게 교차된 장면에서, 어둠조차 기쁨을 장미꽃처럼 돋보이게 할 안개꽃인 양 더 이상 암흑이 아닌 나름의 배역이 있다.

반복은 작가가 말하는 희망의 언어이기에, 기쁨도 희망도 겹치면 ‘희’

뉴욕 개인전과 LA아트쇼, 현대미술초대전, 아시아아트페어에서 개인창작과 콜라보작업을 병행하며 우주의 현상이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는 에너지를 전달했던 성 작가는, 이번에는 어릴적 즐거운 순간을 색으로 형상화 해 그 좋은 기억이 지닌 ‘희’의 긍정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정한 음양의 한 쌍이 조화하는 구도로 동물화를 그리고, 대립보다 짝을 이룰 화합의 수단으로 보색을 활용했기에, 성 작가는 원을 둘러싼 원색의 ‘반복’ 요소도 희망의 언어로 배열한다. 서로의 즐거운 마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몸짓처럼, 혹은 어릴 적 놀이의 반복되는 구절처럼, 색색의 선으로 암시된 작품의 페르소나들은 인간의 본성과 서로 끊임없이 마주치고 순서를 바꿔가며 연속적 변화와 운동성으로 마음과 마음속에 전이된다. “연속적인 변화와 확장되는 행복으로 나의 그림이 관객들과 소통하며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공통의 정서로 남길 바란다”는 성 작가의 에너지는 마치 상모를 돌리듯 곡선으로 신명나게 회전하는 원색들, 투시보다 가로질러 뒷배경을 보여주는 호방함으로 누구나 갖고 있는 각각의 희망찬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 <The Golden Circle>의 찬란한 원도 밝은 테마에 맞추어 풍물놀이의 악기마다 빠짐없이 장착된 원형 디자인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꽹과리와 징의 투박한 원형, 치배잡색의 손에 들린 반달형 부채처럼, 원은 방사형과 회전형으로 모인다. 그리고 또렷한 색 위를 내지르듯 원과 직선, 원과 곡선이 색으로 배열되고 율동하는 모습들은 한계나 고정이라는 관념에 머물지 않는 융합과 함축의 자유로운 미학을 보여준다. 사실 그의 이 파노라마적인 모티브 변용은 자연물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는데, 계절의 변화에서 나무와 나뭇가지의 요소는 세필표현보다는 패턴화 된 반복과 확장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희로애락에서 성 작가가 찾아낸 희(喜)가 희망의 희(希)와 같은 소리를 내며, 인간 내면의 표현에서 그가 처음으로 고른 행복한 행위를 상징하는 단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성 작가가 시적 허용처럼 원과 구에서 회전의 속성을 찾았듯, 희(喜)가 반복되면 누구나 자연스레 희(希)를 연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성 작가가 관객에게 원하는 연속적인 변화는 바로 그렇게 확장되어 가는 행복의 메시지이며, 작가의 기쁨이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이되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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