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기법의 대작으로 소환된 고대 문화요소의 장엄한 서사
하이브리드 기법의 대작으로 소환된 고대 문화요소의 장엄한 서사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8.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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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타임라인 제시할 점묘와 스크래칭의 패턴화”
장영희 화가/ 국전 특선작가
장영희 화가/ 국전 특선작가

각 시대별 예술사를 파악할 때도 규모와 범위의 경제이론을 벗어나는 매우 흔치 않은 의외성의 공간, 미술전시장을 잘 활용하는 방법은 시선의 이동에 맞춰 시간의 흐름과 작가주의의 도약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오는 9월 13일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될 장영희 화가 개인전은 코로나로 미뤄졌던 규모 있는 개인전이자, 그의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자축하고 기념하며 수묵에서 암각화의 질감을 재현한 대작으로 전향해 온 작가의 역사를 집대성할 좋은 기회다. 전통수묵화로 출발해 암각 벽화를 매개로 서양화법을 도입하며 우리 고유문화와 전통문화의 조형성을 현대적 기법으로 재현해 보인 장 화가의 하이브리드적 실험정신은, 21세기 한국 미술계가 주목할 만한 변화이자 정반합의 이치가 담긴 매우 이상적인 방정식을 보여준다.

국전이 주목한 독학의 연금술사, 캔버스에 재현한 고대 벽화의 비밀
우리의 색을 선명한 오방색보다 투박한 암각벽화로부터 찾고, 12지신의 웅장함을 문양과 패턴의 흐름으로 축약해 낸 창의적인 예술가, 미대와 대학원 코스를 밟는 한국화단에서 스승의 기법을 독학으로 발전시키며 국전의 벽을 넘은 대구의 장영희 화가가 올 가을 개인전을 개최한다. 한국화단이 서양화에 선사한 미술적 자산이자, 1986년 불혹인 41세로 대구중앙화랑 제1회 수묵회회원전과 1988년 송아당화랑 1회 개인전에서 자신만의 한국화를 알린 장 화가는 2004 PARIS-Echange Coree Athena를 비롯해 동남아서화종합예술대전, 한국미술대전, 정수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대구미술대전, 삼성현미술대전 등 다수 공모전을 석권하며 아카데믹함을 벗어난 신조류를 개척해 왔다. 도트기법보다 우연성이 강조된 액션페인팅 기법으로 벽화가 지닌 세월의 풍상을 재현했으며, 패턴화된 스크래칭으로 암각화의 유니크함을 캔버스에 발휘한 장 화가는, 본래 남강 김원 선생의 제자로서 20여 년 간 한국화가로 활약해 왔었다. 무게감 있는 산수화를 추구한 그는 서양화가 최돈정 선생의 조언으로 화선지 위에 수묵과 수채, 분채의 풍부한 화풍에 자연과 전통 유물에서 발견한 동양의 토템적인 문양과 조형성을 가미한다. 그리고 한국화의 정신과 조형성에 마치 연금술사처럼 서양화의 색채와 실험정신을 자유자재로 발휘하게 되었다. 원물을 도려내고 패임을 남기는 투조와 토기세공의 질감을 색으로 재현할 뿐 아니라, 분채와 석채를 덧입히며 뿌리는 행위를 더하면 더할수록 오히려 밑색이 드러나며 퇴색된 효과를 내는 것도 장 화가의 기법에서 주목할 점이다. 이처럼 붓에 구애받지 않는 기발한 도색으로 장대한 고분벽화와 장니세공기술처럼 보이도록 서양의 캔버스에 표현한 기법은, 국내외를 통틀어 장 화가만의 정체성이자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화풍의 ‘지문’이다.

기법과 세계관 갖춘 작가정신으로 빈티지한 흔적에 세련된 재해석 입혀
미술에서 ‘퇴색’이 퇴화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그 퇴색에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마가 기린의 다른 이름이듯, 무용총과 천마도의 명성을 완성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규모와 화려함이 아닌 새(乙)의 형상으로 리듬을 타는 사람과 동물의 역동적인 형상을 퇴색하게 만든 긴 세월이 켜켜이 쌓인 서사라고 한다. 장 화가 또한 고전 벽화의 형상에 함축된 시각적 힘을 읽었으며, 고분구릉에 벽을 만들지 않는 신라의 장니도에 벽화대작보다 섬세한 기법이 집약되었음을 알았기에, 시각의 서사를 지닌 화가는 역사가이자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처럼 창의적인 시각으로 문화의 역사성을 파악해 낸 장 화가는 색의 질감과 배어남을 이용해 오직 세월만이 해낼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 모방하는지를 다각도로 고심했다고 한다. 이는 신라유적을 발굴하다 일부는 벽화가 아닌 금속세공임을 깨달은 한국의 미술사학자들이 해 온 고민과도 유사한데, 태생적 자유로움과 진경산수화에서도 묵직한 무게감을 더한 실험정신으로 창작을 한 덕분에 장 화가는 한국화에서 서양기법을 빌려오면서도 흔한 클리셰를 피해갈 수 있었다. 따라서 <흔적> 연작들은 먹으로 전통문양의 형상을 새로이 조형해, 동서양의 혼합재료로 주술적인 메시지를 나타내며 그가 아껴 온 동물형상, 원시시대의 칼과 문양이 어떻게 우리 문화 속에 녹아들었는지를 색다른 관점으로 보여준다. 빈티지함을 통속성이 아닌 독자적인 채색언어로 승화한 비결 또한, 이렇게 일취월장한 기법상의 정반합을 거쳤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채와 분채, 석채, 유채에 붓과 나이프로 모든 기법을 실험한 채색수제공임이 정이요, 시간을 역행해 문화재만의 퇴색된 질감을 재현하는 것이 반이라면, 작품의 폭과 너비로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담은 것이 그가 지향하는 합이다. 

상징성 있는 오브제로 문화의 단면을 파격적으로 융합한 대작 선봬
지금까지 관광지 폭포의 호쾌한 물소리에서 장승의 굳은 심지, 청도 소싸움의 역동성과 독도의 명징한 형상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뤄 온 장 화가는, 시간이 갈수록 태고 신화에서 추존된 동물과 자연의 형상으로부터 실존으로 형상화 한 신수를 환상적이고 신비롭게 표현하고 있다. 상징성이 강한 2005년의 <봉황>과 이를 재해석한 <얼>은 동서양의 아름다운 융화를 보여주며, 탈춤 장면인 <환희>, 전통의 문양과 식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바람>은 세상사와 자연물에 보내는 경의와 찬탄이다. 고분 그 자체보다 지금까지 보아 온 토기, 조각, 유물 하나하나에 개성과 상상력을 담길 바랐기에, 지하철과 시내버스의 백미러와 폭포의 물방울까지 모두가 장 화가의 도식과 패턴, 오브제가 된다. 또한 장 화가가 보여준 시대상의 변화와 세월의 서사는 작가주의를 향한 노력과 정진으로서, 진한 먹빛으로부터 배운 진중함은 한국화를 떠나 온 지금도 장 화가의 수묵대작 시절을 기억하게끔 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물 먹은 화선지의 번짐효과와 고대 암각화 패턴의 비정형성을 보여준 <흔적> 연작과 작별한 후, 그는 유화 혼합채색과 스크래처, 뿌림 기법을 다각화해 대작 <기린>에서 캔버스로 보여줄 수 있는 벽화기법을 집대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접목도 창작의 중요한 갈래임을 증명하고 한국화의 외연확장으로 위대한 새 길을 연 장 화가는, 개성적 모티브를 융합한 자신의 형상예술을 보여준 2016년 2월 회갑기념 개인전보다 한층 심화된 작품세계를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까지 기법의 독창성과 대작의 규모로 자신을 표현해 온 장 화가가, 길고 넓은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선택해 홀의 구조를 십분 활용해 보여줄 대작의 ‘서사’는, “언제나 이번 전시가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온 그의 예술혼과 결을 같이 하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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