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채소 유통 노하우 개척해 도매시장의 한파 속 생존법 찾다
특수채소 유통 노하우 개척해 도매시장의 한파 속 생존법 찾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5.13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기업 진출이 재래·도매시장의 큰 악재, 소상공인은 선택과 집중 필요”
기복유통(주)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기복유통(주)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은 서울 재래도매시장을 대표하는 가락시장의 생존방식에도 해당된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사업과 코로나 창궐, 대기업 도매시장 진출이라는 난관을 차례로 넘어 온 가락시장 특수채소도매업의 상징, 기복유통(주)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는 42년이 넘는 도매시장 터줏대감의 삶에서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구 대표는 그간 쌈밥집의 갖은 채소 유행, 다양한 꽃상추의 대중화, 새싹삼의 인기, 허브채소와 각종 품종개량채소를 선도하며 지금은 인스타 등 SNS/소셜의 먹는 꽃 유행과 ‘EAT템’을 이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유행이 영원하지 않다며 새로운 품목을 연구 중이다. 한결같은 자세와 노력으로 어떠한 흥망성쇠가 있다 한들, 힘닿는 대로 특수채소 전문가로 살아갈 것이라는 구 대표를 만나보았다. 

불은 꺼져도, 재래시장의 삶은 이어지고, 채소는 싹을 틔우더라

기복유통(주)의 기복농사, 기복상회를 운영하는 구자분 대표 부부는 주 6회 저녁에 출근해 새벽이슬을 지나 아침을 맞는 올빼미 자영업자이다. 가락시장 채소코너와 저장고가 대공사를 거쳐 지상이 아닌 지하로 바뀌고 경매장보다 전시장의 느낌으로 변한 지금까지, 이들은 대한민국 식자재채소시장의 유행과 변화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체험한 업계의 산 증인이다. 코로나 이후로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고정업체 80여 개는 기복상회를 고수할 만큼 구 대표의 손에서 거래되는 특수채소들의 신선도와 품질을 신뢰한다. 직원 13명을 두고 연 10억 매출을 기록하며 잘 나가던 시절이나, 부부가 힘을 합해 지난 4년 여 힘든 시기를 버텨온 지금이나 구 대표는 가락시장 특수채소 분야의 어머니로 불리며 꾸준히 유행을 선도해 나갔다. 지난 10년간 샐러드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리한 인물도 바로 구 대표였다. 채소 품종개량에 참여하고 도매시장에 진출시키며, 기억하기 쉬운 별명도 붙여준 특수채소들은 그의 자식이나 다름없다. 꾸준히 작황을 연구하고 국내외 재배업자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샐러드 시장에서 애호박보다 주키니가 익숙해지고, 프랑스 꽃상추가 롤라로사로 불리며 요리 레시피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까지 이 시장을 꿋꿋이 지켜 온 구 대표에게 특수채소의 유통과 직거래, 재배노하우를 문의하는 이들도 많다. 스마트폰 채소배달시장이 커졌지만, 여전히 몇몇 특수채소들은 구 대표의 손에서만 구할 수 있기에 도매 고객들이 유지되며 입소문도 이어진다. 

대기업과 대형마트의 본분에 충실하고 도매시장의 고유영역 지켜지길

대기업이 도매시장에 진출하고 새벽배송과 대량구매 큰손을 자처하면서, 구 대표는 직판장과 영세도매업자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전한다. 3년 전부터 대형매장 사입직송에 대기업 유통사들이 들어와, 가공해서 1회용으로 배달하는 파급력에 흔들리다 코로나로 직격타를 맞은 분야가 채소도매시장이다. 그래서 구 대표는 업계의 파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특수채소시장은 누구보다 앞서갈 수 있고 품목의 특이성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대중적인 품목들은 불황으로 식당 폐업이 많아져, 납품업자들 또한 거래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영세업체들을 위해 정부가 규제한다면 “식자재도매의 탈을 쓴 대기업이 대형마트에 양다리를 걸치면서 커미션을 넣어 소상공인의 밥줄을 끊지 않도록 하고, 대기업의 진출업종을 법으로 규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구 대표는 영세상인들 또한 잘 생각하고 장래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이는 이번 윤석열 정부가 꼭 해결해야할 사안 중 하나라며, 소상공인과 영세상인들을 위해 꼭 해결을 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2년 전부터 꾸준히 구상 중이던 ‘식용꽃’을 더 개척해,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인스타의 인기매장 셰프들에게 주로 공급하며 새 판로를 연 구 대표는 “식용꽃 분야가 전체 매출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거래 손님을 트는 데 있어서 좋은 연결판매 역할을 한다. 식용꽃 하나만 사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남편이 시작한 햇수까지 50년이 넘고, 딸의 나이보다 더 오래 매장 일에 몸담아 왔다는 구 대표는 도매시장이라는 현장의 울타리가 튼튼하지 않기에, 납품업자들과 도매시장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수 있도록 현장을 아는 인력이 보호받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식자재 보는 눈은 발품으로 길러져, 젊은 상인들의 부재가 아쉽다

식물은 사람의 허락을 받고 싹을 틔우지 않는다. 적절한 환경과 사람의 정성만이 새싹을 틔운다. 구 대표는 외국의 지인들과 국제결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문익점의 노력을 방불케 할 만큼 전 세계 희귀식물 정보를 얻어 싹을 틔우고, 농사전문가들의 조언으로 식감 좋은 품종개량에 힘을 썼다. 해외 셰프들과 식재료전문가들도 감탄한 구 대표의 화려한 경력은 99%의 노력과 1%의 미래를 읽는 눈에서 왔다. 먹는 채소 시장을 선도하려면 우선 요리에 대한 정보도 밝아야 한다. 그가 한국의 쌈 문화를 유심히 연구하다 채소 맛에 매칭해 싸 먹을 육된장과 우렁된장 맛을 먼저 고려하니 어느덧 전국에 쌈밥 프랜차이즈가 생겨났고, 새싹삼을 농민들과 상생거래하기 시작하니 영양삼계탕집들이 새싹삼을 사이드로 내놓은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요즘은 샐러드 위에 예쁜 식용꽃 데코가 인기라는 구 대표는 매출에 상관없이 2층 저온창고부터 쇼룸 오프라인 매장에 있으면서도, 온라인 시장은 물론 대한민국 요식/농산물을 매일 탐색한다.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는 구 대표는 요즘 채소청과시장의 또 다른 문제가 고령화라고 한다. 마늘처럼 상중하로 정해진 품목이면 괜찮지만, 줄잡아 1천 종인 구 대표의 특수채소 분야는 불황을 무릅쓰고 구인하려 해도 적임자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매장을 부부 둘이 운영 유지할 여건이 되는 것도, 계산도 셀프로 하고 시세도 먼저 알아보는 단골들 덕분이다. “사람도 새로운 품목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구 대표는, “코로나 지원금을 받을 조건이 안 되었던 것도 생각해 보면 다행한 일이다. 작아진 시장 규모로 인해 부부가 부지런히 일하면 충분하긴 하지만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열심히만 하면 초봉 3백만 원이 기본인 이 분야에 꼭 젊고 의욕 있는 이들이 들어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