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지친 이들의 마음속에 각양각색 종들의 영롱한 앙상블을
코로나로 지친 이들의 마음속에 각양각색 종들의 영롱한 앙상블을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1.18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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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축복의 종 아래, 당신과 ‘소리의 춤’으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도예가 유승현 작가
도예가 유승현 작가

매년 우리에게 크리스마스의 아기자기함과 웅장한 제야의 소리라는 두 가지 기억을 남기는 종소리. 소설가 김유정의 외종손녀로 도예가, 음악가, 수필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유승현 작가에게, 종소리는 소리의 공명을 넘어 그의 청춘을 바친 음악에의 열정을 시각과 촉각의 두 가지 기억으로 재해석하여 사시사철 행복이 솟아나는 샘물이기도 하다. 2000년대부터 그의 도예 시그니처 테마인 <축복의 종>시리즈는 2년간의 팬데믹을 거치면서, 올해는 연말연시 도심 한복판 전시 대신 너른 바닷자락 앞 ‘뮤지엄 남해’에서 “소리의 춤”을 주제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종소리의 힐링과 여운을 보여주는 전시를 택했다. 그리고 남겨진 우리의 삶도 새로이 위로를 받고 축복으로 웃음 짓게 하고자, 그는 도자 파편을 모아 김유정의 도시 춘천 ‘예담 더 갤러리’에 <새로운 날>로 거듭날 이미지로 재구성하며 소담스런 새해맞이를 준비했다. 올해도 상당한 전시일정을 기대해 달라는 유 작가의 새해맞이 행복한 일상을 잠시 들여다보자.

리듬과 율동이 허락된 유일한 흙, 도자로 만든 종소리의 울림을 보라
비올라 현의 미세한 떨림에 이끌리고 현과 건반이 합을 이뤄 견고한 소리를 내는 피아노에 매혹됐던, 그러다 나무를 다듬듯 흙을 만져 가마에서 소성시키는 도예가 아버지의 삶을 존경하며 가마 앞의 삶을 택한 창작자. 도예가 유승현 작가의 도예 작품들이 유독 리듬감과 율동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그의 삶도 종합예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작은 진동조차 크게 보이는 정적인 예술품이 도자라지만, 유 작가의 도예작품 <축복의 종>시리즈들은 누군가의 타종으로 얻은 울림과 자연스러운 흔들림으로 생긴 소리로 각자의 울림통과 재질, 소성온도에 따라 다른 개성을 들려준다. 그래서 유 작가는 자신이 만든 종을 모두 천장에서 바닥을 잇는 크고 작은 위용으로 진동과 공명을 일으키며 하늘과 땅을 맞닿게 하듯 설치한다. 이러한 희망의 여운을 담아 모두가 바라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며, 지난 12월 1일부터 오는 2월 26일까지 ‘뮤지엄 남해’에서 열리는 유 작가의 초대전 <Dancing of Sounds>는 바다를 그리며 달려가는 유 작가의 다양한 오브제가 소리의 춤이라는 주제로 섹션마다 응용되는 전시다. 
덧붙이자면, 전시공간 ‘뮤지엄 남해’는 시골길의 끝, 진짜 남해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한 곳이며, 유 작가의 유년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 이번 전시 준비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섹션으로 아이들을 위해 종과 악기를 함께 설치한 전시공간을 제안하는 그는, 코로나를 이겨내는 우리 모두를 격려하고자 축복의 종에 ‘너와 나, 우리 모두’의 희망을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이 열린 2022년을 자축하고자, <봄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의 외종손녀이기도 한 그는 1월 3일부터 28일까지 제2의 고향 춘천의 소담한 한옥전시관 ‘예담 더 갤러리’에서, 그동안 환대로 반겨 준 팬들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로 소담스러운 한옥갤러리에 깨진 도자 파편들을 꽃과 자연물의 이미지로 연출하며 우리의 희망을 활짝 꽃피울 예정이다. 

다양한 종소리의 다이내믹 레인지, 우리 사랑처럼 깊고 넓은 여운으로
유 작가는 저명한 소설가의 외종손녀이자 손수 흙가마를 지어 낸 한국왕실도자기 장인의 딸로도 알려졌지만, 이제는 한국의 가장 인상적인 도자기 종 작가가 됐다. 오래 전, 소설가 김유정의 집필을 도우며 동네에 벌어지는 다정다감한 이야기를 소설의 모티브로 제공했던 유 작가의 할머니처럼, 유 작가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헐벗은 나무에 사과를 꽂아 주며 호기심을 자아내고 공부하라는 강요보다는 책 사이에 초콜릿을 꽂아 자연스럽게 학업과 독서를 가까이하게 했다. 어머니 역시 맑은 노래와 축복기도로 가족의 영혼을 살찌워 주었고, 말보다 메시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 작가의 예술 감각도 그러한 안정된 정서와 정신적 유산 덕분에 싹트게 된 것이다. 유 작가의 ‘축복의 종’에는 가까운 이들과의 소통 부재가 아쉬워 그들 모두의 이름을 종에 적어 축복한 것에서 유래된 관계성과 희망의 메시지가 크다. 보이는 메시지에서 많은 공감과 기쁨을 전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유 작가는 그 후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축복의 종’ 기획전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기에, 그는 흙의 변화와 소성의 변화, 실패한 파편들도 보듬어 안고 소생시켜 재구성한다. 그의 도자기 종이 시각장애 아이들에게 손과 귀로 도자조형을 보게 하고자 시작되었듯, 크든 작든 모든 종소리의 다이내믹 레인지 영역 모두가 그에겐 소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롯된 희망으로 병마를 이겨내고 전시기획과 글 창작을 즐기며 청소년 오케스트라, 핸드벨 지휘자로도 살아가는 그의 작품은, 명성교회 박물관과 새벽기도전시관, 양구백자박물관, 김유정문학촌, 교육청처럼 여운이 크고 메시지가 강한 장소에 소장되어 있다.

행여 소성에 실패한 흙도, 창작 앞에선 루바토템포의 앙상블처럼 가치 있어라
      
1996년 도예에 입문한 유 작가는 도자장인 2세로 유년기를 안료와 흙을 자주 접할 수 있던 축복받은 환경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청화백자처럼 전통의 방식과 형식미를 존중하되, 매체의 다양성을 활용하고 유약과 가마소성 방식에 변화를 준 현대 조형도자 작업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조형의 변화를 시도하는 그는 1250도 가마소성으로 발색되는 유약을 발라 30도 저온으로 요변을 만들어 여기에 흠이 아닌 실험성과 다양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의 아버지가 바흐의 인벤션 같은 심플하고도 기본을 지키는 정통성이라면, 딸인 그는 쇼팽의 녹턴이나 슈만의 즉흥환상곡처럼 낭만적인 변주에 강한 셈이다. 또한 모든 콘텐츠가 작가의 정서를 담는 그릇이라 믿는 유 작가는 도자장인 전시기획과 아카이빙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소성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를 담지 못한 파편을 폐기하기보다는 재활용과 재구성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욕심보다는 긍정과 자유의지로 살아가며, 아침을 조깅으로 시작해 작업실에서 흙을 만지고 때로는 그랜드피아노에서 행복한 연주를 하며 감성을 충전하는 그에게 전업작가의 삶은 대중들에게 축복의 종 아래 웃음과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춘 듯 미래를 기약하는, 그럼에도 휴식보다 재충전이 절실한 이들에게 유 작가는 4월 인천 북항갤러리 초대전인 <Moon and Color of dream>, 6월 충무로갤러리 초대전 <은은하게 담대하게>, 8월 혜화아트센터 초대전 <In maldives>를 선보이려 한다. 나아가 하반기 그룹전과 자신처럼 도예가 2세로 살아가는 작가들과 ‘불놀이 워크숍’을 기획하며, 문학인의 피가 이끄는 대로 10년 이상 독서모임을 해 온 그는 ‘흙사람’을 주제로 한 동화 작업도 올해 안에 완성하려 한다. 규칙적인 루틴이 창작열을 지피는 연료라는 유 작가, 그가 전하는 사랑과 마음의 앙상블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꺼이 영원한 창작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행복과 축복으로 빚은 도자기 종의 소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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