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개별적 개체를 군상의 유기성으로 잇는 人의 의미
사람이라는 개별적 개체를 군상의 유기성으로 잇는 人의 의미
  • 임승민 기자
  • 승인 2021.11.19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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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보폭이 모여 인간군상 이루고 우리의 족적과 가까운 삶을 만들다”

사람 인(人)이 걷고, 서로 기대고, 팔다리를 자유로이 쓰는 상대방의 모습에서 유래된 상형문자이듯, 인간은 혼자가 아닌 함께이며 때로는 누군가의 관찰 대상으로 살아왔다는 사회적 관점은 미술로 표현하는 인간 묘사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물과 풍경, 추상과 인물에 두루 자질을 보였으며, 그 중에서도 관찰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람의 인생과 일상을 자유롭고 개성 넘치게 표현하는 작가, 강미자 화가의 성실한 작가주의도 작은 보폭으로 열심히 걸어 온 사람을 향하고 있다. 사물의 실사묘사에도 능하지만 유파에 종속되는 대신 하드에지와 소프트에지가 공존하는 지극히 구상적인 색채추상을 이뤄낸 강 화가는, 지난 7월 두 번째 개인전 <우리가 사는 이야기(人)>에서 그간 여러 기법으로 담아낸 인간의 삶의 형태들을 모아 소개했다.

 
작은 터치와 긴 여운, 우리가 사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때로는 작은 보폭이 모여 긴 행로를 만든다. 지난 30년간 일상의 힐링으로 붓을 잡기 시작해 어느덧 스토리텔링과 작법을 확립하며 한결 물이 오른 주부작가, 강미자 화가의 일상다반사를 상징하는 사람 ‘인(人)’을 주제로 한 두 번째 개인전 <우리가 사는 이야기(人)>이 그렇다. 그의 人은 사람이자, 이를 모은 군중 시리즈이며 사는 이야기다. 7월 5일부터 16일까지 진주의 너우니갤러리에 선보인 사람 주제의 이야기모음들은 그의 작법이 이제 형태 자체로도 사람의 움직임을 의미함과 동시에,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암시하는 세계관 형성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통상적인 범위에 속하는 성실한 주부의 삶과 활동 속에서도, 강 화가는 세상의 24시간과 현대인의 365일을 채집하듯 꼼꼼히 기록해 미술 작업의 소재로 삼아 왔다. 그의 사람이야기의 근간을 이루는 ‘군중’ 시리즈는 가족과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부지런한 일상을 하나하나 캔버스 위에 마스킹 한 작품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세상을 바라볼 때도 관계와 정서교류의 소중함을 나타낸 그는, 마치 인간형상 코드암호처럼 그림자 라인이나 사람형상의 픽토그램으로 인간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혹은 내면과는 다른 인격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일면도 담아내곤 한다. 현대적이되 초현실적이라기에는 구상의 비율을 잘 간직한 인간군상들을 보여주는 <군중>을 비롯해, 한결 무르익어 간 인간 패턴작업은 마치 마스킹이 잘 된 하드에지로 누군가의 삶을 조명하는 반면, 아웃포커스 된 듯 조밀하고도 희미한 소프트에지는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이 인간소외를 염려하는 다감한 성향도 있음을 보여준다.
 
색과 선 위를 뛰어넘은 인간의 이야기를 선명한 붓으로 드로잉하다
강 화가가 자신의 은사인 미술가 성용환 교수로부터 목탄계열의 데생을 꼼꼼하게 배운 이래, 유파에 속하지 않고 독학으로 다져온 미술기법은 그가 전공한 초등교육과 부전공인 미술의 순서와 성향을 따른다. 스스로 끝없는 배움의 자세를 유지했다는 그는 수많은 연습으로 다져온 터치감에 ‘1만 번의 법칙’처럼 숙련된 그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보통 스케치와 데생이 그림에 색을 입히면서 묻혀가는 것과 반대로, 그의 작품들은 마지막에 이 데생이 외곽에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거나 채색된 배경에 화룡정점과 같은 방점을 찍는다. 또한 애니메이터의 원화작업처럼 배경이 주요 피사체를 압도하는 구조를 택한다든지, 완전한 채색 후 붓으로 사람을 드로잉하는 작업은 채움에서 여백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역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강 화가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일상성은 주제를 나타내는 성향에서 그치지 않고, 표현주의 추상과 정물, 캐리커처, 데생, 크로키가 채색과 어우러지며 일반적인 유화와는 다른 영역의 색채표현과 군상추상을 이루어 낸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그는 심상에서 비롯된 색면추상이 아닌 일상에서 비롯된 새로운 색선추상에 도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모던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간의 포즈들을 군집, 패턴화한 작품 외에도, 선과 양감에 충실하며 꽉 찬 색감 속에서 한국적인 여유나 드로잉의 속도감을 간직한 누드화인 <고뇌>, <휴>도 존재하며 이들 또한 그의 사람이야기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청사과 빛 색채로 나타낸 토르소인 <여인>은 드로잉의 선, 그리고 물감으로 채운 배경에 작은 선을 반복적으로 긋거나 스크래칭하여 만든 패턴 속에서 가녀린 선의 형태가 무색할 만큼의 양감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직조물처럼 혹은 꽃비가 내리듯, 색색의 포인트가 들어간 강 화가의 기법에 따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하나의 포즈만으로 수많은 감성과 표정을 충분히 표현해 내고 있다.
 
작가의 일상다반사가 다다른 곳, 일상의 개성 담는 어반드로잉으로
습작으로 끝내지 않고 그림을 꾸준히 완성하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강 화가는, 올해 <코엑스 조형아트 서울2021>에 참여하고, 5월부터는 ‘어반드로잉’ 팀에 합류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벽지보다 유니크한 꽃 한 송이의 잎을 표현하는 패턴은 오키프 이래 많은 작가들이 도전해 왔지만, 그의 형상은 음영에서 줄기로 이어지는 섬세함은 이어가되 감성을 집약해 터치감을 강조하며 작은 부분으로부터 군상을 이룬다. 그러한 점에서 강 화가는 군상을 대작으로만 표현하는 성향에 속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에게는 축소된 소품화도 인간계를 압축한 모형을 관찰하듯, 개별적 부분도 집중해 바라보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목탄과 색연필로 표현하는 드로잉 기법을 붓과 물감으로 대체하는 그의 참신함에는 동양화적인 매력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법의 그림들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마치 고갱의 여인들처럼 앉거나 웅크린 자세로 일상의 권태, 고뇌, 느긋함의 감정이 되고, 반대로 작은 군중들을 수없이 모으면 역동적인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이쯤에서 그의 그림에서 서명이나 낙관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터치포인트에도 주목하자면, 붓으로 찍고 갔다기엔 정교하며, 패턴치고는 규칙성이 없는 색의 점선 같은 이 기법이 ‘물방울 그림’처럼 형식을 갖출 때도 있다. 그래서 비오는 날 모기장 창문 앞에서 바라보듯, 접사와 아웃포커싱이라는 두 가지 공간을 공존케 하는 버드나무 풍경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이 점이 ‘강미자 스타일’의 자유로움이 만드는 성향, 풍경스케치의 캘리그라피라고 불리는 어반드로잉과의 접목에서 강 화가의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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