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의 너른 획을 그은 필법으로, 미수(米壽) 기념 회고록 발간
법고창신의 너른 획을 그은 필법으로, 미수(米壽) 기념 회고록 발간
  • 월간 인터뷰(INTERVIEW)
  • 승인 2021.11.19 1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걸출한 서법 지닌 제주 서예의 거장, 묵향 한 수의 서력과 격조에 대하여”
라석 현민식 서예가/라석서예연구원장
라석 현민식 서예가/라석서예연구원장

1933년 생으로 6세 때 서예에 입문해 오직 붓길만을 걸으며, 시서화 삼절과 5체 특히 행서에 능해 후학들의 임서 기량증진에 기여한 바가 큰 제주서예의 산 증인, 라석 현민식 서예가가 미수(米壽)를 맞이했다. 그의 미수가 사군자의 흰 매화처럼 건재한 미수(眉壽)이길 기원하는 이들의 바람처럼, 라석 서예가는 평생을 통해 전통서체인 한문체와 한글체까지 섭렵하며 정통 필법과 다양한 유파의 서법에서 건재한 기백을 보여 왔다. 중국 서법전문가들의 경탄을 자아 낸 한국의 서예명사이자 5천 여 후학을 양성한 한국 대표서예인, 라석 서예가의 2021년 작 <라석 현민식>은 그가 1984년부터 남긴 걸출한 대표작들을 모았으며, 평생 지필묵을 벗 삼아 진중히 살아 온 서예인이 써내려간 자서전이자 회고록이기도 하다. 

법첩(法帖)의 서도에 정도(正道)를 향하는 서예창작 정신 권유하다

제주 서예인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석 현민식 서예가는 제주도문화상, 베이징올림픽특별상, 재암문화상, 한국미술대전 국제미술문화상 수상을 비롯해, 2010년 중국 산둥성 한중미술교류전에서 <희지서화보>등 중국 서법전문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행서라는 영예까지 얻은 한국 대표서예인 중 한 사람이다. 국내 최초로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을 3차례에 걸쳐 임서본으로 출간하고, <라석한글서예>, <서예한자 동시학습교본>, <라석 현민식 해서천자문>으로 후학들의 임서에도 큰 획을 그은 그가 88세 미수를 맞이해 후학들에게 선물하는 서법회고록, <라석 현민식>에는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근본을 다지며 중봉과 운필의 기틀을 잡고자 혹독한 수련으로 다져낸 서예 중진의 인생이 담겨 있다. 탁본수련의 번거로움은 줄이고 법첩의 서도를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한 서력의 묵향으로 후학들의 창작을 독려한 라석 서예가는, 절주감이 호방한 운필을 지녔다. 그리고 사군자와 화조화, 산수가 어우러진 절경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고 절도 있는 수묵 문인화의 경지로도 유명하다. 곡선의 획만큼이나 직선의 굵고 묵직한 먹의 농담으로 음영과 원근은 물론, 시서화 산수에 송(松)과 천(川), 깎아지른 벽(壁)의 웅장한 조화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화면을 압도하는 중후함이 특색인 그는 대한문학 수필부문 신인상으로 늦은 등단을 하여 수필집 <청일원의 달빛>, <망상 속에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고금의 대가들을 발굴하고 널리 알린 서예사학 문인이자 5체의 운필을 면밀히 분석해 점과 획의 조화와 운치를 중시한 필법 세부 묘사를 재현한 서도가요, 정도를 걸어 온 격조 높은 서예문인인 그는 많은 후학들을 양성해 왔다. 라석 서예가로부터 배운 후임 서예인들이 1984년 창립한 ‘상묵회’의 의미도 깊다. 이들이 타 지역과의 교류전을 주선하고 제주서예대전을 이끌어 상대적으로 척박하고 고립된 제주 서예환경에 숨통을 열어 준 것도, 붓을 잡는 수(手)제자는 물론 명맥을 이을 손(孫)마저도 귀한 한국 서예 분야에서 인상 깊은 사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주신 뜻, 공(空)히 붓 들고 묵으로 수련해 묘경에 도달하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삶을 고도의 수련으로 채워, “하늘의 뜻 앞에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묵으로 가득 채우니 하늘이 화답하여 묘경에 이른 듯하다”고 전한 라석 서예가는 이 깨달음에 의미를 더하고자 <2020 제주문화예술재단 원로예술인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미수 기념 서화집을 발간했다고 덧붙인다. 총 457페이지에 달하는 <라석 현민식>에는 부친으로부터 서예의 정신을 알게 된 유년기 이후, 내륙으로 진출하고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제주 서예인들을 키우게 된 청장년기의 여정과 서도 앞에 겸허히 노력한 개인의 삶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이 책에는 서예라는 예술의 흔적도 완연하지만, 제주도서예문인화총연합회 초대회장, 대한민국서예대전 활동은 물론 한국서예협회 제주도지회를 창립하고 한국서예협회, 전국서화예술인협회 등에서 활약한 서예행정가의 삶도 담겨 있다. 그리고 한 수의 시구와 운필 대신, 수필문학의 형식을 빌려 소회한 라석 서예가의 내면을 읽을 수 있으며, 격려와 함께 예술혼을 일깨워 준 지인들의 축전과 보도자료도 수록되어 “서예가 곧 내 삶의 의미이자 행복”이라는 라석 서예가의 잔잔한 신념의 근원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국내외로 모두 인정받은 행서대가의 칭호를 더욱 굳건히 해준, 휴정대사의 시 <과현산화촌(過現山花村)>으로 2015년 제 22회 한국미술국제공모대전 최고상(국회의장상)을 수상한 것도 그의 인생영예 중 하나지만, 이듬해 사회에 보답하고자 제주서귀포학생문화원을 통해 동시학습교본(同時學習敎本) 360권을 서귀포시 관내 학교들에 배부한 미담도 그의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일화라고 한다. 또한 하늘과 강을 여백으로 남기는 문인화 기법을 따르면서, 세부 묘사를 굵직한 운필의 획과 농담으로 채우는 압도적인 중후함을 선사한 그의 시서화에는 글자 획이 마치 그림의 일부처럼 자유로이 뛰어노는 여유도 보인다. 이렇게 천명이자 업이요, 삶의 보람인 그의 점획선조가 이뤄낸 인생의 완급 조절과 충직한 농묵은 후학과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화두를 남긴다. 한국 서예사에 우직하게 중봉 용필해 온 이 서예인의 서예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서예란 그저 장엄한 흔상과 규율의 예술인 것만은 아닌 셈이다. 무릇 서법의 미학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형상을 연상하며 환원하는 감상을 거쳐 나온다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라석 서예가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접함으로써 누구나 서예라는 예술이 삶과 어우러지는 미적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