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아우르는 생성과 관조의 시선
세계를 아우르는 생성과 관조의 시선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10.12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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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백현옥
조각가 백현옥

 

<소개글 서길헌(조형예술학박사)>

조각가 백현옥은 조각 작업을 통해 각자 별개로 존재하는 여러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아 하나의 더 높은 의미로 풀어낸다. 이러한 작업은 그가 살아오면서 보고 겪어온 여러 사물과 질료를 꿰뚫어보고 얻어낸 자연스러운 관조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의 작업은 꾸준히 변모해 오는 가운데서도 그 기조를 이루는 밑바탕에는 변함이 없으며 구상과 추상이라는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우주의 생성원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서로 다른 두 극은 서로 통한다. 이 통함은 상반되는 두 개의 형태적 요소가 서로 어울림으로써 발생하는 상생의 세계이다. 이는 형태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의미론적으로도 그러하다. 즉, 삶과 죽음, 음과 양, 빛과 그늘, 수평과 수직, 직선과 곡선, 상승과 하강, 지상과 천상 등의 상호적으로 대극에 있는 요소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빚어내는 공존의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려 하나의 의미로 수렴된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 ‘기우제’에서, 원반모양의 솥뚜껑들을 뒤집어 수평이 되게 하여 손잡이를 중심으로 탑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려 축을 이루고 있는 손잡이는 수직선으로 전환되어 상승의 의미로 변용된다. 원반이 가진 수평적 요소에 담긴 지상의 염원은 하늘의 비를 바라는 의지가 되어 마디마디 이어진 손잡이가 이루는 수직 축을 타고 천상의 영역으로 솟아오른다. 또한, 보리를 소재로 한 ‘보릿고개’나 ‘풍경’ 등의 연작에서도 보리 이삭의 수직적 솟아남은 오브제로 응용한 숟가락이 형성하는 둥글게 웅크린 낱알들이 가진 원형의 잠재적 생성력으로부터 싹터 오름으로써 직선과 원형이 상보적으로 의미를 주고받는 순환구조를 이룬다. 소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태극의 형태로 대립하는 작품 ‘소싸움’은 직선적 힘의 상대적 대립이 곡선적 화합의 만남에 이르는 장면을 극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으로서 곡선의 순환적이며 생성적인 힘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대적 요소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의미의 변용은 길항적 관계의 조형단위가 서로 소통하며 파생시키는 곡선적 순환을 통해 원의 고리를 형성한다. 이 순환의 고리는 그가 젊은 시절 무분별한 외국작품의 피상적 답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성으로 추상을 버리고 천착한 구상에서 즐겨 다루어 온 우리 삶 속의 친근한 소재들이었던, 순진무구한 아이들, 모성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여인들, 너그러운 얼굴의 노인이나 둥지의 형태로 한데 모여 있는 가족 등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에 깃들어 있는 따뜻한 정과 원만한 눈길을 품고 있는 질박하고 부드러운 인체를 통한 곡선의 흐름으로 펼쳐진다.


많은 아픔을 품고 있는 우리의 지난 시절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고의 시간 속에 삭혀내며 근면하고 꿋꿋하게 살아왔다. 백현옥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이 땅에서의 삶이라는 수평적 요소는 기다림으로 웅크린 고요한 곡선적 세계 안에서 조용히 싹트는 내적 의지를 통해 수직으로 이어져 저 높은 곳으로 상승한다. 이렇게 수평성에 내재된 고요, 평화, 안정 등의 요소는 끈끈하게 지속되는 삶의 소망을 딛고 낮고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높은 곳을 향한 수직의 지향성으로 변용되어 지상에서 천상으로 상승하여 넉넉한 시간과 공간의 이상향인 영원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작업의 바탕에 집약되어 있는 곡선의 순환적 시간을 잉태한 기본 조형 요소로서의 둥근 형태는 씨앗의 외형을 한 생명형태적 형상으로서, 그 안에는 미래의 싹으로 발아하게 될 영원의 원형이 내재한다. 이러한 요소는 그가 초기에 시도했던 추상 작업에서 나타났던 선과 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구상작업으로 이어져 인체가 이루는 원만한 곡선이나 원을 통해 안에 단단히 깃들어 있는 우리민족의 옹골찬 끈기를 은근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후기 작업에서 씨앗처럼 단순화된 형태로 응축되어 추상화된 인체의 기본 형태로 요약된다. 특히,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씨앗의 형태는 인체에 대한 그의 조형적 통찰과 거기에 깃든 자연의 조형성을 응용한 작업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씨앗의 형상인 계란의 형태를 거꾸로 하여 남성의 몸통으로 삼고, 바로 세워 여성의 몸체로 삼아 단순화시킨 구상은 곧 추상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작업의 출발이었던 세계의 기본적 생성 단위로서의 조형성을 함축한다. 씨앗으로 형상화된 남녀와 가족은 세계의 원천을 이루는 기본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작품들은 더욱 우주적 진리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이러한 조형적 단순화를 통해 그는 구상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추상적 표현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의 작업은 환경조각적 측면에서도 공간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이는 염소들을 끌고 가는 농부를 빚어낸 작품 ‘장날’과 같이 주어진 공간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시선과 자세를 통해 주변 공간을 끌어들이는 인물상에서 돋보이기도 하지만, 각별히 기념비적 작품에서 확연하게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위령탑에서 보이는 너른 공간 속에서 군상으로 형상화된 지상의 혼령을 이끌어 올리는 생동감 넘치는 직선이 이루는 수직의 비상 이미지가 그것이다. ‘비(飛)’는 그가 초기부터 관심을 가졌던 비상 이미지의 원천이다. 이는 봉덕사 종에서 얻은 모티브로서 한국 고래의 사찰에서 조성되었던 비천상의 이미지에 깃든 자유로운 비상을 재소환한다. 여기에는 그의 표현을 빌면 잠시 쉬면서 도약을 꿈꾸는 공간인 여울목과 같은 수평적 휴식 환경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를 타고 오르는 ‘저항의지’로서의 상승의 염원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환경에는 “거품을 일으키며 하강하는 폭포에서 조각가는 잉어의 도약처럼 강한 저항을 흡수한다”고 그가 작가노트에 적은 것처럼, 어릴 때부터 특정 공간에 대한 응시를 통해 그의 내면에 응축되어 있는 세계를 향한 저항과 초월의지가 발현되고 있다. 이처럼 그가 공간 속에 구성한 비상의 이미지는 수직 공간을 하강하는 힘 속에 내재된 저항의 힘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표상은 작품이 특정 환경에 적절하게 주어짐으로써 발생하는 주변 공간과의 조응을 통해 더욱 큰 공명을 얻는다.


더욱이, 백현옥의 조형작업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씨앗과 발아의 이미지는 아크릴 저부조라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을 통해 ‘빛’의 이미지로도 변용된다. 2,000년대 초기부터 등장한 그의 아크릴 저부조는 아크릴 판의 뒷면에 음각으로 새긴 역부조이다.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빛이다. 투명한 아크릴판의 뒷면을 조각도로 파내어 생긴 틈이 이루는 선을 따라 발생하는 빛의 작용에 의해 다시 파생되는 제 3의 빛은 서로 어울려 3차원 또는 4차원의 환영을 제공한다. 이는 실재하는 대상의 패어 있는 틈새 공간에 빛이 작용하여 그렇게 보여지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부조는 평면과 입체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태생적으로 평면적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아크릴 판을 파각하여 조성한 빈 공간은 빛의 확산에 의해 평면과 입체의 한계를 벗어나 투시적 공간감을 획득한다. 이 공간은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지속적인 빛의 떨림과 상호 간섭현상이 불러 일으키는 입체적이고 잠재적인 시간성을 투영한다.


이 확산하는 빛은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상승과 하강이라는 주제를 구현하는 또다른 매개가 된다. 부조에서 공간은 기본적으로 회화의 원근법과 같이 평면에 나타나는 환영적 공간이다. 돋을새김 주변의 평면공간은 대기처럼 펼쳐진 허상의 입체 공간이다. 이에 반하여, 그가 시도한 아크릴 판 위에서의 공간은 소재의 투명성으로 인해 실재공간과 혼재하는 허상과 실상의 입체공간이 된다. 이 공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투명한 재료를 투과하며 상을 만들어내는 빛이다. 빛은 조각도로 파낸 선이나 면을 공간 속에 띄워 부유하게 함으로써 나머지 공간을 통합하고 그 자체의 존재감으로 실재공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렇게 그의 작업에서 초기시절 ‘비(飛)’시리즈를 통해 공간을 비상하던 이미지는 천상에서 인간의 눈높이로 내려와 공간에 떠있는 존재인 빛으로 형상화된다. 빛은 공간을 제한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테두리가 없이 확산하는 양상을 지닌다. 그럼으로써 ‘기(氣)’처럼 생성하고 흐르는 물질로서 대상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주변부로 확산시킨다. 태양처럼 높은 곳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빛은 지상의 수평 공간에 이르러 수평으로 확산되어 공간을 물들인다. 그것은 ‘무어(안개고기)’에서처럼 전체의 윤곽이 빛의 무리로 파악되는 대상으로서 빛의 발현에 의해 나타난다. 여기서 빛은 영혼의 본질로 되돌아가 공간을 충만하게 채우는데 이 빛은 더러 기념비적인 위령탑에서 사자들의 영혼을 감싸고 드높이 솟은 수직 기둥을 따라 천상계로 상승하게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는 초기에 과감하게 추상을 탈피하여 구상조각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이후에 그가 추구해온 구상작품에는 그가 한때 천착했던 추상적 조형원리가 인체를 통해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다. 그가 일생 동안 펼쳐온 조각작업을 제재를 중심으로 정리해보면, 우선 젊은 시절의 ‘비(飛)’, ‘신천지’, ‘빛’, ‘고요의 바다’ 등의 이상 세계를 올려다보는 상승적 시선에서, ‘기다림’, ‘기원’ 등의 구체적인 삶을 겪으며 점차 땅으로 내려와 꿈꾸던 이상 세계를 그리워하거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보릿고개’, ‘장날’ 등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지상의 삶을 충실히 돌아보며 그를 위해 인고하는 삶의 시간을 거쳐, ‘가족’을 통해 그것에서 얻은 마땅한 결실을 함께 영위하는 단계를 지나, 이윽고 ‘풍경’이나 ‘빛’을 통해 이 모든 삶을 관조하는 관용의 세계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족, 보리, 올빼미, 부엉이, 고목, 소떼, 우물, 아이 업은 여인 등의 소재들이 가진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정감의 이미지를 통해 효과적인 정서적 공감대를 얻고 있으며, 주제를 담는 재제 역시 빛, 기다림, 현(峴), 가족, 향, 기원, 유동(놀이하는 아이들), 장날, 보릿고개, 무어(안개고기), 고요의 바다와 같이 우리 민족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은근과 끈기의 이미지를 통해 그가 천착해온 주제의식은 더욱 효과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백현옥의 후반기 작업의 특징으로는 재료의 성격을 거의 그대로 살려 응용한 작품이 많다. 그 중에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만든 소를 탄 사람이 소떼를 이끌고 산길을 가는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풍경에는 소를 탄 인물과 소떼의 행렬이 주름결의 곡선이 새겨진 나무 둥치가 길게 가로 누워 표현된 산과의 만남을 통한 자연과의 평화로운 합일이 느껴진다. 또한 그는, 베어낸 오동나무 둥치 속에서 나무가 자라온 기나긴 시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자연 형상들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연이 형성한 무수한 비정형의 무늬를 드러내고 있는 잘려진 오동나무 고목은 그 가운데에 앉아있는 올빼미와의 접점을 통해 오랜 전설의 한 장면 같은 시간 구조를 형성한다. 그러한 것들 속에서 자연의 내면을 느끼듯이 그에게는 재료의 물성이 지니고 있는 표정들이 늘 가깝게 다가온다. 따라서 그에게 자연은 발견하는 것이며, 자연 속에 있는 물상의 다양한 표정인 추상 역시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 속의 추상을 관조하는 시선은 아마도 오랜 시간을 통해 세심하게 자연을 들여다보고 살아온 그의 삶의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가까이 마주 보이는 산의 능선들은 전형적인 한국의 산들이 가지고 있는 넉넉하고 완만한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을 보면 가는 시간이 보이고 변화가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이 변화는 계절 따라 달라지는 산색만이 아니라, 능선을 흐르는 곡선의 리듬까지도 포함한다. 곡선은 잠재적인 변화를 낳는 부드러우면서도 완강한 생성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선들은 내재하는 곡률을 통해 미지의 여정을 거쳐서 자신이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온다. 2014년 세종 갤러리에서 선보인, 나무를 자르고 속을 파내어 긴 타원형태로 물여울을 형상화한 작품은 자연스러운 생성과 변천의 순리로부터 그가 얻어낸 안식처이자 영원의 둥지처럼 보인다. 그것은 동양적인 사유의 전통에서 나오는 순환적 우주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을 마주하는 탈속의 시선 앞에 자연스럽게 펼쳐진 부드러운 생성과 관조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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