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일궈 낸 1,000억 매출 기업
맨손으로 일궈 낸 1,000억 매출 기업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9.16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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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선산업 정군영 회장
두선산업 정군영 회장

성공이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성공을 맛보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힘겨운 희생이 필요하다. 1년 365일 중 360일 이상을 일에 몰두하며 산다는 것은 그만큼 내 생활, 심지어 내 가정까지도 던지고 일에 매달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게 된 출발점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그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나와 가족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기업인들이 갖고 있는 고충이기도 하다. 맨손으로 출발해 연 매출 1,000억 원대의 기업을 일궈낸 두선산업의 정군영 회장 또한, 이러한 성공과 그 이면의 희생을 모두 겪은 인물이다. ‘제2의 정주영’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며 애달픈 그리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젊음의 패기로 과감한 도전, 아내와 함께 이룬 성공

「민들레 꽃씨 낙하산 되어 내리던, 내가 당신 이름 붙여준 길…… 당신과 다시 걸을 수 없는 길」 - 시집 「왜 몰랐을까」 中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만남의 즐거움만큼이나 헤어짐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에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이별 중에서도 사별은 대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움 등이 더욱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두선산업 정군영 회장에게 있어 3년 전 작고한 아내 故 명기정 씨는 평생의 파트너이자 친구이며, 영혼의 단짝이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불과 14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정군영 회장은 푸릇푸릇한 20대 청년 시절에 같은 일을 하던 아내를 만나 사랑을 꽃 피웠고, 이후 4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두 사람은 많은 것을 함께 해왔다. 남들만큼의 배움이나 인맥도,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기에 모든 것을 맨땅에서 시작해야만 했고, 그래서 더욱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했기에 서로의 존재가 애틋하고 의지가 되었다.

‘두선산업’의 출발점도 아내가 가정에서 하던 부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내가 주문 받은 물량을 밤새 작업해 놓으면 정 회장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배달하고, 다시 퇴근할 때 작업할 물량을 가져오는 것을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던 1989년 3월, 다니던 회사에서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은 정 회장은 아내의 이름으로 ‘두선산업’을 설립하고, 포장박스 제조업체로서의 본격적인 사업에 진출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두 사람 모두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밤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했고, 2000년 법인 전환, 2006년에는 안산 공장을 매입하며 사업을 성장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선산업이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은 2013년, 베트남 해외법인을 설립하면서부터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정 회장은 무작정 베트남으로 달려가 공장부지 5천 평을 임대했고, 삼성베트남 현지법인을 수없이 찾아간 끝에 납품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제품의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이 삼성 수뇌부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였다. 그렇게 삼성베트남 법인의 1차 납품업체로 선정된 두선산업은 이를 토대로 꾸준한 성장세를 일궈왔고, 현재는 10만여 평에 달하는 베트남 공장에 1천여 명의 현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중견업체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세상 곳곳에 사랑과 희망으로 전해지길

두선산업이 일궈낸 베트남에서의 성공은 이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그 여파를 미쳤다. 이들은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로에 위치한 제1공장과 경기도 안산의 제2공장, 그리고 베트남 공장을 3개축으로 해서 매출 확대와 기술 개발을 이어오고 있으며, 제1공장 부지에 두선코스메틱을 설립, 화장품 산업으로의 사업영역 확대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제2공장에서는 토탈 패키징 시스템을 도입해 고품질 제품의 공급을 위한 체계를 구축했고, 베트남 공장에 우수한 국내 원자재 공급 및 기술진 파견을 이어가며 한국과 베트남 간의 우호 관계 확립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5년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R&D 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 국내 대표적인 건강식품사에도 박스를 납품하고 있다. 특수포장과 관련된 10개의 특허를 보유하며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부하고 있는 두선산업은 지난 2018년에는 ‘대한민국 중소기업대회’에서 중소기업중앙회장 표창을 수상하며 그 성장세와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픔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왔다. 아내가 골수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해오던 중 세상을 떠난 것이다. 요양을 위해 경기도 여주에 시골집을 마련하고 항암에 좋다는 나무도 정원 가득 심었지만, 이곳에서 지낸 지 4개월여 만에 아내는 떠났고 그는 홀로 남았다. 그토록 수많은 어려움과 고생을 둘이 함께 버텨내왔고, 훌륭히 성장한 자녀들에게 사업을 물려준 뒤 여생을 즐길 일만 남았었지만, 그 모든 것이 봄날의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 회장은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아내를 보내고 시간이 흘렀지만, 제 삶의 모든 것을 차지한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나 큽니다. 가슴 절절히 보고 싶음에 밤을 꼬박 새우기를 밥 먹듯 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남겨진 아내의 모습,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이제야 아내가 내 삶의 전부였다는 걸 깨닫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틈틈이 일기처럼, 편지처럼 적어왔던 글들을 모아 정 회장은 최근 시집 「왜 몰랐을까」를 펴냈다. 시집 안에는 정군영 회장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을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애끓는 사랑의 감정이 가득하다.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정군영 회장은 아내의 이름으로 ‘명기정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학재단의 설립 취지다. 또한, 생전 아이를 좋아하고, 주변의 어려운 아이를 돕는 데에 아낌이 없던 아내의 유지를 잇기 위함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별과 아픔이 있다. 그리고 그 이별과 아픔의 숫자만큼 사랑과 희망 또한 존재한다. 정군영 회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내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아마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랑의 감정으로 시를 써 내려가고, 세상에 희망을 전달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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