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집된 얼굴을 모은 에스키스, 리드미컬한 조화로 탄탄해진 관계성
군집된 얼굴을 모은 에스키스, 리드미컬한 조화로 탄탄해진 관계성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9.16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합주 테마와 실리콘 드로잉 분야를 개척하다”
신흥우 작가
신흥우 작가

과거 아티스트들의 전유물이었던 레진 에폭시 공예와 휴대전화 케이스 위에 시도하는 실리콘 콘셉트아트 등이 취미분야로 성큼 진입하면서,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도색 방식은 정체성이 뚜렷하던 아크릴·유화 분야에도 생기를 불어 넣는 추세다. 그러한 관점에서,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던 시절부터 실리콘 자체로 드로잉-에스키스(esquisse)를 시도해 온 화가 신흥우 작가의 영역은 매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작가는 저부조나 버튼 디자인처럼 가벼운 요철이 돋보이는 그만의 즉흥적인 드로잉으로 만남과 소통을 원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 음악과 합주라는 테마로 소화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경쾌하고 화려한 색채로 재해석하고 있다.

관습에 도전하는 누벨바그, 마스크 없던 벨 에포크적인 추억의 북적거림

유행을 넘으려면, 그 유행의 안티테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재창조의 전제가 몰락이기에 죽어버린 신을 대신한 초월적 정념의 위버멘쉬를 제안한 니체에게 동의하고, 기존의 도덕과 계율을 벗어나 즉흥성이 가미된 새로운 예술 테마를 발견해 낸 신흥우 작가의 그림들은 그가 대학 논문의 주제로 택한 즉흥적인 예술의 근원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요즘은 요철과 음영을 최소화 하며 미를 강조한 팝아트초상이 유행인데, 미학적인 면에서 이와는 정 반대로 접근하면서 개인이 아닌 군집의 초상을 지향하는 신 작가의 얼굴군집 테마들은 그의 파리 유학시절부터 드로잉의 속도감이 만드는 그로테스크적인 과장법 대신 유쾌한 북적거림을 택하고 있다. 

음향에 빗댄 사실적이면서도 생략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누벨바그 영화처럼, 신 작가는 붓으로 단련된 초상화 스케치 기법 대신 주사기 형태의 드로잉 도구에 실리콘을 넣어 즉흥적으로 대상의 특징을 표현하는 에스키스를 시도한다. 스케치처럼 간결하고, 드로잉처럼 유머러스하며, 캐리커처처럼 대상 하나하나가 다르게 표현되는 각각의 얼굴들은 조화와 리듬감으로써 그가 예술세계에서 정립한 즉흥성을 입증한다. 또한 본래는 다소 과격하고 직설적이던 화풍을 군집과 클래시컬한 오케스트레이션의 은유로 진입시키면서, 신 작가는 파리8대학 시절 교수진으로부터 받던 호평을 귀국 후 SNS의 모던아트 팬들의 높은 지지로 이어가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조화와 리듬감 속에서 각자 악기를 들고, 다양한 표정들의 인류가 마스크가 없던 시절처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며 어우러지던 21세기를 마치 ‘벨 에포크’의 관점으로 화려하고 유머러스하게 추억한다. 

팝아트의 기원이 된 포스트모더니즘 통해 복제의 정형성 극복한 얼굴들

클래식을 좋아하며 객석에서 바라본 오케스트레이션의 배치가 인간군상의 조화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그림의 융합성을 강조할 기반으로 삼은 신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서 전해지는 메시지 또한 ‘활기 있게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에너지’라고 한다. 군중들의 얼굴묘사를 하면서 10여 가지의 시리즈로 확장되어 간 그의 작품들은, 다양성을 체득한 12년의 파리 유학과 1년간의 뉴욕 체류기간 동안 더욱 긍정적인 메시지를 띠게 된다. 그가 2003년 들어 이렇게 정립된 가치관을 갖고 한국에 귀국했을 때만 해도, 미술시장은 캔버스에 사람을 담는 대신 풍경과 꽃으로 어우러진 장면들을 선호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파격적이고 담대한 그의 시도는, 외로운 작가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웰빙의 유행을 타며 개방적으로 변해 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신 작가는 완벽을 추구하는 이성의 신이자 논리의 신인 아폴론보다 예술의 신이자 유쾌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본다.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관점은 철저히 계산된 스케치와 채색보다는 새로우면서도 기존의 관점을 재해석하는 팝아트의 즉흥성으로 화합과 증폭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 거리 초상화가들의 도시인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전 세계에서 온 초상화가들 속에 섞여 붓과 펜을 잡은 그는 인간군상의 걸음걸이에 고정되었던 시선을 위로 올려, 종종 그들의 자유로운 표정과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사실, 달라진 것은 이루지 못한 화가의 꿈을 대신해 아들에게 크레파스와 물감을 아낌없이 쥐어 준 아버지의 영향으로 도화지에 가득 채웠던 얼굴이 수많은 아크릴 군상으로 바뀐 것 뿐, 그는 모든 미술인생에서 ‘얼굴’에 대한 초지일관적인 취향을 선명한 색채로 유지해 온 것과 마찬가지다. 신 작가가 기법의 독창성과 우연성이 얼굴표현의 복제된 정형성을 벗어나는 하나의 수단임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작업으로부터 얻은 성과이기도 하다. 

대중성과 오리지널리티 겸비, 활력과 에너지로 예술가들의 예술가 되다

“복잡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곁에서 활기를 주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LA아트쇼에서 7천만 원에 낙찰된 <도시의 축제> 150호를 비롯해, 케이옥션에도 <콘서트>, <도시의 축제> 50호 등 다양한 작품이 연이어 낙찰되며 대중성과 독창성 모두를 인정받는 신 작가는 ‘예술가들의 예술가’라고도 불린다.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교수를 비롯해 연예인, 예술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창작에 영감을 주는 그의 작품들은 이미 유명한 장소와 사옥마다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새누리당 홍보팀의 제안으로 대통령후보 지명 및 대통령 취임식 장면의 작품 제작에 응한 일화로 유명한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메시지가 정파와 연령고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해석되고 오케스트라처럼 함께 하나가 되는 자신의 그림 내용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이러한 기회를 환영한다고 덧붙인다. 

한편, 신 작가는 자유분방한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이 단조로우면서도 기괴하거나 편향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많은 정성을 들였지만, 그러한 노력을 뒷받침하는 마인드에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베르 까뮈가 <시시포스 신화>에서 언급했듯, 고통스런 형벌도 즐긴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더 이상 형벌이 아닌 것처럼 불가능 앞에서 그것을 깰 수 있다는 믿음은 새로운 테크닉을 연구할 때 높이 도약할 발판이 되어 준다고 덧붙인다. 또한 2차 백신 접종을 준비한다는 그는, 프랑스로 날아가 지난 1년 반 동안 비워둔 파리 작업실을 정리하고 잠시 머물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 에너지를 채워 올 것이라고 한다. 그의 세계관이 태동되었기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도시, 파리에서 돌아오면 내년 4월경에는 삼청동 이음 더 플레이스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예정되어 있다. 그는 지금도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많은 전시 제안이 있기에, 파리의 사람들이 보여준 공감의 톨레랑스에서 받아온 깊은 인상을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 준 팬들에게 유쾌하고 활력적인 언어와 시각으로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