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의 풍류와 필법을 현대화한 글맛의 예술, ‘운정체’의 창시자
예인의 풍류와 필법을 현대화한 글맛의 예술, ‘운정체’의 창시자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9.16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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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인화에서 서화동체와 점획선조의 공간개념을 확보한 시서화의 미학”
서예가·문인화가 운정 박등용 선생/ 운정서화실 원장
서예가·문인화가 운정 박등용 선생/ 운정서화실 원장

북송 남종문인화의 거장들과 서법가 왕승건이 동시에 강조한 필획과 서법의 기본기는 형체를 통해 가치관과 정신을 표현하는 데서 나온다. 따라서 사물을 닮게 그린 글자들이 표의문자로 진화하고, 각 문화권의 표음문자가 고안되는 동안 필자의 태도가 깃든 점획선조의 형신(形神), 그리고 입체적인 절주감은 서체의 유행이 바뀐다 한들 그 고매한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운정 박등용 선생은 화가인 동시에 그간 한자 서체가 아닌 한글 서체로는 넘을 수 없었던, 굳건한 벽과도 같던 이 점획선조의 혼연일체 된 역량을 한글화, 현지화하는데 성공한 ‘글씨의 연주자’이다. 서양의 캘리그래피와 서법 점획선조의 장점만을 취득해 장단의 미학을 갖춰 개발한 서체, 균형감과 예술성을 겸비하며 춤추는 이 서체를 일컬어 세상은 ‘운정체’라 부른다. 

문인화의 기술과 고매한 정신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한 필법의 작곡가

지하철 1호선과 서울시청 현황판 필체의 주인공, 운정 박등용 선생은 문인화를 이루는 시서화 어느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예술적인 영향력을 우리 사회에 펼치는 예술가이다. 그 중에서도 전문 도안사(캘리그래퍼)는 음악에 비유하자면 작곡과 편곡, 연주자 중 특화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운정 선생의 경우는 시서화는 물론 ‘운정체’를 창시한 토탈 패키지임을 입증하는 한국 문인화분야의 상징과도 같다. 흐드러지고 유연하면서도 강단을 갖춘 사군자의 자태를 수묵담채화로 묘사하고, 고운 여백에 필획의 정기를 담아 한 줄의 서예로 이뤄내는 운정 선생의 문인화는 색감 못지않게 필획으로도 호평이 자자하다. 

40여 년에 걸쳐 묵향을 맡으며 점과 획의 기운을 뻗고 거두는 필심을 기른 운정 선생은, 화폭에 조목(鳥木)과 초충(草蟲)의 생기발랄한 움직임을 묘사함에 농묵의 명도보다 필획의 정기를 적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따라서 눈 뜬 생물과 털 돋은 생물이 그의 붓을 거치면, 마치 숲 속을 노니는 듯 사실적으로 묘사되며 기질과 본성까지 그 필획의 정기 덕분에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동물의 움직임일지라도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우수상을 수상한 <독수리>가 나타내는 것이 담대한 관점의 기백과 정기라면, 이와 반대로 작고 여린 생명의 소중함을 묘사한 <다람쥐>는 세필 묘사가 지닌 섬세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수묵담채화에 운정 선생은 운정체로 한 줄 격언과 문장을 한 수 넣어, 궁을 떠난 사대부들이 인생을 관조하며 읊던 시 한 수가 21세기 우리 현실의 망중한(忙中閑)에 충분히 어울릴 수 있음을 한 장의 그림으로 입증하고 있다.

한자의 절주감을 빌려 한 줄기 동태적인 서체인 우리말의 미학을 그리다

선과 색의 탁월한 작곡자 겸 연주자, 운정 선생은 일찍이 자신의 운필을 통해 한글의 운율감과 절주감을 한자 서체 못지않게 표현하고자 묵의 농담 조절과 필획 연구, 필체 선정에 이르기까지 하지 않은 노력이 없었다고 한다. 해서와 행서, 초서를 모델링하여 오로지 인간의 손맛으로 번안하는 일은 단순한 연습을 넘어 성정의 수양이었다.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탄생한 운정체는 서체라기보다는 서양의 캘리그래피가 구현하고자 하는 글자의 화풍이자, 한자의 절주감을 빌려 서체의 영혼까지 구현하는 ‘한글 맞춤형’ 서체로 태동되었다. 모태인 한자를 구현하는데도 적당하지만, 운정체가 한글에서 특히 두각을 보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한편, 성남 운정서화실에서 매난국죽과 초충화를 가르치며, 서예를 연마시켜 문인화의 정신을 체득하도록 하는 운정 선생은 반복적인 연습에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자에도 사람처럼 얼굴 표정과 목소리가 있어 필자의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문인화의 기원도 군주를 흠애하는 마음으로 대리만족하거나, 사대부답지 않게 앙앙불락(怏怏不樂)한 성정과 흐트러진 심성을 자연과 같은 마음으로 되돌릴 목적으로 그렸던 것이기에, 운정 선생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시서화로 마음을 정돈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입문은 쉬우나 정도를 걷기가 어려운 문인화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현대인들이 운정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정갈함의 가치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그의 운정체는 여느 서체보다 봉황의 꼬리 깃처럼 여백 사이를 날아오르는 가로 폭과 중봉이 두툼해 안정감을 주는 편이다. 또한 굴곡의 장단과 강약은 궁서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폭의 시각화를 폭넓게 이루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운정체의 미덕으로 상냥하고 다정다감하며 얼핏 한자 현판의 글씨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풍류와 자유로움을 지닌 점을 꼽는다. 이처럼 대한민국 시서화의 공인된 명필이자 일필휘지를 현대적으로 변용시켜 글씨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한 운정 선생의 문인화는, 문인들의 예술품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독화(讀畵)’의 이상향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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