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의 아포리즘으로 물들인 수묵 빛깔 나의 고향 풍경화
노스탤지어의 아포리즘으로 물들인 수묵 빛깔 나의 고향 풍경화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9.16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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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감성을 관조하고 해석하며 화가는 그림 속 풍경의 일부가 된다”
금동효 작가
금동효 작가

진경산수의 재현에 맞춰진 한국화의 포커스를 향토예술로 전환시킨 금동효 작가는 추억, 정겨움, 계절감, 분위기를 모토로 실제 풍경의 일부가 된 듯 흡인력 있는 그림을 그린다. ‘내 고향 영양 풍경전’ 연작 전시로 수하계곡의 여명, 황초골과 선바위, 영양 수비의 탁 트인 사계절을 소개해 온 금 작가는 그림으로 산나물과 고추 같은 특산물을 소개하고 도시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고택의 온화한 자태를 석채로 나타내 왔다. 농묵의 음영으로 한지에 밑그림을 꼼꼼히 그리고, 석채를 갈아 아교를 섞어 까끌까끌한 질감이 된 석채물감으로 지난 세월에 제법 누릇해진 기와와 싱싱하게 잘 익은 농산물의 질감을 표현한 그는, 고향과 자연의 풍광을 파노라마 대작으로 표현하며 영양 수비의 자연스런 일상을 사람들의 눈앞에 다감하게 펼쳐 보여준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풍경, 고향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신비함에, 내 자신을 용해시키고 하나가 되려고 노력할 때 자연의 참모습을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자연을 사랑하고 고향의 산천 산하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으며 자라난 화가 금동효 작가는, 유년기의 추억을 기억하면서 배경인 자연의 모습까지도 마음 속 책갈피에 소중히 개켜 넣어 창작의 소중한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금 작가가 필리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대구문화예술회관전에서 선보인 고향 영양의 사계절 풍경들,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택과 생활상들은 수묵의 은유에 담채의 생동감을 빌려 독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금 작가는 초가와 기와, 돌담의 추억 속에 늠름한 일월산으로 상징되는 동적이고 당당한 자연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그가 작업할 때 영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자연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모든 계절 중 가장 즐겁다는 봄에서 시작해, 각 계절의 느낌을 한 번에 옮기는 것은 한국화의 기법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며 솟구치는 마음을 화선지에 옮길 때 생각했던 대로 재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사계에서 느끼는 감수성을 담아, 자아를 잊을 만큼 풍경과 하나 되어 현장의 공기와 분위기를 느낄 때가 되어서야 완성되는 그의 풍경화들은 상당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한다고 한다. 금 작가는 이럴 때 풍경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체력과 정신력을 감성에 녹여 내는 시간들을 참고 견디다 보면 어느덧 그림 속 골짜기에 들어가 있는 경지를 느끼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감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수정이 불가한 일필로 수묵산수화의 다양한 기술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처럼 어려운 과정이며, 그럼에도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을 관조하고, 해석하며 감성의 체에 걸러 모필의 음영을 종이 위에 얹는 작업은 그에게 있어 자신의 그림을 이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봄날의 산들바람과 색색으로 물드는 가을, 너무 몰두하다 보니 몸이 얼어붙기 십상인 겨울까지 사계의 빛깔과 공기, 분위기 그 모든 요소들을 사랑하기에, 금 작가는 종종 “있는 그대로 보이는 풍경을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서 느낀 감성으로 필터링 된 정신적인 면모를 담는 것에 큰 환희를 느낀다”고 말한다. 

수묵산수화의 장중함과 다감함으로 자연 산하의 한결같음을 묘사하다

햇빛이 드는 한낮부터 땅거미가 지는 저녁을 순수한 감성으로 바라보고, 언니 오빠의 몽당연필로 스케치하던 감성으로 일찍이 미술박사라 불릴 만큼 인정받던 어린 시절부터, 금 작가는 자연이 말하는 무수한 이야기와 추억의 느낌, 색과 숨결의 오묘함을 시각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장하고부터는 수묵에 쓸 수 있는 색감을 꾸준히 연구하여, 다른 외국 회화 못지않은 풍부한 입체감과 질감을 보여주고자 석채를 택한 그는, 다루기 까다롭되 섬세한 한국화만의 장점으로 어떻게 나타내느냐에 따라 잠재된 매력이 무궁무진한 점을 꼽았다. 계절마다 바뀌지만 본질은 늘 한결같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계곡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가을의 향기>, 대상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려 낸 <도산서원>, 장중함과 다감함으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고색>등 독창적인 시각과 구도로 나타낸 그림들을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탄탄히 뒷받침해주는 것은 바로 그의 모필 기법이다. 

올과 결이 촘촘한 그의 기법은 ‘심재’, 즉 마음을 비우고 인성을 가다듬는 수행 속에서 다져져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배경 속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인식하게끔 한다. 연못가에 돋은 풀 하나, 늘어진 가지 위 나뭇잎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동안 현장의 고적함과 자연 앞에 홀로 선 으스스함, 자욱한 안개의 습기와 달빛에 실려 가는 바람, 잔잔한 물결 앞에서도 성실히 붓의 운을 띄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호 대작 <향리소견(鄕里所見)>은 물론, 8개월에 걸쳐 그린 6.5m길이의 대작이자 전시회를 압도한 <화원 남평문씨 세거지 전경> 같은 파노라마 작품은 이러한 관조를 가다듬어 만든 그의 안목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달성문화원을 비롯한 강의에서 후학들에게 한국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지를 말보다는 일련의 작품으로 입증해 왔던 그는, 요즘 언제고 다시 열릴 전시를 준비하고자 늘 그래 왔듯 바지런히 먹과 석채를 갈고 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자연인 고향 영양은 물론,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담은 한국의 어느 풍경이든 간에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진실한 기법으로 충분히 표현해 낸 작가로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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