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신비와 지혜 깃든 현대 무속신앙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다
수천 년 신비와 지혜 깃든 현대 무속신앙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7.15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신지애 방은미 회장
만신지애 방은미 회장

K무속, K샤머니즘의 도약이 눈부시다. 그간 ‘점집’으로 불리며 비공식 신앙으로 여겨지던 무속이지만, 무속과 무속문화는 두려운 미래를 대비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주고, 삶의 등불처럼 이 땅의 지신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기여해 온 바가 상당하다. 
17년째 칠성신을 모시며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만신지애 방은미 회장은 요즘 꿈이 많아졌다고 한다. 1992년 모델센터 1기생으로 수많은 행사와 캣워크장을 누빈 모델에서 신병을 앓은 뒤 무속인으로 전향하며, 만신인생을 삶의 0순위로 삼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병행한다. K무속의 가치를 국내외로 알리는 여성언론인이자 후학 무속인들을 기르고 오랜 무속문화를 집대성한 문화서를 집필 중인 방 회장으로부터, 그의 근황과 우리역사 문화, 예술에 숨어 있는 한국 전통신앙이자 토속문화인 무속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람들을 들어보았다.

한국보다 외국에서 높이 평가하는 토속신앙 

“지/덕과 미/체 겸비한 만신” 만신지애 방은미 회장이 무업으로 호평받기 전, 그는 슈퍼모델 열풍이 일던 1992년을 빛내던 캣워크의 여신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신병에 시달려 어머니의 권유로 신모를 만나 칠성신 내림굿을 받은 그는 운명적으로 무속인이 되었다. 
결혼, 사업, 건강, 이사와 인사이동, 가족운과 자녀의 진로, 고민상담에서 통찰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운맞이와 부적을 비롯해 난도 높은 빙의굿과 병굿, 신병굿, 조상천도에 이르기까지 신령님을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예지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 회장은 해외에도 잘 알려진 K무속스타다. 

그의 만신인생 17년은 국내 공중파와 종편 다큐멘터리예능에 수차례 소개되었고, 미국의 유명언론 <허핑턴 포스트>, 프랑스의 <epit>, 이탈리아의 <IL Giorno>지에서 K무속과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 회장은 해외 인터뷰에서 종종 미신으로 폄하되는 한국 상황과 달리, 외국에서는 무당을 전통 샤먼 혹은 토속 컨설턴트처럼 신비스럽고 매혹적인 문화로 여긴다고 전한다. 더욱이 ‘구슬’이나 ‘북’을 매개로 아주 잠깐 접할 수 있는 해외와 달리, 자유롭게 불러들여 청신과 송신이 가능한 우리의 굿 문화와 무당의 존재는 해외 샤머니스트들이 K무속에 상당한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불교와 외래종교 이후 쇠퇴하고, 일제강점기를 계기로 ‘미신’ 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실에서도 은연중에 믿어 왔으며, 무엇보다 건국의 전설인 단군왕검 스토리의 일부이기도 한 K무속은 우리 역사의 태동과도 함께 한 소중한 문화라는 것이 방 회장의 설명이다.

철학이 사주로 풀어내는 학문이면, 신점은 신령님 목소리에 실린 예지

한국여성언론협회의 부총재, 여성시대미디어그룹의 회장으로 외국어 실력도 상당한 방 회장은 본업인 무업을 중심으로 학술교류 활동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마을의 대소사를 예지하는 능력을 보였던 그는 사주철학이 월일시 정보를 통해 유추하는 지식과 학문이라면, 신점은 신령 접신으로 알아내는 예지라고 말한다. 

26세 무렵 구안와사로 마비까지 겪고, 거듭되는 신내림 징조 속에 2005년 작은 오피스텔에 신당을 차려 일을 시작한 그는 “원래 형태와 형식, 기도도 모르던 천주교인이라 기반지식이라도 알고자 내림굿을 받았는데,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점사를 물으러 오는 손님들은 계속 찾아왔다. 5년 정도 지나니 언론에도 이름이 알려져 지금에 이르렀다. 칠성님은 나의 빈 곳을 채워주고 돌보며 영험으로 성장시키고, 만신인 나의 아들과 가족들까지 보살펴 주신 분이다”라고 말한다. 

신령/만신의 관계도 사람과도 같아 처음에는 아기처럼 돌봄 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서 하게 되고, 이제는 한국무속학을 역사문화 측면에서 접근하는 미국 덴버대학교 교수진 등 해외 학회에 한국의 무속과 무당, 굿 등을 알려주는 교두보 역할로 성장했다고 덧붙인다. 오래도록 악역으로 무당을 묘사한 사극이나 때로 일부 무당의 실태를 확대보도하는 언론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액막이무녀, 소설 <태백산맥>의 독립투사를 돕는 무녀처럼, 우리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무속인들의 이야기가 방 회장의 일대기처럼 흥미와 감동을 자아내며 수천 년 전통의 컨설팅 기술로 인정받아가는 것이다.

무업을 방짜유기처럼 갈고 닦는 삶, 언젠가 무속문화공간 건립하겠다

점보는 인구는 많지만 점본 사실을 쉬쉬하는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한국 샤먼’을 유익한 상담/조언자로서 널리 공유하기에 방 회장에게는 외국고객도 많다고 한다. 내담자의 운명에 맞는 삶을 설계하고, 행복해지는 맞춤형 직업과 좋은 인연 등을 조언하는 방 회장은 무속의 업을 ‘방짜유기’처럼 갈고 닦아야 빛난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 상담은 받아도 음해·비방목적이나 불로소득, 일확천금 이슈 등은 사양하는 편이며, 다짜고짜 계약금과 굿부터 권유하기보다는 상담하고 천천히 말미를 주는 사람 친화적인 무업의 정도를 걷는다. 

그런 방 회장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신딸 3인을 비롯해 좋은 제자들을 더 길러 수천, 수만 명의 삶에 빛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 60세가 되면, 외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공항근처에 작은 땅을 사서 모든 한국무속신을 모신 신당을 만들어 기도하며 머물고, 24시간 개방되는 명동성당이 그러하듯 대중들에게도 공개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을미년 새해운맞이 재수굿 ‘굿 Healing페스티벌’, 광화문 아트홀 공연 ‘Peace On The Peninsula(한반도의 평화)’의 연출·출연을 한 그는, 신당의 섹션을 나누어 굿, 춤, 미술을 망라한 무속문화공간, 관광객들과 무속문화 토론을 나누는 게스트하우스도 만들어 무속애호가, 관광객들에게 K무속을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바람도 있다. 또한 방 회장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상담에 이어, 샤먼문화에 관용적인 독일 출판사와 접촉해 한국무속신앙과 자신의 경험을 집대성한 책을 집필 중이다. 방 회장은 영문판을 먼저 발간하고 국내에 출간할 것이며, 훗날 무속 전문 재단, 학교 설립과 객관적 지표로 만든 교육서 출간과 같은 무속후학양성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