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서 희로애락의 거울을 보다
아이의 눈에서 희로애락의 거울을 보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5.14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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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과 전이조차 사회의 문화현상 변화에 투영하는 실존주의적 사고”
박대조 작가
박대조 작가

화가 박대조의 회화표현방식은 붓 바깥 영역을 향한다. 그는 고개지의 전신사조론(傳神寫照論)에 따라 사물의 본질을 담는 창으로 사람의 눈을 고르고, 그 중에서도 속박을 벗고 마음을 비우는 장자의 심재좌망(心齋坐忘)의 경지처럼 순수함의 모티브이자 대명사인 어린아이의 눈빛을 자신의 전달체로 삼았다. 석재의 보존성, 그림과 사진 사이의 접변성, 순수미술과 LED아트 사이의 다원화로 예술의 질감과 정신적 가치를 창작해 온 박 작가는 밑그림에서 석재작업, 채색까지 한 달 이상 걸리는 작업으로 신개념의 ‘조각화’를 만든다. 

마치 속편을 쓰는 작가와 이스터에그까지 편집하는 디렉터처럼 상당한 기술적 노고로 쌓아올린 박 작가의 ‘조각화’들은, 실존주의라는 견고한 장치 속에서 시대의식과 전달수단의 다변화라는 기운을 받아 성장해 간다. 판옵티콘의 매서운 단골소재인 ‘눈’에 ‘어린이’의 이미지를 더하여 현대문명의 명암을 세련되고도 순수하게 기록·보존하는 창으로 전이시킨 박 작가는, 그의 그림을 통해 화가의 삶이야말로 곧 그림이라는 21세기 물아일체의 긍정적인 면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장자의 심재좌망을 상징하는 아이의 눈빛과 보존성 좋은 대리석의 랑데부

박대조 작가는 상명대 대학원에서 한국화 석사과정과 조형예술디자인학 박사를 거쳐,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2009 부산국제멀아트쇼 KASCO상을 수상하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싱가폴국립미술관을 비롯한 다수 기관의 소장 작가이다. 
2008년 경 무위자연의 수묵화가에 머물지 않고 보존성이 좋은 대리석재를 캔버스로 삼은 후부터, 박 작가는 평론가들로부터 ‘21세기의 조각화’, ‘미니어처로 각인된 디지털 상감기법 기술자’, ‘아이의 천진한 눈으로 표현된 실존주의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기술과 예술, 철학 관념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아이의 맑은 눈으로부터 장자의 심재좌망적 이상향을 본 박 작가는 포토샵으로 눈을 확대한 멀티미디어 추상에 감성을 눈동자에 담는 초상화적 기법도 활용한다. 

장자의 연구를 통해 동양적 초현실주의와 현실인식을 정립한 그의 작품에는 난(蘭)하나를 칠 때도 차분히 의관을 정제한 선비정신과, 신체에서도 사물의 본질과 성격을 찾아낸 상호교류 적 전신사조론의 인과관계가 공존한다. “화가는 이미지를 통해 가치와 정신을 전달하며, 감정묘사의 주역인 눈동자는 사람의 영혼이자 철학이 담긴 핵심과도 같다”라는 그의 사상은 한국화와 동양철학 논문과 진경산수 그림으로부터 시작돼 아이의 얼굴로 들어오는 변혁을 거쳤다. 동양화를 기법이 아닌 사상으로써 접근한 박 작가는 자신의 화풍 변화에 대해, 은사 일랑 선생의 조언처럼 “화가는 붓을 들지 않는 순간에도 화가이며, 생각과 행동이 이미 화가의 밑그림”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면서 평소의 생업이던 석재에 그림을 접목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마치 인간 이상의 지성을 지닌 <혹성탈출>의 유인원들처럼, 그의 작품들을 구상의 탈을 쓴 극사실적인 사진화보다는 석판화와 도색의 탈을 쓴 추상화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불리게 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비은폐의 사유로 드러난 존재의 실존과 진리 밝히다

박 작가는 갤러리원에서 개최한 <The Heart of Child>전을 시작으로, 극사실적 전각이 아닌 상감기법을 거쳐 흑백 감광프린트와 돌가루 점묘음각, 필압의 인고와 필묵의 정성을 연상케 하는 아크릴 채색으로 상호 공감과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 왔다. 문인화와 동양철학의 정신으로 핸드메이드 인쇄를 하는 그의 기법은, 돌의 침묵과 무게감의 도움으로 오래 기억되는 서사의 방편으로 발휘된다.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가장 주목성이 강한 어린이의 아우라를 활용하는 박 작가가 바라는 메시지는 사실 진리의 영향력만큼이나 넓은 영역의 상호개입에 가깝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한 장의 시각적 시나리오에 축약한 그의 적극성이, 동심과 휴머니티로 인간의 희로애락에 엮인 관계성과의 연대의식을 통해 보는 이를 순수하게 설득해 나간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그의 판옵티콘인 “아이의 눈동자에 담은 어른들의 세상”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의 환희, 비극이 잘 묘사되어, 배금주의의 조롱이 반복되는 인류사에서도 작가의 훌륭한 전달체로 살아남은 미술의 존재가치와 예술의 철학기법을 입증한 성과도 보인다. 

이처럼 숱한 이미지 중에서도 하이데거가 강조한 존재론적 비은폐성, 드러난 존재가 상징하는 실존을 ‘아이’라는 소재로부터 명확히 찾아낸 그는, 아이라는 존재를 아끼고 사랑하여 2011년 5월 CNB갤러리 ‘소아암어린이돕기 자선미술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문화현상의 접변성도 작가적 태도의 한 종류, 5월 시집 발간으로 보여줄 것

이미지의 다원화, 중첩을 시도하는 현대미술에 들어선 이래, 그림의 자기표현은 종종 시대와 사회문화현상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박 작가의 작품에서는 스포츠스타들과 첫 한국 우주인 탄생의 영예로운 순간과, 이와 반대되는 핵폭발의 긴박감과 매연 속의 절망도 아이들의 눈 속에서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비정형적 자유로움으로 각인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갖고 싶어 작품에서도 아이라는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그에게, 사회적 현상의 반영은 영화 <AI>처럼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 자식 이상으로 아낌 받는 반려동물들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의미라는 새로운 주제로 드러날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좁은 공간에서 작품을 전시한 뒤, LED를 비롯한 디지털 멀티미디어의 도움으로 감상자 자신이 삶과 죽음을 통해 남겨진 삶에서 어떤 가치를 찾아낼지 생각할 기회를 주는 이벤트도 시도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네팔 오지에서 부모의 재혼으로 버림받은 한 아이에게, 잃어버린 행복한 순간을 눈 속에 그려 위로하는 감성을 지닌 박 작가는 어른으로서 자신의 뮤즈인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시한부로 떠난 아기의 삶을 역순으로 되돌려, 아기를 사랑한 이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추억하게 만드는 작품도 그의 구상 속에 있다. 사업의 실패로 인한 좌절에서 창작의 기쁨까지 두루 경험하고, <Human&City>전에서 보여주었듯 세상을 돌며 성스러운 카일리쉬와 히말라야의 자연 속 아이들에게 깨달음을 얻기도 한 그는 모든 삶을 예술로 번안하는 작업을 쉬지 않는다. 예술인도 무속인이 숙명에 매여 있듯 평생 창작의 힘으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묘사하며 그림 외에도 1천 편이 넘는 시를 써 온 박 작가, 그의 이 새로운 관찰자적 시점의 습작들은 1백 50여 편 내로 추려져, 오는 5월 경 시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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