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기상으로 다시 솟은 한반도 진경론과 원형상, 독도 삼봉을 수호하는 한국의 위대한 민족미술 철학 집대성하다
고구려의 기상으로 다시 솟은 한반도 진경론과 원형상, 독도 삼봉을 수호하는 한국의 위대한 민족미술 철학 집대성하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1.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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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미술 근원 탐구와 전통 자생력 수호를 이끈 60여 년, 예술인 최초로 은관문화훈장·건국포장수훈 국가유공자 겸한 한국미술의 거장“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동양화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한국벽화연구소장/철학박사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동양화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한국벽화연구소장/철학박사

최근 추사의 <세한도> 기증으로 정부의 금관문화훈장 수훈이 이뤄진 사례에서 보이듯,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주도한 한반도 고분 훼손과 문화재 유출 및 서양 열강의 알력 탓에 해외로 반출된 국가유산의 행방과 귀환 시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1997년 프랑스문부성 초청 루브르미술관의 첫 3회 연장전을 성사시킨 일랑 이종상 화백은 병인양요를 주제로 한 초대형 설치미술작 <원형상-마리산>을 공개하며 전 세계 127만 명 관람이라는 호평을 받은 글로벌 아티스트이다. 그는 전시 당시 작품의 영구소장을 제의하는 프랑스를 향해 교환 조건으로 돈 대신 오로지 ‘외규장각 조선왕조실록 의궤도서’, ‘직지요체’ 반환을 말하며, 문화재 반출의 부당함과 병인양요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린 공헌으로 2003년 10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에 서훈된 예술가이기도 하다. 
1977년 37세의 최연소 화폐영정화가, 그리고 5천 원 권 율곡 이이와 2009년 5만 원 권 신사임당 모자화폐영정을 동시 작업한 국내 유일의 생존 화폐영정화가, 그리고 현역화가 최초의 인문철학박사이자 1960년대부터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에 대비한 문화 NGO활동의 선구자이기도 한 일랑 이종상 화백은 남북 독도화전을 성사시킨 독도전문화가 1호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칙령 41호, ‘독도는 우리 땅’은 2021년 지금도 유효한 진실”

최연소 국전 3년 연속 추천심사 작가, 프랑스 문부성 초청 루브르미술관 한국 첫 생존작가 및 3회 연장전 기록 작가, 팔순을 넘긴 후로도 건재한 활동 중인 국내 유일한 생존 화폐영정작가, 검찰청사, 서울법원 종합청사, 대법원 로비, 국립극장, 삼성 본관 등 주요기관과 국내 유명 랜드마크 작품소장 작가. 그리고 유명 건축가 렘 쿨하스에 의뢰해 국내 첫 대학미술관 건립에 기여한 업적이 있으며, 광개토대왕 국가표준영정에 용포 대신 장군의 복식으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영정작가. 그가 바로 교육자와 사회운동가, 한국화가로 한국 예술과 문화에 큰 획을 그은 일랑 이종상 화백이다.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취화선>에 등장하는 <몽유취원도>의 작가이기도 하며, 현존 최고의 ‘독도작가’로도 유명한 일랑 화백은 1938년 충남 예산에서 광원군파 22대손으로 태어나, 추사의 고택을 이웃해 전통 문화의 품격을 접하며 자라났다. 일랑 화백은 1977년부터 풍수지리학적으로 한반도를 일본으로부터 지키는 좌청룡 격인 독도 수호를 주창하며, 문화예술 영토확장과 독도영유권문제를 고취시키는 독도운동 선구자이다. 
또한 일랑 화백은 첫 독도일출 퍼포먼스작업인 ‘지두화’를 비롯해 6백여 점의 독도화를 그려 울릉도 독도박물관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부설 독도체험관에 작품을 기증한 첫 번째 독도전문화가이기도 하다. 

일랑 화백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제국의 칙령을 부정해 온 일본을 상대로, 1982년부터 한국민족미술 자생성에서 유래한 ‘원형상’ 이론과 장지기법에 따라 그린 독도 추상화 <독도의 기>를 머플러 도안으로 디자인해 제품완판을 시키는 K-문화 전략 선구자로서 일본 대중들에게 깨우침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 7월 도쿄 아시아톱갤러리 호텔아트페어에서는 독도그림 출품 불가 선언에 대항해 과감히 불참을 선언하며,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부정하는 일본과 ‘장물관’ 도쿄국립박물관을 향해 자신의 신념이 유효함을 알렸다. 더욱이 문화인식에서 출발한 ‘독도문화심기운동’의 창시자이자, 이함준 박사와 함께 북한 만수대창작사 선우영 인민작가와의 첫 남북작가독도전을 성사시킨 일랑 화백은 높은 예술성취도를 통해 ‘DOKDO’라는 고유명사를 세계에 널리 알려, 사실상 일본 작가들의 다케시마 그림 시도를 막는 도해금지령 역할이 되면서 독도문화의병단 60인을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다. 


‘문화영토론’, ‘현대진경론’, ‘원형상’ 철학 정립, 고구려벽화 가치 알려

일랑 화백은 청년기부터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제국주의 부활 시도가 우리의 문화예술 침탈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이를 막고자 예술가들의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일랑 화백은 1960년대부터 역사관으로는 ‘문화영토론’을, 철학으로는 ‘현대진경론’을 실천해 근원형상에 따른 ‘원형상’이 우리미술의 근원적 철학임을 보여준다. 
우리 자생문화의 근원으로 만주의 집안과 북한에 존재하는 고구려벽화를 연구해,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류라는 모략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초를 겪고도 뜻을 굽히지 않은 일랑 화백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99년 아태평화위원장 초청 북한고분유적답사 3회를 성사시켜 더욱 완벽한 고증에 다가섰다. 그리고 고구려고분군을 탈취하고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방해하는 중국을 꾸짖는 <고구려 벽화 앞에 부끄럽다> 칼럼을 게재하고, 유구한 인류의 보물 금속활자 직지를 탄생시킨 근본이 아시아 중 한국에만 있는 겹/장섬유 유결한지에 있음을 깨닫고 이를 창호문화의 광섬유성 채광과 배면조명의 건축원리에 도입한 ‘한지배면조명법’을 집대성해, 71m 규모의 설치미술 <원형상-마리산>을 루브르미술관 까루젤에 진출시켜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쾌거도 거두었다. 

민족문화학자이자 미술가로서 일랑 화백은 <한국민족문화논총> 33인 우수논문에 선정된 <재료기법으로 본 고구려벽화>, <쌍영총 벽화제작도>를 발표하고, (사)문학의집 선정 ‘가장 문학적인 화가’ 상을 수상한 수필작가로서 <화실의 창을 열고>, <솔바람 먹내음>을 저술하기도 했다. 또한 동양화 분야에서는 공중니(孔仲尼)의 후소론(後素論)이라는 전인적 회화윤리학을 바탕으로, 시서화 삼절의 유불교, 선비문화가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해석한 바 있다. 이러한 학술적 성취로 동서비교미학과 동양철학, 원효의 기신론을 10년간 수학해 화가 1호 인문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일랑 화백은, 육리문과 배채법의 근원이 고려불화에서 왔다는 이론을 화폐영정에 적극 활용해 독보적인 화풍으로 국내 첫 ‘모자화폐영정’ 생존작가라는 명성도 갖추게 된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며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원로예술가

자주의식을 고취시키며 한국화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일랑 화백의 모든 족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와도 궤적을 같이 한다. 일랑 화백은 1960년 서울대 미대 2학년 시절,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를 타도하고자 고향의 노모에게 유서를 쓰고 경무대(옛 청와대) 앞 무력진압에 대항하다 다리에 총을 맞고 수배된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다. 또 이승만 하야 후 1961년 복학한 서울대 미대 학생으로서도 예술의 현실성에 천착한 첫 세대로서 ‘민중의 역동성’을 주제로 한 <장(匠)>으로 국전 동양화부 최고특선을, 그리고 제 1회 신인예술상 최고특상도 수상한다. 나아가 만 23세의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로서 한참 윗세대 화가들의 작품을 심사하는 영예도 누렸다. 
이렇게 일랑 화백은 미술가도 전공 본업에서 최선을 다해 국가발전과 민족공헌, 국위선양을 이룰 수 있음을 입증해, 제180호 대한민국건국포장 전수로 국가사회공헌 상훈법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자격을 획득한 국가유공자가 된다. 일랑 화백은 월전 장우성 선생, 남정 박노수 선생에 이어 지난 11월 작고한 산정 서세옥 교수의 직계로서, 원로미술계의 거목답게 한국미술계에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순종어진을 그린 조선 최후의 어진화가 이당 김은호 선생의 왕실 정통영정화법인 육리문, 어진점묘법인 육리배채 기법을 50여 년간 숙련한 일랑 화백은, 신사임당 표준영정의 오류를 2009년 첫 신권발매에 맞춰 학계 권위자인 고증위원회와의 철저한 고증으로 바로잡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영정과 성화작업에 착수해 국립현대미술관 원효대사 영정, 장보고, 우륵, 고산 윤선도 선생의 영정으로 명성을 드높인 일랑 화백은 천주교에 귀의해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으로 2017년 개관한 충남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에 3년 간 작업한 장지기법 작품들을 기증한다.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메트로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 손자선 토마스 영정성화 5점 및 1천 호 크기의 순교성화 13점 봉헌은, 한국의 천주교역사수호 화가라는 새롭고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원효의 기신론과 통섭의 원리로, 미술과 문학, 건축과 역사의 콜라보레이션과 한국화의 추상적 표현에 큰 획을 그은 예술철학자 일랑 화백.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율곡선생 영정 작업과 독도/고구려문화 수호를 평생의 과업이라고 밝힌 그는, 예술가들의 귀감이 되는 역사수호 운동가의 임무를 다해 자신의 호인 ‘일랑(첫 파도)’ 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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