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수채소 유통분야 20년 역사를 키운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국 특수채소 유통분야 20년 역사를 키운 어머니의 마음으로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11.1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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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현대화 사업 성공을 위해선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야”
기복유통(주)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기복유통(주)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1985년 문을 연 가락시장의 특수채소도매업 1인자,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부부는 4년 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사업으로 재개장을 마친 건물로 옮겨 왔다. 40년 도매시장 인생에서도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건립 총사업비는 4,493억 원에서 1조 196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사업체가 커졌으니 입주한 업자로서 좋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손사래를 치는 구 대표는 사는 얘기 좀 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20년 전부터 특수채소도매업의 어머니로 불린 구 대표의 눈에, 좋은 시장이란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데 지금은 다르다고 한다. 40년 경험자로서 해결책은 있지만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는 가락시장에 대해, 현장에서의 이야기를 곁들여 구 대표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현대화된 가락시장, 손님의 발길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 때문만은 아냐

기복유통(주) 기복상회의 구자분 대표는 수도권의 깡시장이 경매시장으로 바뀌고, 원효로 용산시장이 전자상가가 되는 시간을 모두 지켜본 도매업전문가다. 구 대표와 남편은 기복농사와 기복상회를 운영하며, 주 6일 오픈하는 기복상회는 원래 저녁 8시 50분 경 출근해 밤새도록 연다. 그렇지만 지금은 밤이면 건물 전체에 정적이 깔리며, 코로나19의 2.5단계일 때는 몇 시간 만에 문을 닫은 적도 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올해 정부가 임대료 10%를 삭감해 주었지만 내년이 더 걱정이다. 

도매업 40여 년의 구 대표는 이것을 가락시장 현대화과정의 누적된 문제 중 하나라고 전한다. “정육과 신선식품이 채소코너 위층에 있는 낯선 구조에는 익숙해졌지만, 시설복층화와 채소2동 건축발주 후에도 상인들이 느끼는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는 구 대표에게 이유를 물었다. 구 대표는 정온설비로 경매장환경은 좋아졌지만, 손님들은 깔끔한 현대화매장을 두고 온라인배송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손님들을 위한 주차공간조차 인근 마트 손님들의 차지가 되었다. 또 ‘큰 손’이던 대형매장 사입 직송도 대기업 유통사들이 비집고 들어 온 지 오래다. 물량 많고 편히 둘러보며 고르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공사에서도 제품 세팅과 인터넷 홍보를 더 강조하기에 손님들은 진열장을 눈으로만 둘러보고 스마트폰으로 오픈마켓이나 대기업 새벽배송을 클릭할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시장의 사람 냄새를 늘리는 것뿐인데, 구 대표는 도매시장은 전시장이 아니라 시장다워야 한다는 현장의 의견을 좀처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견디지 못한 직판매장들은 시장을 떠났거나 뜰 준비를 한다. 구 대표는 직판장 시절에는 모두 사장이었지만, 공사의 조언으로 대표 1인으로 통합된 법인으로 줄였기에 ‘이사 1인’이 된 상인들은 매장을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온라인몰과 구분되는 특수채소 유통시장의 활기를 되찾아야 

구 대표는 꽃집과 청과, 채소 매장은 제품진열이 생명이라고 한다. 구 대표가 전성기로 기억하는 ‘상계동 시절’이 그랬다. 특수 고급채소를 처음 들여 온 20년 전, 가게 입구는 늘 화려한 채소박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채소를 종류별로 포장하고 얼음을 깔아두면 손님들이 물량에 감탄하며 줄을 서서 박스에 쌈채소를 채워갔다. 

채소는 시들 틈이 없어 늘 싱싱했고, 쪽잠을 자며 버텼지만 채소시장을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구 대표는 특수채소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몰려든 다른 상인들에게 쌈밥집에 나오는 2,3인용 쌈소쿠리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다. 채소장사로만 연 10억을 벌던 시절, 된장 맛으로 유명한 지역마다 답사를 해서 육된장이나 우렁된장에 쌈밥을 곁들이는 아이디어도 구 대표가 처음으로 컨설팅해 준 것이며 이런 방식은 지금도 계속된다. 넓은 중국에 희귀 채소종자를 심어두고 매달 4번 비행기를 타서 실어 나르는 노하우도 숨김없이 풀었다. 

잎과 줄기도 먹는 1년 생 새싹삼도 개척해 고급식당 셰프가 직접 주문하는 케이스는 기복상회가 유일하다. 매주 새싹삼 3천 여 개를 재배농장과 계약해 농업인과 상생하는 거래도 텄다. 이런 전문거래는 대기업과 인터넷 매장조차 접근하지 못한 기복상회만의 자랑이다. 그렇지만 현대화된 지금은 매연이 들어오고 사계절의 흐름을 볼 수 없는 지하에서 이전의 활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소방시설은 좋아졌지만, 좁은 매장에는 냉장 쇼케이스만 있어 기복상회만의 희귀채소들은 지하 2층 저온창고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 대표는 다녀오는 동안 손님이 앉아 기다릴 공간도 부족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짓수는 줄어도 이름값은 최고, ‘기복’ 을 찾아주는 고객들을 위해

구 대표는 요즘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시든 채소를 버려야 했고, 가짓수도 줄였다. 채소 단일종을 컨테이너로 구매하면 싸지만, 색색종류로 들여와서 다양한 검역통과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전에는 손님 30명이 매장에서 샀다면, 이제는 유통업자가 30명분을 사서 되팔거나 이곳의 귀한 채소를 구해 자신들의 물량을 채워놓기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구 대표는 단골들의 따뜻함에 힘을 낸다. 기복상회의 신선도를 믿는 전국 단골 고객들은 바쁠 때면 직접 장부를 쓰고 거스름돈을 가져갈 만큼 믿음직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수와 태풍으로 과일도 싱거워진 올해 특수채소 종묘 작황도 좋지 않지만, 구 대표는 내년을 위해 브로콜리와 주키니, 아티초크와 품종개량호박, 허브채소의 묘목을 다시 심기로 했다. 오랫동안 구 대표가 들여 온 세계 채소들은 수 천 종이나 된다. 수백 여 종 쌈채소에 외우기 쉬운 이름을 붙여 학명보다 더 유명해졌기에, 구 대표는 지금도 업계에서 채소인명사전 대우를 받는다. 잎 끝이 붉고 복슬거려 예쁜 불란서 꽃상추는 ‘롤라로사’ 상추로 불리며, 칼 모양의 잎브로컬리는 ‘뉴그린’으로 검색하면 된다. 

그리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 대표는 좋은 신상이 들어오면 사진을 찍어 정보를 검색하고 단골들에게 알려준다. 그것이 한때 이름도 낯선 야콘과 콜리플라워를 동네 가게까지 전파시킨 특수채소분야 전문가만의 자부심인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이어간 구 대표는, 평생 터전인 시장을 살리려 노력하는 마음이 이 정도이니 특수채소 유통문제해결에 대한 의견도 꼭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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