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km 벽화전문작가, 한국 문인부부 1호의 인생을 파노라마로 그리다
60km 벽화전문작가, 한국 문인부부 1호의 인생을 파노라마로 그리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11.12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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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수채화에 생명을, 벽화에는 동네 주민들의 꿈과 희망을 담아”
벽화전문작가/커피작가 김영수 화가, 좋은 사람들 대표
벽화전문작가/커피작가 김영수 화가, 좋은 사람들 대표

김영수 화가는 양 손에 페인트붓과 그림붓을 쥔 유니크한 작가다. 그는 지난 30년 간 국내 최장기록(60km)의 프로젝트 벽화전문작가, 인스턴트 커피물로 수채화를 그리는 커피작가로 유명하다. 김 화가는 벽화봉사활동을 하는 한편, 커피전문작가를 양성하고 비영리단체를 조직해 결손가정 소녀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사회와 함께 숨 쉬는 창작을 한다. 오늘도 구도심지역의 꿈을 키우는 벽화, 반다이크브라운 톤 수묵이라 불리는 커피그림을 같이 그리는 김 화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문인부부 1호인 이원수, 최순애 부부의 러브스토리 테마벽화를 지난 해 완성했으며,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아름다운 그림이야기 속을 거닐길 바란다고 한다.

방치된 골목을 파노라마 스토리텔링 해 아름다운 동화골목 만들기

수원 행궁동(북수동)에는 <오빠생각> 골목이 있다. 이 골목 전체가 독립운동을 떠난 오빠를 그리워하던 소녀작가 최순애가 소년작가 이원수와 펜팔을 시작해, 많은 어려움을 딛고 잉꼬부부가 되며 이들이 전설적인 동요작사가로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실화를 그린 파노라마 벽화작품이다. 아이디어를 낸 이는 대한민국 최대길이의 벽화기록과 전남 연홍도 <지붕없는 미술관> 벽화전국대회 대상수상 기록을 갖고 있는 김영수 화가다. 김 화가는 인테리어전문가인 남편의 영향으로, `86-`88 아시안게임/올림픽시즌의 행사 아치·벽화 의뢰를 받아 페인트붓을 잡고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벽 위에 조경을 하는 벽화에 매료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한 김 화가는, 이후에도 지자체와 동사무소, 주민자치위원회의 의뢰를 받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벽화를 그렸다. 그는 적은 비용으로도 사람들을 모아, 상권을 형성해 동네를 활기차게 키우는 첫 단계가 바로 벽화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래서 김 화가는 좋은 벽화작가가 되려면 화가의 작가주의를 내려놓고 그 지역의 주민들이 바라는 꿈과 소망을 먼저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김 화가는 수십 년 간 수원시를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골목, 쪽방촌의 외벽을 밝게 바꾸고 벽화마을을 조성해 왔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과 강아지, 어르신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산천 초가와 사계,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다. 수십 년간 지역 예산을 지원받아 벽화를 그리다 보니, 그는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고 친해지는 데는 도가 텄으며 희망자를 뽑아 요령을 가르치고 외벽 그림 한 칸을 맡기기도 했다. 독학으로 일본에 그림유학을 다녀오고, 홍대 평생교육원 2년 과정 수료로 그림을 섭렵한 김 화가에게 이 아마추어화가들의 작품을 살짝 다듬어 완성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벽화 경력을 쌓다 보니, 김 화가는 도구와 물감만 갖추면 벽돌이든 흙벽이든 거침없이 페인트붓으로 전진하며 4백m도 한 달이면 너끈히 완성된다고 한다. 

주민센터의 커피그림 선생님, 그리고 소녀들의 고민 어루만지는 천사

<대한민국을 벽화로, 엄마 품처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벽화를 그리는 김 화가는 방송매체를 통해 자신의 흥미로운 인생이야기를 곧잘 소개해 왔지만, 2007년 커피그림을 시작한 계기를 말할 때마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다. 한동안 김 화가는 철물점 빗자루와 페인트붓을 가리지 않고 쥔 채, 밧줄과 크레인을 타며 수백m의 벽화를 그리느라 고소공포증도 잊곤 했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43세에 낳은 늦둥이 어린 딸이 위험한 벽화그리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엄마다운 걱정으로 그는 아이에게 벽화작업장 대신 화실에서 버려진 커피물로 손그림을 그리며 놀게끔 했다. 다음날 그는 놀라운 기적을 만난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전날 커피얼룩이 말라붙은 종이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칼디 소년이 원두를 발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또 천 년이 흐른 후에도 영원한 인간의 친구일 커피이기에, 김 화가는 <위로>, <동행>, <천년의 약속> 등 커피그림 개인전을 10회나 열었다. 유분이 있어 부패하는 원두커피와 달리, 동결건조 인스턴트커피액은 훌륭한 수채물감이며 점성이 있어 세필이나 번짐 기법으로 물방울이나 독창적인 오브제를 표현하는데 그만이었다. 

그리고 종이가 손상되지만 않으면 방부제도 필요 없으며, 캘리그라피와 잘 어울리는데다 은은한 커피 향기를 풍겨 더욱 좋았다고 한다. 이후 김 화가는 인사동에서 직업개발능력원과 손잡고 벽화반을 만들어 제자를 배출하고, 매탄1동의 주민센터, 행궁동어울림센터에서 커피그림을 강의하며 30분이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벽화를 그리면서 지역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자주 접한 김 화가는 다른 방향으로도 소통을 시작하게 된다. 김 화가는 비영리단체인 <좋은 사람들>을 조직해, 예술 예능인 3백여 명을 모아 외부행사와 벽화의뢰 작업을 함께 해 왔다. 그리고 김 화가는 재작년 ‘깔창 생리대’ 이슈를 계기로 조부모나 편부모 밑에서 자라 고민을 말할 상대가 없어 생리 때마다 결석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여성단체와 힘을 합해 소녀들을 위한 생리대 보급 기금을 만드는 중이다. 이렇듯 김 화가는 벽화 활동이란 함께 어우러져 지역을 살리고, 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한다. 또한 말보다 강렬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커피그림과 스토리텔링 벽화만의 매력이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을 돕는 삶에서 의미를 느낀다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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