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으로 그린 바람을 채색으로 물들이고 낙관으로 마무리한 채색풍경화
수묵으로 그린 바람을 채색으로 물들이고 낙관으로 마무리한 채색풍경화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10.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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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자연을 그대로 옮기니 어두운 색조차 환해지더라”
동양화가 신영숙 화가/현대채묵연구소 소장
동양화가 신영숙 화가/현대채묵연구소 소장

19세기 파리의 젊은 평론가 레옹 라그랑주(Léon Lagrange)는 여성 화가들이 꽃과 동물, 새를 매혹적이고 우아한 여성들 스스로와 동일시하면서 선호하게 되고, 닮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의 관점에서 꽃과 정물의 아름다운 묘사는 당연한 일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다. 
정통수묵을 배웠으며 ‘현대채묵화’의 관점에서 아름다운 꽃과 정물, 풍경을 그리는 동양화가, 신영숙 화가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의 빛깔에서 중년에 접어든 여성의 삶에 기쁨과 희망을 줄 자신감의 후광을 발견해 낸 작가 중 한 명이다. 개인의 숙고와 성찰로 그려가는 수묵 문인화와 신 화가 식 채색화가 보여주는 차이점은, 비단 색상의 여부가 아닌 동 세대의 여성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아름다운 색채로 동일시해 주려는 마음가짐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자연을 읽는 문인화적 감성에, 본 대로의 느낌을 살린 치유의 그림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하영준 교수의 1기 제자,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 과정을 전공하고 대구대 미술교육과에서 동양화 학사, 동방대학원대학교 서화예술 석사학위를 받은 신영숙 화가의 현대채묵연구소는 신 화가의 그림에서 꽃들이 어떻게 환한 감성을 담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밝은 웃음소리와 다양한 색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마을미술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신 화가는, 연구소와 올해 9-12월 일정의 대구백화점 현대채묵화 성인강좌에서는 화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중년 여성들에게 스케치와 색 쓰는 법을 가르친다. 여기서 신 화가는 주부로 살면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짠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과 집중이 필요한 정통수묵보다는 선묘, 근농원담법 정도의 기본기를 만들어 주고, 주부들이기에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자귀나무와 참새, 예쁜 히비스커스로 패브릭이나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알려주려 한다. 이처럼 정통 문인 수묵화에서 변모한 신 화가의 컬러감은, 지난 해 대구KBS갤러리에서의 8번째 개인전 <신영숙의 야생화이야기전>에서 획기적으로 선을 보인 바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신 화가는 아이들이 자라서 등산과 산행을 할 여유가 생겼을 때, 문인화를 그리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있는 그대로의 나무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문인화는 산수화를 향해갔으며 문인화적인 대나무의 곧음이 비록 아파트 문화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대신 그의 논문 소재가 되었으며 수묵과 문인화도 여전히 그림세계의 바탕역할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동양화와 혼재된 혼합채색 성향은 그림을 물들이는 좋은 염료가 되었고, 그 밝은 빛깔이 중년에 힘든 과정에서 찾아온 우울함을 달래주었을 때, 신 화가는 비로소 수묵화에 채색을 더하며 작가로서의 방향성도 찾았다고 한다.

인생은 여행, 화가는 새로운 패턴을 찾아 그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민화 같은 느낌의 부엉이, 이름 모를 들꽃들의 섬세한 보태니컬 컬러링, 꽃을 나타낸 동양화의 기법이 동화 같은 화면에 공존하는 신 화가의 매혹적인 그림은 3-5종류 혹은 그 이상의 꽃들이 화사하고 아름다워 시선을 끈다. 
그의 그림은 오리의 몸에 한가득 꽃을 나타낸 추상기법, <겹삼잎국화:영원한 행복> 및 <다알리아, 당신있어기쁩니다>처럼 동양채색화의 매력이 담긴 꽃과 달항아리의 조화도 있으며, 동양화 구도에 서양화 기법이 어우러진 그림, 족자에 넣을 법한 기린의 긴 목, 동양화첩인 양 내려앉은 호랑나비, 너른 초원의 해바라기들로 가득하다. 이름 모를 야생화에 대한 공감대가 많은 문화센터 주부학생들과의 수업에서도 힐링한다는 신 화가는, 수묵에서 모티브를 얻은 배경에 자연과 사물을 그리고 색을 칠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즐거움을 <우리함께>라는 그림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신 화가는 아이들과 주부학생 모두에게 “기술과 디테일 그리고 계산과 재구성 대신, 여러 색으로 장난치는 느낌으로 놀이하듯 그릴 것”을 권한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고, 때로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군더더기 없는 자연물을 디테일보다는 순수한 감성으로 해석한 신 화가의 그림은 혼합재료를 쓰면서 더 다채로워졌다고 한다. 
아교처리를 하고 한국화염료와 아크릴 채색물감을 섞어, 다양한 한지에 나타내면 퍼짐과 뿌리는 효과가 더 흥미롭다는 신 화가는 면봉과 나무젓가락 등 다양한 도구를 쓰기도 한다고 귀띔한다. 또 신 화가는 화훼용에서 들꽃까지 다양한 꽃을 섭렵하면서, 작은 한 송이 꽃과 잎을 그리면서도 코로나에 고통 받는 이들이 잘 풀리고 기운을 얻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색으로 치유하는 신 화가의 그림은 마음속에 들어 온 인상적인 풍경으로 한결 편안해진 마음을 내면에 모으는 그림인데, 지난 7월 코엑스아트페어에서 신작을 발표한 신 화가는 그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감성에 도형 패턴을 넣어 밝음과 강렬함 속의 부드러움을 나타내고자 했다. 올해 개인전 일정이 미뤄졌지만, 신 화가는 여전히 창작에서 기쁨을 느끼며 꽃과 패턴을 가미한 신작들의 반응이 좋아 이번에는 우리 전통 문양, 오방색의 느낌을 접목한 새로운 풍경 산수화도 시도할 생각이라고 한다. 
섬세하고 밝은 한국식 보태니컬 채색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신 화가는, 인생은 여행이기에 감흥이 일면 언제든 그림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며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설렘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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