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는 탁월한 관찰력으로 생동감 넘치는 역사의 유산을 재탄생시키는 값진 작업
초상화는 탁월한 관찰력으로 생동감 넘치는 역사의 유산을 재탄생시키는 값진 작업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07.12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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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위에 위대한 인물의 족적과 예술가의 영혼을 투영해 온 역사 기록자의 삶”
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 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 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서울=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초상화는 후손들에게 역사 속 인물이 남긴 업적과 영향력을 한 장의 그림으로 알릴 수 있는 귀중한 예술이다. 이렇게 인종과 지역, 종파를 초월한 저명인사와 역사적 인물을 기록하는 과업에서 탄생한 초상화는 인물화라기보다는 한 장의 자서전에 더욱 가깝다.

서양화와 정통 유화 기법에 근간을 둔 초상화 작업은 물론, 국내 최초로 살롱과 후학들을 위한 교육장과 전시장을 겸한 초상화전문갤러리를 개관하여 한국 초상화 문화의 대명사가 된 오동희 작가는 천주교 어농성지 헌정 작업 및 해외 전시회를 거쳐 필생의 역작이 될 역대 대통령 초상화 작업에 한창이다. 실존인물을 묘사하는 분야에서 국내 정상의 경지에 달한 오 작가의 초상화에서 누구나 오소독스(orthodox)적인 감흥을 느끼는 것은, 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초상화 작업에서 비롯된 탄탄한 기본기와 해부학적, 그리고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끈기와 연륜으로 40여 년의 초상화 작업에서 역사 재현하는 생동감 표현 마스터하다
인간의 평생을 담는 초상화의 덕목은 로마와 비잔틴 미술에 계승된 이래 다 빈치와 뒤러가 발전시킨, 인체실측기법 ‘카논’의 극사실적이고 해부학적인 연구를 드로잉으로 옮기면서 해당 인물의 복잡 다양한 내면세계를 평면 공간 안에 담아내는 데서 시작된다.

철저한 인체 고증과 예술가 관점에서의 해석력을 지닌 오동희 작가는 얼굴과 상체의 균형, 근육의 움직임, 피부의 미세한 주름과 음영에서 나오는 연륜과 표정을 생동감 있게 담는 실력파 초상화가이다. 오 작가는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 넬슨 만델라, 마더 테레사를 비롯한 세계의 위인들과 백범 김구 선생, 김수환 추기경,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비롯한 저명한 인사들의 초상화들로 명성을 떨친 역사인물 고증 전문 초상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22세부터 40여 년 간 초상화에 천착해 온 오 작가는 고증을 통해 인물의 특징을 그려내는 방식에서 정통의 엄격함을 계승하고 있으며, 서양화의 인물묘사에 필요한 외광에 의한 음영법(陰影法)으로 밑그림의 골격을 잡고 있다. 또한, 20세기 초 앤드류 루이스의 ‘인체 드로잉’ 이론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티치아노, 미켈란젤로와 같은 생생하고 정교한 묘사, 그리고 스페인의 벨라스케스와 같은 사실적인 덧칠 표현과 바로크 식 궁정초상과 종교화가의 표본이 된 루벤스의 생기 있는 혈색 묘사까지 시도하며 정밀한 외광음영에 따른 독자적 초상의 화풍을 만들어 왔다.

이에 따라서 오 작가는 초상화란 그림 한 장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역사와 인물의 존재감을 그림으로 알리는 기록물이라는 관점에서 작업하고 있다. 2012년 10월, 오 작가는 ‘바보의 나눔’ 재단으로부터 공식 영정사진을 제공받은 김수환 추기경의 초상화 3점을 재단에 기증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차기진 박사와 함께 1년 간 관련 문헌을 참고하여 한 점당 1개월 이상이 걸리는 각고의 노력 끝에 천주교 어농성지 헌정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고 배교의 유혹을 이겨낸 순교자 윤운혜 루치아, 정광수 바르나바 부부를 비롯한 순교자 8인의 초상화에는 종파를 초월한 예술가 오 작가의 고뇌와 후대에게 전하는 철학이 빛나고 있다.

까루젤 뒤 루브르 살롱 아트페어 출품 초상화가이자 국내 최초의 초상화갤러리 연 선구자
인물의 구도와 비례에 맞추어 컬러 톤을 정한 뒤, 마스크에 표정과 성품, 인상, 감성을 담으며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성하는 오 작가는 과거 못지않게 통렬한 현실의 그늘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작 중 하나인 <아이티의 눈물>은 인물화로서 아이의 얼굴과 눈빛 하나로 참혹한 아이티의 현실을 함축하는 감성이 담긴 작품이다. 이처럼 후학들에게도 세상을 읽는 눈으로 인물을 관찰할 것을 강조하는 오 작가는, 지난 2016년에 서초구 반포동에 아카데믹한 기술과 섬세한 감수성, 학구적인 관찰력을 담아 온 역대 작품들을 아카이빙한 국내 최초의 살롱 형 작업실 겸 30평 규모의 박물관인 오동희초상화갤러리를 오픈하였다.

이는 단순한 진열을 넘어 관람, 소통과 감상 및 4층 작업실에서의 강의와 오 작가의 작업실이 공존하는 형태로서 19세기 살롱을 표방하여 소규모 갤러리가 많은 국내에서도 드문 예술적 공간이기도 하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러한 소통과 전달에서 비롯된 오 작가의 예술 인생이 한국을 넘어 프랑스 파리의 ‘까루젤 뒤 루브르 살롱 아트페어’에 도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오 작가의 초상화들은 전 세계 미술 소장가들에게 인물의 성격을 담아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하는 정통파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으며, 액션 페인팅과 질감 위주인 임파스토(Impasto)기법의 요철 추상화, 렌더링 일러스트에 익숙한 유럽의 갤러리들에게 동양에서 온 신고전주의와 사실주의 기법으로 발전시킨 초상화들의 높은 수준을 일깨우기도 했다.

미술계의 고증 전문가, 역사의 기록 작업 일환으로 올해 역대 대통령 초상화에 심혈 기울여
엄정한 규칙에 따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예술부류로는 문학의 이상을 단어에 함축한 시가, 풍경화에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진경산수(眞景山水)가 있다. 비슷한 사례를 인물화에서 찾는다면 기록문헌의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위인을 복원해 낸 오 작가의 초상화를 예로 들어야 할 것이다. 동시대의 화가들과 달리 굵은 붓터치로 얼굴 주변을 메우는 대신 소품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한 반 에이크처럼, 오 작가는 얼굴 뿐 아니라 나이와 소셜 포지션을 알 수 있는 의상, 모발의 상태, 소품 등의 묘사를 위한 고증 연구가 필요한 작업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오 작가의 초상화는 요절한 순교자들부터 생의 황혼에 도달한 위인들에 이르기까지 작은 주름과 얼굴선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다른 초상화를 복제하기보다는 새로운 표정과 포즈로 재해석하는 작품이 대부분이기에 개인적으로도 체력과 정신력의 소모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적절한 기법을 적재적소에 그려내는 초상화 작가로서 독창성 있는 화풍 외에도 탁월한 고증 능력을 검증받은 오 작가는, 이상적인 초상화가의 조건으로는 붓을 놓지 않는 끈기, 수십 년을 갈고 닦아 이뤄낸 연륜,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특정화 시키는 생동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해가 갈수록 작품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오 작가는 올해 들어 인물의 시대정신을 문화유산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2011년 개관한 한서대학교 역대 대통령자료실을 운영하는 한서대학교의 총장이 직접 의뢰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초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동양의 정서와 서양의 기술이 조화된 인물 형상에 대한 분석은 물론, 인간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오 작가는 역대 대통령의 공적과 성품을 생동감 있게 반영하고자 과거의 어진을 다룬 궁정화가들과 실록 역사가들처럼 책임을 다하는 막바지 작업에 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AI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 ‘넥스트 렘브란트’ 등의 시도가 있으나, 그럼에도 전통적 기법과 현대적 해석이 생생하게 공존하는 오 작가의 예술세계는 기계의 정확성만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독창적 문화유산의 영역에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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