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위에 덧대어진 삶의 질감, 치유의 이야기들
텍스트 위에 덧대어진 삶의 질감, 치유의 이야기들
  • 임세정 기자
  • 승인 2020.06.15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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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작가
강운 작가

구름 작가 강운, 빛의 글씨를 써내려가다
바람과 구름과 물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가 강운의 다양한 작품활동 중에서도 대중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구름 작품이었다. 평온하고 무심한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치열함과 변화무쌍함의 역동성을 담고 있는 강운 작가의 구름 작품들은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함께 변화해왔다. 그가 젊었을 때의 구름은 욕망과 꿈이었고,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삶과 자연, 그리고 주변에 대한 겸허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20년이 흐른 지금. 그의 작품세계가 ‘구름’을 벗어나 ‘빛’으로, 수많은 텍스와 색체로 구성된 결-질감(마띠에르[matière])을 향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신의 내면 또한 어떠한 깨달음과 변화를 겪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강운 작가는 자신에게 있었던 여러 가지 일상의 일들–음악을 들으며 정서적 동요 혹은 안정을 얻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거나, 책이나 영화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 등의– 속에서 느낀 인생의 희노애락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전의 구름이 비정형의 형태로서 규정되지 않은 그의 사고를 표현했다면, 지금 시도하고 있는 작품들은 내면의 깨달음이나 느낌, 나아가 개인의 성찰들을 이전보다 분명한 텍스트와 질감으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강운 작가는 “뭔가를 쓴다는 것, 적는다는 것은 동양에서 수행의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저 또한 기록함으로써 과거의 나와 마주치고, 나에게 화학 작용을 일으킨 모든 상황들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해, 아주 사회적인, 세계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텍스트로 적어내고, 다시 물감으로 색을 입혀 치유하는 것이 이번 작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빛’이라 말한다. 화가에게 빛은 곧 색으로 표현되듯, 작품에 입혀놓은 색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이해와 연결된 자신만의 색이며, 이를 보는 관람자에게는 그들만의 의미로 다가오는 색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전의 구름 작품이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변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작품이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 추상의 세계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화폭에 담아낸 상처에 대한 메타포
혹자는 ‘시인이라는 낱말의 동의어는 화가’라 말하기도 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텍스트로 담아내면서도, 그것이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각기 다르게도 해석이 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한 편의 시(詩)’와도 닮아있다. 그가 화폭 안에 담아낸 텍스트들은 누군가와의 대화이기도, 자기 자신과의 독백이기도, 때론 시대의 정신이거나, 굴하지 않는 의지기도 하다. 그리고 그 위에 입혀낸 색체들은 감정과 깨달음, 치유를 전한다.
그의 작품 중 하나는 아내와의 사별 뒤 딸과의 대화를 담고 있다. 아내,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그들이 공유했던 ‘우울’의 감정들. 그리고 어렵사리 겪었던 치유의 시간들이 치밀한 텍스트의 조각들과 ‘보라’의 색체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는 그가 겪어낸 삶의 질감, 하나의 마띠에르가 된다. 광주의 지도를 그려넣고 노란 빛을 입혀낸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을 지도에 담아내고, 그 위에 생명의 5월을 상징하는 연초록을 입혀낸 것이 역사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아름답게 피어난 연두빛 새싹 아래에는 수많은 이들의 잔인하고도 끔찍한 죽음이 있었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질감의 하나다.
구름과 물, 바람 등을 담아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강운 작가는 ‘솔직’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담담한 열정, 우울한 치유, 명료한 혼란. 인간이 품고 있는 수많은 감정의 모순들이 보는 이들마다 다른 감상을 느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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