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교육철학을 정립한 가장 토속적인 추상화 조류 개척자
한국 미술교육철학을 정립한 가장 토속적인 추상화 조류 개척자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6.15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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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2/3는 미술과, 나머지 1/3은 산악인으로서 자연과 교감한 추상화 같은 삶”
화가 양철모 작가/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前 미술교육대 교수
화가 양철모 작가/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前 미술교육대 교수

화가는 진정한 화두를 찾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색공으로만 표현하는 사람이요, 끝없는 해답을 찾아 묵언 정진하듯 시공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이 그림이라 정의한 화가 양철모 작가. 그는 한국의 신화와 문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파격을 보여주었으며, 자연에서 얻은 심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한 추상화가이자 한국 현대미술사와 미술교육분야에서 활약한 교육자, 그리고 미술전시전문가와 미술인문학자 외에도 산악인이라는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은은한 빛깔의 무늬로 표현한 산의 옹골찬 자태, 한국인의 골수에 새겨진 관습적 가치들을 단청과 전각, 와당문의 형상으로 변형해 액션 페인팅의 점묘 효과로 기록한 양 작가의 미술인생은 우리의 조형미를 독창적으로 해석한 추상화가 유쾌한 전율을 선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장 없이 은근하게 풍화된 단청 빛처럼, 우리 고유의 멋을 가져온 추상화

독일 건축미술에 ‘바우하우스 선언문’이 있듯,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인 화가 양철모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포괄한 한국현대미술사회 선언문을 홍익대 미대 61학번으로서 동료들과 신문에 기고하며 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주요 평론에서 ‘덧없는 의식과 자유로운 무의식’이라 설명한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기법은 여느 액션 페인팅이 강렬한 색과 우연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반복과 교차,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의 반발력과 표면장력으로 굳힌 양감이 인상적이다. 양 작가는 1960년대부터 자유로운 붓터치와 색과 형태의 중첩으로 복고적인 단청의 선과 오방의 화려한 빛, 고대 벽화와 암각의 문양까지 섭렵해 한국 추상의 새로운 화두를 연 인물이다. 그리고 빛바랜 단청을 잘 활용한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의 무제 시리즈처럼 한국의 정서를 재구성하고 기둥과 서까래, 처마와 기와 소재를 종횡으로 교차시킨 선을 사각과 마름모로 변형시킨 형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색면추상이나 선분할 추상과 달리, 뿌리기 기법으로 점선과 공간 채우기를 시도하며 은폐로 인한 명암, 끊고 지우는 해체보다 사물 위에 뿌려서 불규칙 패턴 사이로 보는 듯한 ‘오브제 덮기’는 양 작가의 작품을 한층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불교미술이라는 조류는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사찰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에 그런 용어가 생겼다고 지적하는 양 작가는, 인터넷에서도 검색할 수 있는 다수의 논문을 저술한 미술교육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때로는 벽지처럼, 혹은 양서류의 생생한 피부표현 같은 ‘뿌려 만든 양감’ 외에도, 양 작가에게는 작가의 근원이 나고 자란 토양이라는 토속신앙의 떡잎이 있었다. 그 떡잎은 국가와 지역, 환경을 먹고 자라나기에 양 작가는 한국의 문화와 불교의 토속신앙이 결합된 문화를 흔쾌히 미술로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전의 제에 올리는 바라춤과, 기와 마구리에 새긴 와당문(瓦當紋)의 양각을 뚫고 나온 도깨비 형상을 뿌리는 기법으로 표현하며, 공포마저도 토속의 것에서 차용해 왔다. 그런 양 작가에게는 사실적인 유화물감으로도 은근하고 희미한 세월 속에 원래의 선명함이 파스텔 톤으로 풍화된 오방색과 단청의 은은한 미학도 포용하는 여유와 관록이 있다. 

한반도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며 만든 페르소나, ‘산’과 푸른빛 재구성

이렇게 현실 중심의 추상을 추구했으며, 과거의 영광이 아닌 현재의 단청을 그려 낸 양 작가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황토의 빛깔에 이어 울트라마린에서 코발트블루까지 온 세상의 푸른빛을 재해석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미술의 내세우지 않는 은은함을 조상들이 만든 제례의식과 가구, 생활 공예, 건축처럼 소시민적인 요소에서 찾으며, 실경 안에서 시간에 따라 표현방식과 톤을 바꾸어 이제는 역사와 전통, 문화와 종교적 요소 대신 체험하기 쉽지 않은 대간과 종주의 웅장함을 개인의 조형능력으로 재구성하는 추상을 이뤄가게 된다. 그런 양 작가의 페르소나에 가까운 것은 취미와 업이기도 한 ‘산’이다. 그리고 과거 중국의 산을 그린 산수화가 장가계의 경우처럼 실제 명승지의 다채로운 표현임을 깨달았기에, 추상화 또한 실제의 형상을 우리의 조형미로 표현하는 방법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 진주교육대학에서 드물게 부산교육대학으로 전출하며, 일본 후쿠오카대 연수교류로 받은 선진미술이론을 무료로 한국 미술교육자들에게 전수하는데 참여한 양 작가는 한국색채기호학회의 1.5세대에 속하면서 1세대 원조멤버들 못지않은 인물이다. 

당시 김수석 교수를 주축으로 학회의 부산지회가 이뤄낸 전성기에 기여했으며, 지금은 고문으로 후배들에게 미술교육 철학을 전수하는 양 작가는 지역 전시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제 51회 부산시문화상 전시예술부문을 수상하고, 적은 예산으로도 부산비엔날레의 이름을 드높인 제도개선위원장으로서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이러한 체력과 정신력 외에도 예술가로서 감각을 키운 비결이 바로 등산이라고 말하는 양 작가는 동래고 동창들이 모인 산악회 고문으로 백두대간, 낙동정맥, 낙남정맥의 사계를 종주했을 뿐 아니라 주왕산을 20회, 한라산을 37회 오르며 새로운 추상산수화를 그리는 기반을 잡기도 했다. 또한 교직에 있을 때는 방학 때마다 제자들에게 지리산, 소백산, 덕유산 등을 학창시절 중 한 번 이상 3박 4일 일정으로 종주할 것을 권하며, 산과 하나가 되어 고사목의 스러짐과 한겨울의 능선을 직접 보고 표현하는 예술가가 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편, 최근 양 작가는 개인의 성취를 보여주는 개인전보다 그룹전 교류에 관심이 많아, 대중들이 작고한 작가부터 현역까지 부산을 빛낸 미술가들을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1960-70년대 부산미술:끝이 없는 시작>에도 참가했다. 탁월한 시대감각을 지닌 이 테마전은 부산시민미술관에서 5월 15일부터 9월 8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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