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바람에 둘러싸여 편안히 놓인 나의 의자, 큰 숨 쉬며 갖은 상념 향해 말을 걸다
파란 바람에 둘러싸여 편안히 놓인 나의 의자, 큰 숨 쉬며 갖은 상념 향해 말을 걸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4.10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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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오브제인 의자와 열망하는 푸른색의 여러 상징들을 담아"
이미경 회화작가 봄 밤  40.7×27.0cm  Acrylic on canvas
이미경 회화작가 봄 밤 40.7×27.0cm Acrylic on canvas

의자는 상념과 사색, 휴식처럼 인간의 마음을 의인화하기 쉬운 오브제다. 그래서 화려한 의자는 권력, 낡은 의자는 몰락, 소박한 의자는 추억을 상징한다. 여행 중 발견한 바닷가의 버려진 의자들을 보며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고 페르소나로 삼은 이미경 작가의 작품 속 의자들은 푸른 배경 속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 가장 평범한 일상과 휴식의 도구인 의자를 놓을 자리로 자신이 사랑하는 푸른색을 고르고, 맑은 날씨의 하늘을 바라보며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는 저녁의 상쾌한 공기를 호흡하는 이 작가의 그림은 매혹적인 빛깔을 보여주는 자연현상에 바치는 비구상이자, 관객을 응시하는 화가의 잔잔한 삶에 대한 초상이기도 하다.

선명한 푸른 빛 자연의 요소에 영감 얻어 ‘의자’라는 조형언어로 여백 채우기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 속을 날으는, 나의 숨을 파란색에 담아 의자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미경 작가는 가족과 새해를 맞아 바닷가 여행을 갔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하염없이 겨울바다를 향한 의자 세 개를 보게 된다. 노랑과 빨강색의 이 낡고 소박한 의자들은 갖가지 형상의 각진 모양들로 나란히, 혹은 마주보며 여행의 추억과 뒤섞여 이 작가의 회화적 조형 언어가 되었다. 이 작가는 평범하기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할 여지를 주는 의자를 마음속으로 불러온 뒤, 철학적이고도 외로우며, 차가운 상징성을 지닌 푸른색의 배경 속에 내려놓았다. 푸른색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고민하던 이 작가에게 의자란 명상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오브제이기도 했다. 

소품보다는 큰 사이즈로 그림을 제작하며 기술과 기교 표현보다는 색감이 제일 먼저 들어오도록 여백의 미를 추구하거나, 혹은 오브제로 꽉 채우는 이유도 현대인들이 그림을 통해 티타임처럼 편하게 휴식을 느끼며 명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광주에서 여수로 온 이 작가는 생각을 수납할 공간으로 자연을 골랐으며, 문득 바라본 산의 푸른 물과 꽃이 피는 계절의 공기, 푸른 자연현상의 메타포인 하늘과 바다의 색감으로부터 여러 메시지를 전달받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번 새롭게 그려내는 신작들을 소개하곤 하는 이 작가의 작품에는 복촌갤러리에서의 <꽃잠>, 진남문예회관에서의 <낮달>, 갤러리린의 <꽃눈예보>, 교동아트스튜디오 <바라보다> 개인전처럼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많다. 작품 중 애착을 느끼는 작품도 따로 그려 이어붙인 <숨>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내면을 합쳐, 한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마음이라는 양면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은 사진과 달리 휴식, 명상의 의미 품기에 각각의 색을 전달하려 해

외로움이 깊어지면 마음에 폭풍이 일듯, 냉기가 너무 강해도 열을 내기에 이 작가 또한 푸른색에서 차가움만을 읽은 것은 아니다. 회화가 가진 상징성과 의미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작가는 감정이 무뎌진 현대인들에게 푸른색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는 한편, 붉은색으로 강렬한 말문을 트기도 한다. 검푸른 배경 위 흰 사발 위에 떠오른 붉은 달, <말을 걸다>는 차고 이지러지는 속성을 지닌 붉은 달이 순환을 끝내고 쉬러 들어가는 그믐달이 되어, ‘몰’의 두 가지 의미인 소멸(歿)과 가라앉음(沒)을 보여준다. 또 드러누운 달로부터 떨어지는 붉은 꽃비는 고즈넉이 어둠과 공존하는 달빛을 장식한다. 이 작가는 이 빛을 <쉼>이라는 작품에서처럼 푸른 배경 속 의자를 감싸는 광채와 숨결로 만들었으며, 푸른빛도 여러 채도로 입혀 나가 마치 바다 속이나 극지방 오로라처럼 입체적이고 신비로운 푸름을 표현하기도 했다. 노을이 지고 땅에는 어둠이 깔렸으나 하늘은 푸른빛이 남아 밤을 여는 경계를 만드는 자연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더욱 오묘하고 복잡한 색을 표현하고자 밑색을 덧칠해 올리는 것도 이 작가의 색면추상적 특징이기도 하다. 

또 그림이란 삶이자 소신이며, 작업의지만 있으면 평생직업인 화가는 어떤 환경에서도 캔버스를 채워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7세에 그림을 마스터했지만 중년이 되자 어린이의 관점으로 그렸다는 피카소처럼, 이 작가는 여수에서 운영하는 파랑새미술학원의 수강생들 중 가장 창의적일 나이인 4세 어린이의 작품으로부터 새로운 시각을 느낀다고 한다. 신혼첫날밤 겸 짧은 단잠을 의미하는 ‘꽃잠’을 달의 이미지와 접목했던 이 작가는, 앞으로도 색의 변화무쌍한 접목으로 사진에 담지 못하는 미술작품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느낌을 전달하겠다고 한다. 
이 작가는 최근 연 평균 10~15회 이상 전시를 하고 있으며, 미술관 뿐 아니라 담양의 해동주조장, 동신대박물관, 커피베이 구리역점 갤러리 초대전 등 그의 작품과 어우러지는 장소는 많다. 모두가 힘든 올해, 이 작가는 자신을 표현함과 동시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일 새 작품들을 전시회에 소개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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