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의 퍼스널 컬러인 ‘서경’과 서법을 이 시대에 재현, 동서양 공존도 가능한 편액을 쓰다
추사체의 퍼스널 컬러인 ‘서경’과 서법을 이 시대에 재현, 동서양 공존도 가능한 편액을 쓰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4.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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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의 미학을 다각도로 고증한 추사필법론으로 소전예가의 아름다운 얼굴을 작명하고, 송연묵과 마한지의 웅장한 성질로 외부공간에 걸맞는 필세를 그려낸 고전 서법연구의 정수”
항백 박덕준 작가/서예가/항백 세필서예·삼근재 서법가/서법연구가
항백 박덕준 작가/서예가/항백 세필서예·삼근재 서법가/서법연구가

지난해 열린 항백 박덕준 작가의 7회 개인전은 작품과 함께 묵서집 <귀(歸)>를 소개하였다. 전시에는 박 작가가 오래 연구한 추사필법론을 집대성하고 농묵의 전통서법으로 아트갤러리 예가에 붙은 새 건호인 <소전예가>를 쓴 원본 편액 4점까지 전시하여 서예인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회화와 문법, 언어학과 어문학이 다르듯, 서예와 그 규칙을 논하는 서법을 함께 연구해 정통성 있는 필법과 추사체 분석에 일가견이 컸던 박 작가는 생소한 글자의 묵직한 기세를 표현하는 서예예술가이자, 서법의 예술성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서법연구가이기도 하다. 소멸되거나 변형되어 묻혀 있던 추사서법의 본질을 발굴하는 한편, 관계론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을 전하는 박 작가의 작품 활동과, 그의 글자에 숨겨진 비범한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감상해 보자. 

탄탄한 필력을 바탕으로 추사필법론을 정리하여 추사서법 해석의 새 장을 열다

서예가이자 서법연구가인 항백 박덕준 작가는 하석 선생을 사사하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에 경도되어 여러 편의 연구작품과 추사체를 재해석한 논문, 추사필법론 묵서집을 발간하며 탄탄한 서예서법 이론과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 작가가 2019년 11월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된 “돌아가리라-귀(歸)‘를 주제로 연 <제 7회 박덕준 묵서전>에서는 2008년 출간한 작품집 <관도사획전> 이래 역작으로 꼽힐 묵서집 <귀(歸)>가 소개되었으며, 일반 도록과 다른 개념의 구성으로 화제가 되었다. 4파트로 구성된 저서에서는 이번에 전시할 <신작>과 추사간찰 하나를 주제로 한 <연구작품>, 여행 중에 지인들과 어울려 쓴 <객중서> 그리고 작가가 정리한 <추사필법론>이 저술되어 있다. 
작가가 정리한 추사 필법론은 강하고 분명한 동작으로 처음 시작하는 제 1동작 기필, 한 호흡 쉬었다 송곳으로 모래를 찌르는 깊이를 유지하며 그어가는 형세의 제 2동작 행필, 흐트러짐 없이 먹과 지면에 밀착시키는 제 3동작 수필에 이를 때까지 형태보다는 동작과 힘을 유지하는 3가지 조건이 명쾌한 것이 추사체 필법의 큰 특징이라고 한다. 굳센 방필을 유지하는 예서에 근원을 두어 해서와 행서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박 작가는 추사서법을 재현할 최적의 소재인 한지와 송연묵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화선지에 유연묵을 쓸 때보다 묵직하고 선명한 이 지묵의 결합은 묵장 한상묵 선생의 송연묵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밖에 충북 무형문화재 제 17호 황동훈 선생이 닥나무와 황촉규로 만든 단구전통한지, 보성삼베랑 이찬식 선생이 닥지가 아닌 삼지로 만든 마한지이며, 먹이 인쇄된 듯 선명하고 압도적인 필법과 발묵을 그대로 보여주며 추사 선생이 생존했던 시기의 필체의 그 느낌을 살리는데 가장 적합한 소재라고 한다. 

서양식 건축 공간에 한국의 전통서예를 접목한 <소전예가> 공간예술 재창조

박 작가는 다양한 문헌자료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추사의 서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전시와 묵서집 발간은 그런 작업 과정을 한단계 마무리 짓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기존 서예와 달리 필법과 서법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박 작가의 서법 개념은 문자, 그리고 한문으로 표현을 짓는 문장, 마지막으로 필법과 묵법을 합친 필묵이라는 3가지 영역에 있다. 문자의 변천과 함께 2천 년 서법의 역사 속에서 서예에도 사조가 있다고 말한다. 서양미술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다르듯이 서법을 이해하기위하여 서법 사조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예는 글·기록보다는 예술의 정수라는 사조가 있기에, 박 작가는 글자의 기가 센 추사체에 매력을 느꼈으며, 형상만이 아닌 당시의 서법사조와 관계론적 화두를 보며 글씨가 예술이 되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묵법의 표현법체계를 설명한 첫 번째 서법서 <필묵법산고>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남다른 과정을 통하여 박 작가는 다른 관점에서 추사의 체계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 전체를 한 눈에 보는 관계성을 파악하고 설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천년학>의 포스터병풍작업도 그런 관계성에서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서양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아트갤러리 예가>에 흰 벽돌로 된 외관이란 이름의 ‘소전예가(素磚藝家)’를 권유해 마한지에 송연묵으로 편액작품을 쓰고, 전각작가 박여 김진회 선생이 작업하여 현대식 건물에도 어우러짐이 뛰어난 편액 현판이 완성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건물 내 서예공부방인 묵서실에는 ‘소재(素齋)’, 두보의 시에서 차용한 이름을 지어 양각을 한 ‘이위려(爾爲廬)’, 호수에 여름 구름이 비치는 정자라 ‘하운정(夏雲亭)’이라 붙은 3개의 편액도 완성되어 전통한옥에나 있을 법한 편액이 현대식 건축물에서도 네이밍의 운치로 느껴진다는 격찬을 받았다. 

추사 묵서집과 독도 묵서전, 이름/편액작업과 ‘글씨를 붓으로 쓰는 그림’은 즐거운 일..
평생의 꿈은 문자 연구 성과를 자료로 묶어 내는 일

박 작가는 추사 선생이 글씨만 보아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다는 ‘서경’을 은유한 데서, 조선시대 명필이 서체로 보여준 ‘퍼스널 컬러’ 작법도 대단했다고 설명한다. 글씨의 본질을 터득하듯 사람의 성향을 파악해, 박 작가는 공간과 배치감을 이해한 건축물 편액의 경지를 보여준 것 외에도 지인의 이미지를 따 글귀로 쓴 이름전을 열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씨를 붓으로 쓰는 그림”을 모토로, 2년 전 독도의 날 기념으로 연 <우산무릉 묵서전>에 이은 두 번째 독도전 겸 6회 개인전 <독도 묵서전>은 2017년 쓴 <해국망> 등 다양한 묵서를 소개한다. 
이는 울릉도에서 자란 박 작가가 망망대해 위에 핀 해국(바다국화)에서 망(바람)의 속성을 느끼고 지어준 이름이지만, 해국의 꽃말 중 하나도 “바라다”였기에 박 작가의 작명 내공을 입증해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시에는 항백송에 붙인 논어 구절 <세한연후(歲寒然後)>, <안용복 깃발-조울양도감세장신안동지기(朝鬱兩島監稅將臣安同知騎)>처럼 도일로 항거를 한 독도 수호자 안용복 선생의 기백이 느껴지는 묵서도 있었으며 박 작가는 향후에도 독도묵서를 지속할 뜻을 밝혔다. 한편 박 작가는 소전예가의 좋은 공간에서 추사체를 흠애하는 동호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체험하며 묵서를 내는 삼근재의 확장판 같은 활동을 하고싶다고 전한다. 추사박물관과 추사고택등 자료와 작품을 감상할수 있는 공간은 많지만 그의 서법을 해설하고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이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또한 박 작가에게는 서법활동에서 얻은 평생의 꿈이 하나 있다. 그동안의 문자연구 성과를 자료로 집필하는 일이다. 고대문자는 한나라 전후 혁신을 거듭하였고 그 과정은 문자를 간략화 생략화 하는 일이다. 혁신은 한나라 말기에 1차 정리되었으며 초서와 예서는 그 결과 나타난 서체로 현대문자의 원조에 해당한다. 즉, 고대문자에서 현대문자로 변화의 주된 논리는 ‘생략’이며 이는 혁신적 원리를 가진다. 그 생략의 원리를 정리한 내용이다. 초서가 되는 원리 또한 이 범주 안에 있다. 내용을 정리한 후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일개 서예가가 감당하기 방대한 작업이지만 일부라도 집필하는 일이 앞으로 과제라고 전했다. 더불어 서예예술을 매년 전시회로 소개해 관개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이이지만 이 자료를 완성하는 일은 평생의 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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