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흰 빛에 생명이 있는 나무, 그리고 기의 움직임을 중첩시킨 ‘THE RED IN BLUE’
투명한 흰 빛에 생명이 있는 나무, 그리고 기의 움직임을 중첩시킨 ‘THE RED IN BLUE’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07.10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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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과 정렬을 반복하는 생명의 기류를 존재의 궁극으로 이미지화한 사색의 조각들”

서양화가 서경자 작가
서양화가 서경자 작가

[서울=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순수하고 강렬하며 고유성을 지닌 3원색은 서로 섞어 덧씌울수록 색료 감산혼합의 중첩이론에 따라 혼탁해진다. 먼셀 색표와 오스트발트 표색계가 도식화했듯 원래의 의도보다 짙어지는 이 혼합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수많은 작가들은 색을 덧씌울 때 반드시 물과 젯소의 도움으로 맑은 이미지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 3원색법의 상식과는 정 반대로, 색료를 덧칠할수록 군더더기 없는 투명함을 만들어 낸 서양화가 서경자 작가의 접근법은 독특하다. 마치 동양화가들이 여백을 활용하듯 바탕에 흰색을 겹겹이 쌓아올림으로써 동양의 중용 속 서양화의 공식을 따르되, 강렬한 원색으로부터 정적인 사색을 도출해 낸 것이다. 그렇기에 우울함 대신 밝고 청량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블루’에서, 강렬한 ‘레드’로 광활함 속의 계절변화와 인간의 삶을 중첩시키는 이번 ‘THE RED IN BLUE’라는 새로운 시도는, 서 작가가 표현하는 하늘과 땅, 생명의 영혼을 잇는 주제를 여는 디테일한 열쇠고리가 될 것이다.

 

형형한 블루에서 레드의 복합적인 숨결을 담아 낸 첫 시도, ‘THE RED IN BLUE’
지난 15년 간 블루 컬러를 테마로 슬픔과 고독, 우울함 대신 청명하고 환한 명상과 사색의 이미지를 표현해 온 서양화가 서경자 작가가 개인적인 삶의 체험에 따른 터닝 포인트를 계기로 명상의 영역을 레드 컬러로 넓히기 시작했다. 서 작가가 펼치고 있는 철학과 명제는 ‘명상(meditation)’이며,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THE RED IN BLUE’는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7전시관에서 진행된 서 작가의 제 28회 개인전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작가 본인의 내성적인 기질을 화폭에 옮기는 과정이 창작보다는 명상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설명하며, 내면의 푸른 하늘과 땅의 이상을 표현해 온 서 작가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광활한 사막을 경험하며 새로운 레드 테마를 떠올리게 된다. 진한 블루의 우울함보다는 밝은 블루에서 희망을 읽었듯, 여행에서 느낀 황량하고 거대한 굴곡과 바람이 일궈낸 광활한 자연의 신비로움을 모래사막의 황색보다는 푸름과 대비되는 붉은 계통으로 해석하겠다는 서 작가의 의도는 ‘블루 안의 레드(THE RED IN BLUE)’라는 독특한 테마가 되었다.

이 테마는 본래 서 작가의 흰색에서 출발하며, 흰색은 배경이 아닌 기본 색감을 내기 위한 중요한 소재이자 전체 톤을 결정하는 기반이다. 흰색을 수십 번 덧칠하여 눈부실 정도로 순수한 바탕색을 만든 뒤, 스토리텔링을 하는 색을 얹는 방식은 일반적인 그라데이션 기법과 비슷하면서도 색의 채도와 경계를 보여주는 대신 이를 허물면서 색이 지닌 족히 수십만 가지는 될 법한 속성과 성격을 그려낸다.

사색에도 그라데이션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이번 전시에서 서 작가가 오랫동안 작품에서 자연의 조각들을 생각 속에서 중첩시킨 과정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번에는 <The red>에서 자연의 바람과 푸른 하늘, 그 아래 산과 땅, 그리고 중간에서 생명의 기운으로 물결치듯 진동하는 ‘푸른 이상향의 하얀 이미지’인 나무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전에는 ‘블루’로 국한했던 빛의 스펙트럼이 이제는 블루는 물론 옥색, 맑은 하늘빛, 그리고 레드에서 파생된 주홍빛에 이르는 땅과 하늘, 그리고 흰 나무가 상징하는 ‘영혼’의 조각을 경계 없이 연결해 주고 있다.

정성껏 덧칠된 흰빛은 이번에도 푸름 속의 붉음이 공존하는 가운데 생명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영혼의 상승을 돕는다. 나무는 이전에 나뭇잎, 이슬, 꽃 등으로 은유했던 생명의 요소들처럼,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이나 생명의 기운이 퍼져나가 적당한 장소에서 어우러지는 형태에서 명상으로 얻어진 우주, 그 안의 생명체가 품은 태곳적 기의 움직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1년 시도했던 <meditation>의 연작인 <meditation(The red)>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서 작가는 흰 꽃잎을 닮은 영혼의 형상이 춤추듯 상쾌한 푸른 기운에 합일되며 바탕색의 중재 아래 어우러져, 두 컷을 접목하면 밝은 하트의 형상처럼 보이는 이 새로운 명상의 결과에 큰 애착을 보인다.

여유와 평화로움을 느끼며 작가의 정신세계에서 태동된, 누구도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는 난해한 주제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진귀한 명상의 풍경으로 그린 서 작가의 작품에는 낯선 장소로의 소통 후 좋은 기운을 갖고 돌아오는 일련의 여정이 나타나 있다. 이는 주된 창작의 영감이었던 독서와 명상 외에도 여행에서 얻은 변화이자, 맑고 투명한 흰빛 위 얹힌 블루가 자연의 소재와 영적인 관계를 맺은 레드를 품으면서 나타난 희망의 윤회이다.

이러한 윤회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는 물론, 2014년 당시의 <meditation(The Blue)>보다 훨씬 여유롭고 평화로운 소통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또한 서 작가는 미궁과도 같은 선의 중첩을 시도한 것에 대해, 이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인간군상을 암시하며, 십자 형태로 막혔다 열리는 구도는 나가서 소통하고 어울리는 접점을 추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우주와 생명체의 기운이 내재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옥색과 같은 동양의 색을 고름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서 작가는 지난 27회의 개인전과 300여 회의 그룹전으로 아시아 시장에서도 인정받은, 2008베이징올림픽 초대전시, 중국북경미술관 및 상해문화원 소장 작가이기도 하다.

4계절의 이미지와 사막의 경이로움을 ‘레드’를 차용하여 명쾌하고 편안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이번 전시에 이어, 앞으로도 서 작가는 ‘THE RED IN BLUE’ 테마 및 생명이 있는 나무, 그리고 기의 움직임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작품세계를 다져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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