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하는 아픔을 넘어, 레터링 기법과 조형적 화풍으로 싹틔워 희망의 꽃 키우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픔을 넘어, 레터링 기법과 조형적 화풍으로 싹틔워 희망의 꽃 키우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3.12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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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상징하는 돌로 시들지 않는 사랑 ‘아마란스’의 의미 새겨 평생학습대상 특별상 영예”
화가 오진상 작가
화가 오진상 작가

지난 해 교육부가 주최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제 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는, 교육소외계층이나 만학도이면서도 평생학습에 정진해 타인의 꿈을 키워줄 만큼 성장한 우리시대의 밝은 인물들을 수상자로 볼 수 있었다. 그 중 서양화가 오진상 작가는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프로그래머가 되었으며, 불운하게도 다시 디스크에 시달리다 수술 실패로 발병한 CRPS라는 큰 고통 속에서도 서양화를 공부해 제 29회 대한민국회화대전과 세계평화미술대전, 국제문화미술대전에 연이어 입상하며 창작자들 사이에서 인간승리의 표본이 된 예술가이다. 온 몸의 관절이 손상되었음에도 손끝에 붓을 매달아 그림을 완성한 르누아르처럼 미술에 삶을 걸고 희망으로 채색해 가는 오 작가는, 교육부장관이 참석한 자리에서 특별상(유네스코상)을 안게 해 준 자신의 그림과 인생에 더 크고 새로운 캔버스를 준비해 주고 싶다고 전한다. 

오랜 고통 속에서도 매주 껍질을 깨고 나오는 작가의 꿈, 경계 너머 행복에 고운 색 더해
눈 쌓인 마천루의 흰 빛이 태양을 등지면 푸른 하늘빛과 똑같은 톤의 그늘을 만드는 2016년 <몽블랑> 시리즈로 극사실적이고 오묘한 느낌을 보여주며 널리 회자된 화가 오진상 작가. 그는 매일 아침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오 작가의 그림 작업여부는 그 날의 신체 컨디션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1주일 중 5-6일은 인간이 느끼는 10단계의 통각을 모두 감내하는 천형이라 불리는 CRPS가 주는 통증을 다스리며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운 좋게 기도가 하늘에 닿아 3,4단계인 1-2일 정도는 캔버스 앞에 앉을 수 있다. 소중한 반려자인 아내의 격려 속에서 그는 캔버스 위에 폼을 깔고 인두로 녹인 폼으로 한글을 새긴 후, 돌로 쌓은 꽃의 형상 안에 아름다운 사랑과 배려의 색을 입혀 나간다. 문화센터에서 배운 그림에 흥미를 느껴 2014년 계원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고, 데생과 색감에 재능이 있다는 평가에 힘입어 오 작가는 낭종제거 척추교정술 실패와 신경차단술 불가판정 후 휠체어에 앉은 채로도 물감을 짜고 섞을 기운을 냈다. 이상적인 풍경을 현장이 아닌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는 그는 신의 섭리로 만든 자연의 선물인 풍경과 정물, 그리고 사실적인 인물 구상화들을 그렸다. 그러다 오 작가는 2017년부터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아마란스의 어원에서 온 영원한 사랑을 전달하고자 반구상으로 그리게 된다. 아마란스의 전설 중에는 피로 물든 날갯죽지라는 장애로 인해 존재를 부정당하고 영원히 시들지 않기를 꿈꾼 천사의 사연도 있다. 그럼에도 슬픔보다는 믿음과 사랑의 적극적인 의지로 살아 와 대학원 졸업 후 취업까지 이뤄냈던 오 작가는 캔버스 위에 깐 폼을 인두로 녹이고 사랑에 관한 성경 구절을 한글로 새겼으며, 아마란스의 어원처럼 불변의 속성을 지닌 돌 조각으로 만든 꽃잎 테두리 안에 고운 색을 입힐 이유를 찾아냈다. 그래서 그의 <아마란스> 시리즈는 영원함을 축적한 아름다운 꽃에 안식과 치유, 영원히 존재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상처를 안은 이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더 쉽고 대중에 가까워진 레터링 아트 시도, 컨디션과 캔버스의 한계 넘는 창작 꿈꾸다
한편 그림에 레터링 아트로 성경과 잠언의 자음과 모음을 덧입히는 오 작가는 한글의 조형미를 이해하고 서체를 전사체에서 훈민정음체로 바꾼 이래 더 예쁘고 편안해졌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작품 10점을 소개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20호 소품과 30-50호 규모의 그림들을 전시할 예정인 그는 다작이 불가능한 대신, 한 번의 시도에도 장인정신에 버금갈 정도로 집중하는 공을 들여가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그런 그의 이야기가 계원대 교수진을 거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귀에 닿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여 수상자 중 개인 팀에 6개뿐인 귀한 상을 탄 것도 하루 뒤의 상태를 보장할 수 없는 작업 컨디션임에도 연 1-2회 전시하는 창작 의욕 덕분이기도 하다. 장애를 극복한 열정으로 사회의 귀감이 되는 여느 작가들처럼, 오 작가는 고통을 삶의 무게로 은유해서 작품에 족쇄를 채우는 대신 덧칠에 필요한 집중과 정성으로 극심한 통증을 잠시 잊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그림은 훨씬 밝고 섬세해져 갔고, 기존의 스타일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가운데 장애라는 외적 요인 말고도 작가로서 자신을 수식하는 새로운 도전을 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오 작가는 스타일리시한 작가들이 공간과 건물을 테마 작품으로 채우는 성향에 관심이 많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그것은 건축 양식이나 인테리어, 건물 외장일 수도 있으며 캔버스를 벗어나 벽을 장식하는 오브제, 아트월이나 벽지 공예일 수도 있다. 오 작가의 희망적인 눈빛이 깎아지른 마천루에서 나와 불멸의 꽃을 피웠듯이, 양감과 입체감을 겸비한 레터링 아트와 정통 서양화를 연마한 오 작가의 감성은 새로운 색을 기다리며 더 새로운 기상을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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