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품격 묘사를 넘어 눈빛만으로도 삶과 정신을 고증하는 표현주의 초상기법 전문가
인물의 품격 묘사를 넘어 눈빛만으로도 삶과 정신을 고증하는 표현주의 초상기법 전문가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3.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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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주관을 허락받는 유일한 인명사전 기록자, 초상화가라는 명예로운 이름에 관하여”
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 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 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시대의 아이콘(Icon)’은 그 시대에 유행하는 복식과 장신구, 배경을 무대로 묘사한 유명인물의 흉상이나 전신을 그린 광고전단으로부터 유래된 표현이다. 아이콘의 의미가 더 광범위해지면서 본래의 역할은 사심이 깃든 풍자와 각색인 캐리커처로 계승되었지만, 같은 사심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대상인물을 닮게 복제하되 그의 삶에서 보여준 기품과 명예를 먼저 떠올리도록 헌정과 경의를 담은 인물화는 초상화 예술분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후자에 속하는 품격, 르네상스 시대가 만든 인물 헌정의 의미를 우아하게 다듬어 계승하는 서양화가이자 초상화 전문화가, 국내 최초로 전문 초상화갤러리를 오픈한 오동희 작가의 삶 또한 그가 제작한 초상화의 인물들이 살아온 삶만큼이나 해당분야의 아이콘으로 손색없는 모범적 행보를 보인다.

초상화 하나만으로 이어진 40여 년 간의 과업, 유화 물감으로 편찬한 인명사전을 전시하다

현대에 들어 초상화는 지배계급의 권력과시와 소유, 재산개념에서 떠나, 공적인 인물이 상징하는 시대상의 영역으로 편입해 갔다. 한때 전속화가의 특권 속에 움직이던 초상화의 작가정신 또한 이동하여, 이제는 예술적인 표현주의와 인물기록의 사명감이 더욱 커졌다. 
그런 가운데 그림이라는 예술품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역사에 편입시킬 기록물이 가능함을 알게 되어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층이 만든 공식 초상화 개념은, 현대에 들어 특정 가문이 주도하는 명문가의 연대를 기록한 사진첩 대신 작가의 역량에 따라 설득력을 갖는 한 장의 인명사전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제에 적합한 작가 중 세계 갤러리들이 잊지 않는 한국인의 이름이 바로 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다. 홍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22세 이후로 초상화 한 분야에서 40여 년간 활동해 온 오 작가는 흡사 궁정화가와 실록 기록자들이 지녔을 법한 정성으로, 인체실측기법 ‘카논’에서 해부학 서적, 그리고 동서양 인물화가들이 공통으로 탐구한 음영법과 앤드류 루이스의 인체드로잉론에 이르는 지식을 탐구하며 수많은 데생과 채색 연습으로 실력을 다져 왔다. 

오 작가는 인물의 인상에 필요한 톤을 결정하고 인물의 눈꼬리와 입매로 표정을 만든 선구자인 다 빈치의 온화한 화법과, 얼굴 골격의 음영으로 연륜과 살아온 행적을 표현한 만토바 화풍의 궁정화가 만테냐 이래 서양의 유화로 인물의 족적을 가장 능숙히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온화한 음영으로 얼굴, 흉상, 전신상의 균형미와 근육의 흐름을 표현하며, 직업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복식사까지 연구해 초상화에 재현하는 오 작가는 지금까지 프란치스코 교황과 넬슨 만델라, 마더 테레사, 백범 김구와 같은 위인들에 19대까지 이어진 한국 역대 대통령들, 정재계 거물들의 초상들로 뛰어난 고증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통 유화의 매력적인 품격으로 인물의 업적을 살릴 뿐 아니라, 스케치 단계부터 인물의 인생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는 오 작가는 2012년 김수환 추기경의 공식영정을 제공받은 초상화 3점을 완성해 재단에 기증하고, 한서대 총장으로부터 역대 대통령 초상화작업을 의뢰받기도 했다.

까루젤 뒤 루브르 살롱 아트페어와 공식영정·헌정초상 전문작가, 
초상화갤러리로 이어진 서사

극사실적인 묘사로 위인의 아름다운 족적을 기리는 성향이 잘 맞기에,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정통 서양화의 품격으로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가 초상화이다. 파격과 다양한 시도에 천착한 서양 갤러리들도 한국에서 온 오 작가가 재현한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의 우아한 품격을 사랑해, 그 옛날 바로크와 로코코 문화가 꽃피던 과거의 영광을 떠올린 프랑스의 까루젤 뒤 루브르 살롱은 오 작가의 작품들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초상화와 함께 성화로도 이름난 베네치아 화풍의 대표주자, 조반니 벨리니처럼 오 작가는 종파를 초월한 성인들의 성화와 초상으로도 유명하다. 2016년, 오 작가는 가톨릭 교구의 특별한 성지인 한국에서도 아름다운 최후로 기억되는 순교자들을 위한, 2016년 천주교 어농성지 헌정 작품인 순교자 8인의 공식영정을 겸한 초상화 작업에 착수한다. MIFA아트페어가 주목할 만큼 오랜 서양화로 기본기를 다진 그는 유럽의 기법 뿐 아니라 한국의 전신사조(傳神寫照)를 따른 전신기법을 더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독창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얼굴묘사에서도 사실성을 강조하는 전신기법은 조선의 모든 화풍 중 수묵의 번짐인 선염법을 다루지 않고도 서역예술 못지않은 음영을 구현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 작가는 대상을 닮게 재현하되 눈빛과 주름 하나, 눈썹 한 올에도 대상의 기질과 고매한 정신을 담는다는 우리의 옛 초상기법 정신을 계승하며, 종교를 초월한 인간애로 순교자들의 아름다운 넋을 기렸다. 자발적인 경배와 헌정으로 초상화라는 한 우물을 파는 오 작가는, 확고한 개성 속에서 초상화의 특권의식을 명예로운 헌정으로 바꾸며 초상화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매력적으로 끌어올리는 행보 속에서 2016년 반포동에 국내 최초의 초상화갤러리, <오동희초상화갤러리>를 개장한 바 있다. 

초상화에 스토리텔링과 군중의 미, 빛과 그늘의 조화를 역설하던 렘브란트의 시도가 당시에는 거절당했지만 훗날 훌륭한 미술조류의 시작으로 여겨졌듯, 오 작가 또한 의뢰, 제작, 판매 및 소장이라는 정형화 된 루트로 생산되는 초상화 문화에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불어 넣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초상화갤러리를 통해, 소장과 감상 외에도, 친교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 뜻을 실현하고자 인테리어와 세팅에 세심한 관여를 아끼지 않은 오 작가의 시도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참신함으로 세간의 찬사를 받고 있다. ‘초상화가는 그림 외에도 역사, 문화의 소양이 깊은 기록자 겸 복원문헌연구가’라는 소명의식 속에서 묵묵히 작품에 몰입하는 오 작가는 위대한 화가들이 그렇듯 한국 초상화 사의 깊은 한 획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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