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공간의 부재로 지친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치유에 악영향 미친다
대기 공간의 부재로 지친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치유에 악영향 미친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3.12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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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 참고 치료 받는 아이들, 쪽잠 자는 부모 모습에 더 큰 아픔 느껴'
RMHC 코리아 부경미 사무국장 /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
RMHC 코리아 부경미 사무국장 /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

우리는 매일 당연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학교나 직장에서의 일과를 마친 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제와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일상을 보내며 때론 무료함과 지루함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삶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아이들은 병실 창문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어른도 견디기 힘든 치료를 하루하루 버텨낸다. 몰라볼 만큼 수척해진 어머니는 매일 밤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고, 병원 로비에는 며칠 째 같은 옷을 입은 아버지가 의자에 쪼그려 누워 쪽잠을 청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에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어떤 가족의 힘겨운 삶, 그들에게 잠시나마 평범한 일상을 느낄 수 있도록 힐링과 치유의 기운을 북돋는 공간을 만들어 제공하는 사업이 바로 ‘RMHC 하우스’다.

아이와 엄마를 위한 힐링과 휴식의 공간, RMHC 하우스

‘RMHC(Ronald McDonald House Charities)’는 어린이 환자가 더욱 편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환자 가족에게 숙소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70년대 미국, 중병에 걸린 딸을 간병하던 한 미식축구 선수에 의해 시작된 이 사업은 글로벌기업인 맥도날드에 후원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 현재는 전 세계 68개국에 400여 개의 하우스를 건립·운영할 만큼 큰 규모의 사업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앞서 언급했듯 ‘어린이 환자의 빠른 쾌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가족도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철학으로 삼는다.

우리는 흔히 가족 내 중증 환자의 발생이 가족관계의 분열, 경제적 고난 등을 야기한다고 알고 있다. 특히, 그 환자가 어린 아이일 경우 부모의 죄책감이나 무력감, 절망감 등은 말할 수 없이 크며, 가족원 중 환아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는 어머니는 더욱 커다란 부담감을 갖게 된다. 여기서 RMHC는 그 ‘영향’이 반대로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부모의 정신적·신체적인 상태악화가 오히려 아이들의 치료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RMHC 코리아의 부경미 사무국장은 “아이들이 곁에서 간호하는 부모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미묘해요. 이는 매년 연말 저희 재단에서 개최하고 있는 ‘울림백일장’에서도 잘 알 수 있죠. 지난 대상 수상작에서는 ‘나는 씩씩이 주사 세 방 맞아도 눈물 꾹 참는다/ 우리 엄마는 주사 한 방 안 맞아도 눈물이 뚝뚝뚝’이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너무나 가슴 아픈 말이었죠. 자기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우는 게 힘든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밝은 웃음을 보여주는 게 힘이 되리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도 RMHC에서는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러한 데이터를 축적해 왔으며, 하우스 설계에도 이 같은 부분을 반영하고자 힘쓰고 있다. 환아를 위한 시설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편안히 휴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을 확충하고 있으며, 여러 부모들이 모여 서로 가진 경험이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자생력 있는 기부 시스템 정착에 주력, 올해 서울 2호 하우스 건립이 목표

지난 2019년 4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부지에 오픈된 국내 1호 ‘RMHC 하우스’는 RMHC 코리아와 맥도날드, GS리테일, 이마트, LG, 현대리바트, 이건창호, KCC, OCI, 티센크루프, 귀뚜라미, 존슨컨트롤즈, 이마트, 경동월드와이드, 씰리, 코카콜라, 매일유업, 삼진어묵 등 수많은 기업이 뜻을 한 데 모아 만들어 낸 결실이다. 연면적 450평, 지상 2층 규모의 이 시설엔 숙박과 휴식을 위한 10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놀이방과 세탁실, 도서관, 휴게실, 공동 주방도 운영되고 있다. 병원 진료를 전후해 일정기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 RMHC 하우스는 중증·난치병 환아를 둔 가족이 병원 인근에 머무르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쉼터로서의 목적으로 건립됐으며, 현재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오픈 1년여를 맞이해가는 RMHC 하우스가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가 되는 까닭은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함께’라는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부경미 사무국장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저희 재단 또한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며 하우스 건립에 정체를 겪고 있기도 했죠”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말 많은 분들이 저희들의 생각에 공감해주셨고, 적극적인 동참의사를 표현해주셨어요.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 이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슬로건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RMHC 코리아에서는 재단 운영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확충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맥도날드 해피밀을 구입하면 5센트가 기부되는, 이들의 정체성과도 같은 기부모델을 더욱 확산시킴으로써 앞으로의 사업 추진에 지속적인 힘을 보탤 수 있으리란 기대다. 이미 GS리테일에서 16개 이상의 상품이 기획되어 그 수익금 일부가 기부되고 있으며, 동원F&B, 롯데칠성음료, 롯데제과, 롯데푸드, LG생활건강, 한국야쿠르트, 애경, 미래생활, 해태제과 등 9개 파트너사가 꾸준히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부 사무국장의 시선은 서울을 향해 있다. 서울에서의 하우스 건립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경기, 전남 등 전국으로의 사업 확산에도 가속을 더해 주리란 생각이다. 그는 서울에 대규모 하우스 건립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궁극적으론 전국 각 권역별로 하우스를 고르게 분포시키고자 한다. 부 사무국장은 “이제야 비로소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함께 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기에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해요. 각 지역에 소재한 기업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연결함으로서 RMHC 하우스가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뿌리내리는 것, 나아가 시민들 스스로가 동참하는 건강한 기부와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희들의 바람이에요”라고 밝혔다.


“환자와 가족 모두를 아우르는 케어 시스템의 확산이 필요해”

현재 RMHC 코리아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환아와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2호 RMHC 하우스 건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추진과정 중에 매우 중요한 것은 의료 현장 답사와 이용자 및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 또한 환아와 가족들이 병원 근처에 머물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분야를 담당하고 있으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교육위원/법제위원, 한국의료윤리학회,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대한소아과학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7년 4월에는 저서 「소아청소년암환자관리」를 출간했으며, 환자와 그 가족들의 신체·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완화의료 및 임상윤리지원과 관련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음은 김민선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RMHC 하우스 건립을 추진하게 된 까닭은?

A. 아직 어린 소아 환자들에게 있어 부모의 보살핌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병원 시설 하에서는 이들 가족에 대한 지원이 충분치 못한 상황인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서울대병원에는 소아중환자실 22개 병상과 신생아중환자실 40개 병상이 운영되고 있으나, 중환자 특성상 부모의 병실 출입이 극히 제한(하루 2회 면회)되고 있으며, 아이 곁을 오래 비울 수도 없는 탓에 대부분 좁은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제대로 씻을 수도, 쉴 수도 없는 이 같은 생활이 장기화되다보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의 발병률도 높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는 환자 가족 뿐 아니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소아 환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는 RMHC 하우스의 건립이 이러한 악조건을 해소할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 판단했고, 실제 미국 등에서 방문한 대부분의 어린이병원에서 RMHC 하우스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그 근거 중 하나입니다.

Q. RMHC 하우스가 건립되면 어떻게 이용할 계획인지?

A. 먼저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부분은 숙식이 가능한 공간을 최대한 마련하는 것입니다. 현재 저희 병원에 있는 환자 및 가족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한 시간 이상의 거리, 멀게는 3~4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에서 올라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입니다. 병원 인근에는 호텔 등 숙박시설의 숫자가 현저히 부족하고, 장기간 머물 경우 비용적인 부담도 큰 상황이며,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 외부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느라 혹시 모를 위급상황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할 부모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분들이 아주 잠깐이나마 부담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 체력을 회복하고 돌아와 병과 싸우는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현재의 중환자가족대기실에선 할 수 없었던 환아 가족 대상의 심리적인 치유를 진행할 공간도 필요합니다.

Q. 하우스 이용을 원하는 가족들이 많을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될 계획인가?

A. 세부적인 기준은 향후 구성될 RMHC 위원회와 병원측 관계자의 협의 하에 수립될 예정이지만, 큰 틀에선 보호자의 상시 대기가 요구되는 중환자실 가족을 우선적으로 배정할 생각입니다. 일반 병동에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는 환자도 있고,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해 2달 가까이 장기간 입원하게 되는 환자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용기간을 특정하기는 어려워 유동적으로 운영할 수 있길 바랍니다. 거주지와의 거리에 따른 차등보다는 환자와 가족의 상황이 가장 큰 고려요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Q. 이번에 서울 RMHC 하우스가 건립된다면, 지난해 양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A. 앞서 언급했듯 미국에는 이미 많은 어린이병원에 이런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의료제도의 차이도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환자와 가족들의 의식이 보다 긍정적인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정부 정책에 따라 소아 환자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어린이병원 후원회를 통해서도 지원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막대한 치료비를 충당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고, 환자 가족들의 생계나 여타 부대비용은 오롯이 그들의 부담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RMHC 하우스라는 시스템이 점차 확산되고 정착된다면, 이들의 경제적·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줄 수 있으며, 이는 치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질병은 환자 개인 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에도 중대한 변화를 야기합니다. 모쪼록 이와 같은 가족중심의 케어 시스템이 널리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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