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채소 발굴하는 탁월한 안목 보유, 재배농가 후원하는 산지직송 특수채소 유통전문가
히트채소 발굴하는 탁월한 안목 보유, 재배농가 후원하는 산지직송 특수채소 유통전문가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2.11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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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암이 뚜렷해진 가락시장에서도 새로운 특수채소 유통 계속해 한결 젊은 시장으로 키워”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

2년 전 현대화로 재개장과 입점을 마친 가락시장의 지하 시계는 24시간 영업을 추구함에도 화려한 지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땅거미가 퇴근길을 재촉하며 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가락시장 청과채소 시장은 제법 분주해진다. 대한민국 특수채소 분야의 유행을 주도하며 가락시장에서만 37번 이상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 온 터주 대감이자 전국 특수채소유통분야를 굳건히 지킨 안방마님, 기복상회 구자분 대표의 하루도 오후 늦게 시작된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특수채소 재배농가를 지원하고 레시피를 개발해 특별한 샐러드와 채소 요리를 제안하며 특수채소 백화점 ‘기복상회’의 이름을 널리 알린 구 대표의 출근길은 한국 채소 도매업과 유통업 뿐 아니라, 채식요리와 쌈밥 붐, 그리고 생채소 맛을 아는 이들의 특별한 메뉴 레시피들의 성장과 특수채소 종묘업의 의미 있는 발걸음과도 이어져 있다.

밤 9시 30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특수채소 대모가 운영하는 유통매장이 문을 여는 시간

아시아 최대 규모인 가락시장에는 페스코(어패류허용채식)에 속하는 김치도 마다하는 100% 비건들과 미수입 해외 채소들만 찾는 이들의 입맛까지 완벽하게 만족시킨다는 채소 도매업체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은 한국 채소 유행트렌드를 이끌어 온 특수채소 전문 유통업체 기복상회다. 
기복농사를 이끄는 부군과 기복유통(주)를 운영하며, 기복상회의 매장 문을 주 6회 여닫는 구자분 대표의 하루는 늦은 저녁에 시작된다. 인천에서 출퇴근하던 시절 7시 반이면 나오던 것에 비하면, 근처에 이사 온 요즘은 8시 50분이면 충분하다. 출근길은 여유롭지만 도착하면 분주해지는 것은 전과 비슷하다. 
구 대표는 출근하자마자 마감 후 품목별로 주문해 둔 박스들을 열어 채소들을 진열하기 시작한다. 구 대표에게 박스를 뜯고 싱그러운 채소들의 차가운 촉감이 손에 전해지는 순간은 어느 영양제보다 힘이 된다. 가락시장 재개장 후 가장 달라진 것은 공간이다. 냉난방이 완비되었고 매장에는 냉장 쇼케이스가 있다. 그렇지만 소매가 아닌 도매상인 구 대표는 덜 세련될지언정 널찍해서 제품박스와 냉장고를 많이 놓을 수 있었고, 눈앞에 있어서 동선이 절약되던 옛 매장이 내심 그리울 때가 많다. 
지금은 지하 매장의 한 층 아래에 공동 냉장고들이 있어, 주문이 들어오면 오르내리는 것이 일과가 됐다. 온도가 조금만 내려가거나 공기에 조금만 닿아도, 특수채소들은 수명과 품질이 변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소분 판매를 하지 않는 것도 구 대표의 원칙이다. 전 세계 채소들이 적게는 5백 종에서 많게는 3천 종까지 구 대표의 손을 거쳤다. 버섯, 삼, 뿌리채소, 특수채소 중 없는 것이 없어 한정식집의 먹는 삼, 유명 프랜차이즈의 유행에 힘입어 인기를 누린 쌈밥 전문점, 샐러드 디저트 카페의 별미인 먹는 꽃까지, 진달래 화전을 부치고 산나물을 무치던 한민족의 후예들은 그렇게 구 대표가 들여 온 채소들의 매력에 푹 빠졌던 것이다. 

새벽 1시, 싱그럽고 화려한 특수채소 진열장을 지나 고객의 얼굴만큼 반가운 목소리를 듣다

도매에서 잔뼈가 굵은 구 대표에게 불가리아의 장미, 네덜란드의 튤립보다 기쁨을 주는 꽃은 차의 향기를 더해 주는 장미, 샐러드에 올리는 카네이션 같은 식용꽃이다. 
꽃잎처럼 화려한 치커리, 청경채, 토스카나, 불란서상추, 그리고 야콘과 토속잠에 이르기까지 채소의 단맛과 쓴맛, 감칠맛을 구분해 낸 구 대표는 비올라 화전 레시피를 만들었으며 한련화의 알싸한 맛, 달달한 팬지, 상큼한 베고니아의 맛 리스트를 만들어 샐러드 식재료를 주문하는 이들을 기쁘게 했다. 
자고로 도매업이란 주문하는 매장의 매출이 늘면 같이 웃고, 줄어들면 같이 시무룩해지는 업종이지만, 그럼에도 품질이 좋아 자신의 매장만을 고집하는 전국 레스토랑 사장들을 생각하면 구 대표는 힘이 난다. 
밤 10시가 넘어 한숨을 돌린 구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 2시에도 붐비던 직판장 시절과 달리, 지금은 마트를 두고 지하로 내려오는 손님이 줄어 구 대표는 사람 목소리와 얼굴이 뜨면 그저 반갑다. 
매주 주문하는 레스토랑 사장이 N번 기둥에 차를 대고 있으니 입고된 채소를 목록대로 실어 달라고 한다. 구 대표는 두 칸이나 임대해 매장보다 넓은 기복상회 전용 지하 냉장고를 거쳐 ‘삼발이’의 시동을 건다. 
정부의 친환경지원금을 일부 지원받아 구입한 이 전기원동기는 혼자 매장 문을 여닫는 구 대표의 두 다리이자 소중한 배달짐꾼이다. 실어 주고 돌아와 보니, 10년 단골인 A씨가 소리도 없이 다녀갔다. 바쁠 때면 그러했듯 이번에도 알아서 박스에서 품목대로 꺼내 가고, 영수증도 직접 쓰고, 돈통에서 잔돈까지 정확하게 가져갔다. 구 대표는 “한국에서 파는 곳은 여기뿐이라 판매자가 갑”라는 A씨의 농담이 생각나 웃는다. 
A씨 역시 주 6회 오픈, 명절 휴무, 빨간 날 바로 앞날이 휴무라는 구 대표의 매장 시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수백 명의 거래처 사람 중 하나이다.

새벽 5시 반,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며 참신한 품목을 찾고 오늘 일과를 마무리할 때

고객 주문이 제일 많은 11시부터 새벽 2시를 지나, 구 대표는 술로 소일하다 병들어 고향으로 돌아간 상인 B씨의 부고 소식이 문득 생각나 한숨을 쉬었다. 지난 30여 년, 경조사도 외식도 미루고 밤낮을 바꿔 일한 구 대표는, 매출 10억 원대 시절 지인의 마지막 길에도 조의금을 인편에 보내야 할 정도로 바빴었다. 
그렇게 건강을 돌보지 않고 정신없이 일하면서도 제일 잘했다 여기는 건, 새로운 종묘를 섭외하고 해외파 농업인들에게 비용을 지원한 것이다. 특수채소는 박리다매의 반대 개념이기에 반드시 매입을 약속해야 양측의 신뢰가 싹튼다. 그래서 잘 나갈 때보다 수입은 3분의 1로 줄었을지언정, 이 신뢰는 구 대표의 자산이 되어 매일 전국에서 전화주문과 방문구매로 만든 50-60장의 영수증 더미로 남는다. 
고객들이 쉽게 올 수 있는 표식을 만들고, 마트 외에도 지하 상인들을 위해 시설과 홍보를 확충해 달라는 상인들의 요청에도 관리공사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은 여전하지만, 구 대표는 속을 끓일 시간에 물량이 늘어 희소성이 떨어진 품목 대신 잘 나가는 종자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트렌디함을 택했다. 
올해부터는 농가에 주문하는 대로 심을 종자를 외국에서 원산지별로 주문하여, 유망작물의 추천을 받거나 일본 바이어에게도 부탁하다 보니 꽤 많이 모였다. 최대품목이 6백-1천 5백여 종, 냉장고는 7-8개에서 4개로 줄었지만 여전히 직접 보고 사려는 이들이 많아 구 대표는 새로운 품목을 늘리고 있다. 
아티초크와 옐로주키니, 레몬그라스, 로마네스크브로콜리와 컬러 브로콜리로 큰 인기를 얻은 구 대표는 올해 미니수박을 민다. 그리고 소형 둥근오이, 투톤 호박처럼 신기한 품종들을 눈 여겨 보고 있으며, 시트러스향 식물성 캐비어라 불리는 핑거라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묘목을 색깔별로 확보했다고 한다. 
퇴근을 앞둔 새벽 5시 반, 다음 장사를 위해 주문리스트를 작성하고 채소를 정리하러 일어난 구 대표의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다시 만날 고객들은 ‘특수채소 도매여왕’ 인 그를 거뜬히 일으켜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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