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이 만든 자랑스러운 서체, 세계적인 가치 지닌 추사체의 정신을 계승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만든 자랑스러운 서체, 세계적인 가치 지닌 추사체의 정신을 계승하다
  • 오상헌 기자
  • 승인 2019.12.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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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들의 혼과 인생이 담긴 서체, 추사체 중에서도 연륜 담긴 예서로 천자문 발간하고파”
운정 최재수 서예가/운정서예연구실 원장
운정 최재수 서예가/운정서예연구실 원장

부친이 중국 사신으로 건너갈 무렵 동행하던 조선의 문신, 추사 김정희 선생은 금석학자이자 명필 옹방강(翁方綱) 선생이 78세의 나이로 조선에서 온 24세의 젊은 문인을 ‘해동제일 경술문장’이라 칭하며 제자로 삼았다는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으로 돌아와 벼슬을 하고 암행어사로 부임하기도 한 추사 선생은 당파싸움으로 제주에 8년 간 유배당하는데, 이 때 마음을 다스리며 갑골문 이래 고금의 명문서체들을 쓰기 시작해 중국 오체(五休)에 버금가는 서법, ‘추사체’ 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후 명필 연파 최정수 선생은 난해하기로 이름나 한때 사장되었던 추사체를 발굴하며 아들 가산 최영환 선생과 추사체의 명성을 되살리는데 기여한 바 있다. 이번에 소개할 연파 선생의 조카,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이러한 사연이 있는 추사체의 필법을 계승하고자 정갈하게 좌정하여 먹을 갈고 붓을 든 40년 서예인이다. 그는 글씨로 추사 선생의 혼을 알아감으로써 배운 삶의 자세와 추사체 대중화에 앞장 서는 근황을 전해 왔다. 

창안 200년을 앞둔 추사체, 출처와 작자, 필법이 확고히 보존된 추사체의 가치를 말하다
한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출처가 확실하며 보존과 대중화에 성공한 언어이다. 그런 한국이기에 독자적인 서체도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체, ‘추사체’는 추사 선생의 호방함과 한·중을 오가며 익힌 동서고금의 지식, 끝없이 다듬은 필화로 만든 희귀하고 중요한 서예의 서체이다. 그럼에도 중국 본토의 명필서체보다 대중적이지 않고 익히는 데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00년 이상 사장되었던 추사체는 <연묵천자>, <연파총서>, <연파서집>, <추사체천자문>등을 발간하며 한국 추사체발굴에 큰 획을 그은 추사연묵회 창립자 연파 최정수 선생의 손으로 다시 맥을 이어가게 된다. 연파 선생은 유년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비롯한 한학을 배워, 우연히 본 추사체에 매료돼 전국을 다니며 먹지를 대고 추사체를 복원해 다수의 추사체교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중국 수교 후에는 중국 오체의 대가들도 서체의 성인(서성;書聖)이라는 호로 부를 만큼 추사체에서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연파 선생의 직계 제자인 아들 가산 최영환 선생에 이어, 추사 선생의 고향 예산보다 현재 활동 중인 대전을 추사체의 본부와 같이 활성화시킨 서예인이 연파 선생으로부터 서체를 배운 조카 운정 최재수 서예가이다. 그는 지난 40여 년 간 추사체를 계승하며 한국서화가협회, 중국 대경시서도협회, (사)한국예술문화원 등의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사)추사체연구회 부회장, 한국백제서화작가협회 부회장, 한국추사서예가협회 자문위원, 한중일 문화교류협회 이사 및 연파기념사업회 이사 등 많은 서예협의 임원으로 있다. 남북코리아 민족화합상,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상 등 굵직한 수상경력의 운정 서예가는 올해 국제문화아트페어 단체전에 추사 행서, 예서, 초서를 비롯한 추사체 작품을 소개하며 추사체만의 멋과 매력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확연한 기상과 필자의 혼이 담긴 추사체, 그 중에서도 예서의 아름다움은 독보적
운정서예연구실에서 추사의 맥을 계승하되 독창성을 살리고자 추사체를 기반으로 초서, 전서를 포함한 오체를 모두 쓰고 있다는 운정 서예가는, 그림에서 온 상형문자인 갑골문, 석고문으로부터 발전해 한자의 기반인 전서(篆書)가 생겼으며 간소화한 예서(隸書)가 나오고. 빨리 써야 해서 초서(草書)가 나온 다음에 진서나 정서로 불리는 해서(楷書)체가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배우는 정자체가 해서체이고 이를 기초로 한자를 배우며 서예에는 행서(行書)도 있지만, 상형문자의 고전미가 깊은 예서에는 얼핏 좌우 각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명필의 혼을 일필휘지로 새길 수 있는 경지가 있기에, 예서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주로 20호 한지를 선호하는 운정 서예가는 추사체 중 행서를 임서(臨書)하다 추사 선생이 잘 썼다는 예서를 권유받아, 국내에서 손꼽힐 필법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과 서각 실력 또한 뛰어났다는 추사 선생과 이를 발굴한 연파 선생이 글씨에 혼을 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겸손하게 말한다. 유성구 온천2동 주민센터와 복지기관 등에서 후학들에게 추사체를 등급별로 개인 지도하며 연평균 8-10회 전시전에 참여하는 운정 서예가는, 존경하는 유학자인 공자와 노자, 맹자를 비롯한 중국 성인들의 글귀와 불교, 기독교의 명문을 발췌해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서예를 하다 보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쓰기에, 집중력과 평정심 유지에 좋아 치매 예방과 심적 안정에도 유익하다고 덧붙인다. 

글씨는 마음의 거울, 유년기부터 서예 접할 수 있는 환경 만들 정책 도입 필요
예서 분야 외에도 추사체는 작자와 창안 시기,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자 완성도 역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서예의 고향 중국에서도 크게 칭송받는 서체이다. 행서의 대가 연파 선생의 영향으로 추사체를 쓰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감히 시작하기 어려운 글씨이기에 국내에 추사체 인구는 많지 않다. 운정 서예가는 추사 선생의 성정과 혼이 고스란히 담긴 추사체의 훌륭함이 상대적으로 중국 오체를 더 높이 여기는 분위기에 눌려, 지금은 사라진 국전 시절에도 추사체 분야가 아예 없었을 만큼 추사체가 대중화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는 격언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인 서예는 잘 하려면 재주보다는 시간을 들이는 끈기가 필요하기에, 어릴 적 시작해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은퇴 후 서예를 시작하는 지금의 분위기도 좋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글씨가 취미 분야가 되어 대학 학과가 줄어들고 따라서 서예인구도 줄어드는 악순환을 줄이는 것이다. 운정 서예가는 추사체는 자신이 그러했듯 서예를 어릴 때부터 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운정 서예가는 그런 의미에서 예서로도 <추사체 천자문>을 발간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며, 문체부와 교육부에서 정식교과 과목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강좌나 동아리, 취미 분야로 서예를 권장하여 자랑스러운 한국의 서체, 추사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추사체의 맥을 꾸준히 이어가는 운정 서예가의 바람대로 훌륭한 예서 추사체 천자문이 발간되어, 조만간 어린 서예인들의 고사리 손에 쥔 붓 아래 희망의 싹이 터 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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