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느끼는 음악소리,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색이 일치하는 작품세계
그림에서 느끼는 음악소리,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색이 일치하는 작품세계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12.11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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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소리의 시각화에 이어, 영상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화가로 기억되는 것이다”
서양화가 이주영 화백
서양화가 이주영 화백

예술가는 최고의 작품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다듬거나, 혹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마음이 충족되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후자에 속하는 서양화가 이주영 화백은 새로움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들리는 그림, 보이는 소리’를 개척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점을 중첩해 선을, 그리고 선을 교차하고 연결해 면을 나타내며 캔버스 위에 빛과 소리의 접점을 찾아 가뒀던 이 화백은 요즈음 소리 중에서도 형식이 있는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음악의 분위기와 속도, 이미지가 그림 위에서 그대로 나타남을 느끼며 관객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때가 가장 좋다는 이 화백, 그는 이제 겨울이 오는 소리와 격정적인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누구나 그림 위에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캔버스에 소리를 물들인다.

소리의 진동과 시각화로부터 소리의 형식과 감정에 귀를 기울여 채색하는 단계 접어들어

4백여 장의 그림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만들어, 30분 러닝타임으로 제작한 ‘빛과 소리의 앙상블’ 4부작으로 해외에 진출한 이주영 화백은 LA와 파리, 한국에서 ‘옵티컬 아트’라는 파격적인 입체 앙상블 회화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회화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회화로>라는 주제로 소리의 진동과 시각화를 그림으로 옮겨 상상력과 참신함을 인정받은 예술가다. 물의 공명과 파장을 원과 선의 오브제로 나타낸 <빛I>은 2002년도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되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중이며, 파리 구스타프 화랑, 예술의 전당, 서울 및 대전 시립미술관에서도 이 화백의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스스로를 ‘소리를 그리는 화가’라고 칭하는 이 화백은 자연과 동식물들이 들려주는 소리 외에도 범위를 좁혀 특정한 테마, 특히 작곡가들이 만든 음악의 영역을 그리고 있다. 아마추어 테너로도 활동하며 클래식음악 사랑을 보여주는 이 화백은 소나타, 심포니와 같은 기승전결 형식이 있는 악장을 공부해 새로운 작품에 각각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화백은 그림에 혼자만의 감정을 담기보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객관적 감수성을 담고자 한다. 100호 대작인 <피아노 소나타>에는 이런 일화도 있다. 전시회에 막역한 친구가 찾아왔을 때 이 화백은 그림을 그릴 때 들었던 베토벤의 소나타를 틀어 주었고, 친구는 바로 그 그림 앞에 서서 음악과 그림의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평을 한 것이다. 이처럼 들려오는 소리와 보이는 그림이 일치하는 요소를 찾고자 이 화백은 과거 씨실과 날실의 중첩 같은 과거의 표현 대신, 더욱 정신적인 공감대를 찾으려는 의도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년 2월 경 이러한 경로로 만든, <피아노 포르테>, <안단테 안단테> 등 4점의 작품을 들고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아트페어에 참가해 그간의 변화를 보여 줄 예정이다.

그림도 또 하나의 작곡, 이제 음악과 자연, 인간 내면의 소리를 모아 화폭에 올릴 것

<오, 환희I>는 종교적 관점에서 “빛이 있으라”는 창세기의 메시지로 우주와 소리의 파동의 접점을 정교하게 붙여 표현한 6백 호에 달하는 대표작이다. 이처럼 그동안 소리의 리듬과 공명에 색을 입혔다면, 이후의 변화는 소리와 색의 이미지를 일치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거문고의 소리를 현으로 표현한 <거문고 산조>, 태극의 명쾌한 호를 리듬으로 나타낸 <오방색과 아리랑 환상곡>처럼 그림에 우리의 음악 정서를 담기도 한 이 화백은 클래식을 풍경과 함께 공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소리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자 이 화백의 작업실에는 늘 아침저녁으로 지저귀는 새들이 있다. 그래서 이 화백의 관점으로는 오선지에 곡을 쓰고 연주하는 것과 화폭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는 과정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따라서 그는 그림을 ‘작곡’이라고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바닷가의 신비로운 만월이 드뷔시가 작곡한 동명의 음악과 일치되어 감동을 느꼈던 것을 계기로 그린 <달빛>은 우울함 속에서 발견한 희망이다. 그리고 영화 <플래툰>에서 엘리아스 분대장의 최후 장면에 진중하게 깔리는 바버의 음악에 헌정하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도 있다. 이 화백은 현악이 점점 깊어지며 슬픔이 깊이 있게 다가오는 느낌을 푸른색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며 짙어지도록 표현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완성하면서, “죽음의 슬픔이 장엄하게 다가오는 바버의 음악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색채로 잘 짜냈기에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가로서 애착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올해 이 화백은 건강을 회복하는 동안 그림 구상만큼은 놓지 않았는데, 소박함과 대작을 동시에 추구하고 새로운 음악용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며 접근해 갔다고 한다. 그 중에는 성서와 영미문학을 넘어 HBO의 드라마에도 진출한 인상적인 구절인 ‘Spring Has Come, Winter Is Gone’을 소재로 그린 작품도 있다. 이 작품들 외에도 이 화백은 하고 싶은 작업이 많다. 기존에 그린 그림들을 모아 영상으로 옮겨 왔다면, 이제는 그림의 테마와 일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자연의 소리에서 인간 내면을 들려주는 소리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이 이 화백의 내년 계획이다. 올해 이 화백은 서로 대조되는 원색에 일정한 간격을 둔 채, 음악이 악기에 따라 각각의 리듬과 멜로디가 구분되듯 색의 선으로 박자와 운율을 주어 그림 위에서 리듬과 멜로디가 춤추는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식의 이름을 짓듯 적합한 작품명을 생각하는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소리를 그려냈을 뿐 아니라 움직이는 영상으로 나타내는 데 성공한 예술가로 기억되겠다는 이 화백은, 역시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이 기대되는 시각화 전문가이자 새로움의 묘미를 아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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